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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 지망생 Sep 20. 2016

전쟁 날 것 같으니 모병제?

무서운 새누리당, 중산층 부모의 숨은 욕망을 낚다

가을이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하다. 이러다 정신 차리면, 연말이다. 그리고 새해에는 대선이 있다. 박근혜 정부 내내 욕만 하며 지냈는데, 시간 참 빠르다. 


4년도 이렇게 빨리 지나갔는데, 1년이야 말해 무엇하겠나. 순식간이다. 


그런데 도무지 대선 분위기가 안 뜬다. 여당에서 유력 후보가 잘 안 보이는 탓이 있다. 또 야권의 후보군이 너무 점잖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권이 바뀌었으면 하는 입장에선 영 불길하다. 이건 좋은 징조가 아니다. 야권이 좀 시끌시끌해야 한다. 논쟁이 벌어져야 한다. 그런데 야당의 예비후보들은 너무 점잖다. 민감한 문제에 대해 입을 다문다. 


오히려 따끈따끈한 동네는, 여당이다. 남경필이 모병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니까 유승민이 모병제는 정의롭지 않다, 가난한 청년만 군대 갈 것이다, 라며 반박했다. 남경필이 반격했다. 정의는 누군가가 독점하는 게 아니다. 정의라는 말, 함부로 쓰지 말라. 그건 나치나 하는 짓이다. 


이 논쟁, 확실히 눈길이 간다. 남경필, 유승민 둘 다 예비 대선 후보로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물론 남경필, 유승민 둘 다 마이너 후보다. 솔직히 그들이 다음 대선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될 가능성, 얼마나 되겠나. 


하지만 새누리당 전체 입장에서 보면, 착점을 잘 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가장 민감한 영역에 포석을 깔았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김두관 후보가 민주당 경선에서 모병제 주장을 한 적이 있다. 그때는 생뚱 맞았다. 난 이번에 불거진 모병제 논란은 좀 다르다고 본다. 중산층 부모들의 어떤 욕망과 착 달라 붙어 있다. 의미 있는 포석이다. 


2년 전, 윤 일병 사건이 있었다. 병장이 일병을 때려 죽였다. 우발적인 폭행이 아니었다. 가해자 병장을 정점으로 둔 내무반 조직이 집단적으로 집요하게 피해자를 괴롭혔다. 피해자 윤 일병이 죽었기에, 그리고 몇 가지 우연이 겹쳤기에 진실이 드러날 수 있었다. 대한민국 군대에서 비슷한 사건이 늘 일어난다. 다만 아주 작은 차이가 사건을 병영 안으로 감추곤 한다. 윤 일병의 고통이 100이라면, 다른 사건 피해자의 고통은 99다. 끓는 점 직전에서 대개는 수은주가 멈춘다. 그러니까 사건이 은폐된다. 99의 고통은 무시해도 되는 건가. 당연히 아니다. 


자식을 군대에 보내야 하는 부모 입장에선 오싹했을 게다. 마침 딱 그때, <조선>, <중앙> 등이 모병제 캠페인 보도를 했다.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이 <조선일보>에 기고도 했다. 


그 전까지 보수 진영은 대체로 모병제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런데 윤 일병 사건이 터지니까 확 달라졌다. 군대 내 인권 실태에 대한 감수성이 갑자기 높아져서? 그럴 리 없다. 군대 안에서 벌어진 의문사 사건은 전에도 늘 있었다. 군사 정부 시절엔 녹화사업도 있었다. 군에 입대한 운동권 학생을 괴롭히는 것이다. 혹은 프락치 활동을 강요하기도 했다. 그러다 많이들 죽었다. 이런 사태에 대해선 입도 벙긋하지 않던 자들이 뜬금 없이 인권 타령하면서 모병제를 이야기한다. 


인권 때문에 모병제? 이건 그냥 핑계다. 게다가 별 설득력도 없다. 모병제 군대가 반드시 인권 수준이 높다는 보장도 없다. 일본 자위대 역시 인권 실태는 열악한 걸로 안다. 

 

윤 일병 사건 직후 모병제를 주장했던 이들의 속내는 이런 거라고 본다. 


1. 군대 많이 좋아졌다더니, 아니었네. 여전히 사람이 죽네. 내 자식을 이런 군대에 어떻게 보내나. 아, 무서워.

2. 그런데 대안이 없잖아. 눈 질끈 감고 돈 풀어서 군대 빼버려? 그것도 불안하지. 혹시 내 자식이 나중에 출세하면, 군 미필이 족쇄가 될 수도 있는데 말야. 요즘은 예전과 다르지. 병역에 대한 검증도 꼼꼼하잖아. 

3. 그럼, 어쩐다. 아, 대체 이 나라는 왜 징병제 따위를 유지해서 이렇게 골치 썪이나 몰라. 모병제 도입하면 안 되나. 


1. -> 2. ->3. 순서로 생각이 전개된 것 아닐까. 그리고 이런 생각이 이심전심으로 통하면서, 당시 <조선>, <중앙> 보도도 기획됐을 테고. 언론의 기획 보도란 대중의 숨은 정서를 겨냥한 것이니 말야.


모병제, 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윤 일병 사건이 터지니까 바로 모병제 이야기가 나온 건, 솔직히 너무 속보인다. 이런 식으로 도입된 모병제라면, 군 인권 개선에 아무런 보탬이 안 된다. '내 자식 군대 보내는 게 무섭다'라는 동기에서 도입된 정책이므로, 내 자식이 군대에 안 가도 된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군대 내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은 끊어진다. 자식이 대학에 들어가면, 입시 문제에 대한 관심이 싹 사라지는 것과 비슷하겠지. 군대 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부조리는 관심의 사각지대에 갇힐 테고, 아마도 지금보다 더 썩은 군대가 될 게다. 


당시 진행된 모병제 논의에 다른 동기도 있지 않았겠느냐고. 아니, 없었다고 본다. 윤 일병 사건이 기억에서 지워지니까 모병제 논의도 함께 잊혔다는 사실이 방증한다. '내 자식 군대 보내는 게 무섭다'라는 이유 외엔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지금, 또 모병제 논의가 불거졌다. 하필 북한이 연거푸 핵실험하고 공갈을 치는 시점이다. 한반도 정세가 위태위태하다. 이러다 어느 날, 무심코 꺼내든 스마트폰 화면에서 "[속보] 북한 군 남침, 전쟁 발발"이라는 기사를 보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 땅에 사는 이들은 누구나 조금씩 이런 불안감을 갖고 있다. 딱 그런 시기에, 여당의 예비 대권 후보가 모병제에 불을 지폈다. '내 자식 군대 보내는 게 정말 무서워진 순간'에 말이다. 대중의 숨은 욕망을 정확히 짚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나는 모병제를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니다. 다만 정책이 도입되는 맥락, 목적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평화와 인권이 목적인데, 그 수단으로 모병제가 더 적절하다는 합의가 이뤄진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지금 진행되는 모병제 논의는 그렇지 않다. 그러니까, 속이 답답하다. 


자식을 군대 보내는 데 대한 공포가 치솟는 순간에만 불거지는 모병제 논의라면 결코 건강하지 않다. 


이렇게 도입되는 모병제는 군복무에 따른 위험을 남에게 떠넘기고 나몰라라 하는 것일 뿐이다. 타고 있던 배가 침몰해도, 그래서 아이들이 죽었어도, 나는 살아 있으니 마음이 편한 사람들. 그들의 얼굴을, 모병제 논의 속에서 다시 본다. 


건강한 논의는 위험의 총량을 줄이는 것이다. 줄여도 줄여도 남는 위험이 있다면, 그걸 얼마나 정의롭게 나눌지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논의는 다 건너 뛰었다. 


하필 지금, 남경필이 모병제를 주장했다. 대단히 똑똑한 사람이다. 자기 지지층의 속내를 정확히 읽었다. 정작 당사자들은 언어로, 정책으로 정리하지 못하는 어떤 불안감을 '모병제'라는 한마디로 낚아 올렸다. 새누리당 정치인들의 감각은 확실히 야당보다 낫다. 


정말 무섭다. 


금수저 아이들은 애초부터 군대 걱정 안 한다. 원정 출산으로 이중 국적을 얻었다. 병역은 선택의 문제다. 

은수저, 동수저 아이들은 군대 걱정을 한다. 하필 요즘 같은 때, 얼마나 불안하겠나. 그런데 하늘에서 동앗줄이 내려왔다. 모병제다. 예전에는 금수저 아이들에게만 병역이 선택의 문제였는데, 은수저, 동수저 아이들도 이런 호사를 누리게 됐다.

일부 동수저, 그리고 흙수저 아이들도 어쩌면 모병제가 반갑다. 어찌 됐건, 공무원 일자리가 수십 만 개 생기는 것 아닌가. 다들 공무원이 못 돼서 안달인 시대에 말이다. 


누군가에겐 일자리가 돼서 좋고, 다른 누군가에겐 불안을 덜어주니까 좋은 정책. 그게 바로 모병제다. 


실컷 모병제 욕하더니, 뒤에 와서 왜 갑자기 모병제 칭찬하느냐고? 아니다. 모병제가 도입되면, 금수저, 은수저는 거들떠 보지 않는 일자리, 하지만 흙수저들은 자발적으로 찾는 일자리가 수십 만 개 생긴다고 했다. 비슷한 장면, 많이들 보지 않았나. 예컨대 조선소 하청업체가 그렇다. 현대중공업 정규직은 하지 않는 위험한 일들이 죄다 하청업체로 넘어간다.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다. 그리고 하청업체 직원들은 끊임없이 죽어간다. 하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다. 그건 중산층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러니까 언론도 지면을 아낀다. 중산층이 관심을 갖는 걸 보도해야 광고도 잘 붙는다. 광고주 입장에선 중산층이 주요 소비자다. 중산층 소비자를 겨냥해서 광고비를 쓰는데, 중산층에게 외면당하는 매체라면 광고를 낼 마음이 안 생긴다. 언론은 중산층의 관심사를 따라다닐 수 밖에 없다. 하청업체 직원의 죽음은, 그래서 중산층 가정의 가벼운 불안거리보다 기사 가치가 낮다. 그리고 정치는 언론을 따라 다닌다. 언론이 외면한 정치인은 대중과 만날 수 없다. 그러면 정치 생명이 끝난다. 결국, 언론이나 정치나 하청업체 직원의 죽음에 관심을 가질 여유는 없다. 


그런데 이런 비극이 훨씬 큰 규모로 재연될 수 있다. 모병제 도입으로 생겨날 수십 만 개의 흙수저 일자리, 금은동수저들이 떠넘긴 위험의 하치장이 된 그곳에서 말이다. 


정말 무섭다.  




중년의 소설가 지망생입니다. '소설가의 각오'를 밝힌 게 지난해 송년회였는데, 벌써 올해 가을이 됐습니다. 

다시 각오를 다져봅니다. 올해 안에 지망생 꼬리표를 떼어 내야 할 텐데, 후아 갈 길이 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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