나도 기자지만 언론 보도 못 믿겠다
나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아, 혹시라도 오해 마시길. 되길 바란다, 또는 돼야 한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난 도널드 트럼프가 세계 최강대국 대통령이 되는 상상만 해도 구역질이 난다. 하지만 중년 아재가 되고 보니 알겠다. 세상 일은 늘 내 기대와는 반대 방향으로 흘러왔다. 지금껏 그랬는데, 앞으로라고 얼마나 다를까. 우울하다.
거의 모든 언론이 힐러리 클린턴의 우세를 점친다. 그런데 근거가 약하다. 기껏해야 여론조사 결과를 내밀 뿐이다. 여론조사?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율 차이, 얼마 안 된다. 최근 CNN 조사가 큰 차이를 보여줬는데, 그래봤자 5%다. 상대가 트럼프가 아니라면, 나도 힐러리 클린턴 당선에 걸겠다. 하지만 상대는 트럼프다. 완전 막장 싸이코.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를 읽는다면, 어떤 미친 놈이 "나 트럼프 지지해"라고 대놓고 말하겠나. 그런데 지지율 차이는 많아야 5%다. 이거, 정말 무섭다. 숨은 표는 분명히 트럼프가 더 많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숨은 표는 5%보다 많은가, 적은가. 그게 이번 선거의 결과를 가른다. 상대가 트럼프이므로, 나는 숨은 표가 5%보다 많을 수도 있다고 본다. 미국 대학원에서 유학 중인 후배가 얼마 전에 그랬다. 자기 주변에는 트럼프 지지자가 한 명도 없다고. 솔직히 좀 이상하다고. 그 말 듣고, 오싹했다. 트럼프 지지자가 한 명도 없지는 않을 거다. 다만 '정치적 올바름'을 존중하는, 미국 지식인 사회의 문화 때문에 '커밍 아웃'을 안 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의 일베충 중에도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많다. 다만 그들은 '일밍 아웃'을 꺼릴 따름이다. 차라리 그 후배가 '내 주변에 트럼프 지지자가 많아. 그래서 짜증나'라고 했으면, 나도 별로 불안하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 후배는 트럼프 지지자가 없다고 했다. 분명히 그럴 리는 없는데 말이다. 물론 소수겠지만, 있기는 꽤 있을 게다. 그게 다 '숨은 표'라고 생각하니, 숨이 막혔다. 나는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율 격차가 10%가 되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고 보는 편이다. 그때까진 도널드 트럼프 우세를 점칠 것 같다. 물론 격차가 10% 근처가 되면 판단을 바꿀 것이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실로 똑똑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게 미국 민주당의 한계다. 똑똑하지 않으면, 민주당 경선을 통과할 수 없다. 하지만 똑똑함이 곧 매력으로 통하는 동네는 미국 안에서도 일부다. 예컨대 뉴욕 정도.
똑똑하니까, 잘 알거다. 아직 마음 놓을 때가 아니라는 걸. 민주당 정권 재창출은 여전히 불안하다. 그런데 하필, 공화당 후보는 트럼프다. 인종 차별주의자. 흑인인 오바마가 그걸 참을 수 있을까.
못 참을 것 같다. 아무리 똑똑해도 결국 사람이다. 흑인 대통령의 후임자가 어쩌면 도널드 트럼프. 오바마는 단지 가능성만으로도 잠이 안 올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무섭다. 난 오바마가 대선 전에 판을 흔들려고 할 것 같다. 지금의 불확실성을 견딜 수 없으니까. 트럼프가 다음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그래도 절반은 된다는 걸, 참을 수 없으니까.
그럼, 어떻게 할까. 하필 북한이 사고를 칠 조짐이다. 솔직히 무섭다. 내가 북한을 말릴 힘이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술 한 잔 하고 키보드 두드리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