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별 일이 다 있다.
"사람은 무언가를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그것을 성취할 수 있다. 나는 생각했다. 어떤 특수한 채널을 통해 현실이 비현실이 될 수 있다. 혹은 비현실이 현실이 될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중>
고작 25년 인생이지만, 논리적으로 또 현실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있었다.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라고 외치다가도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은 없는 거다.
기억할 수 없을 때부터 ‘너는 사랑받는 하느님의 딸이다’라는 말을 듣고 자라서 인지, 많은 일들이 신의 존재로서 설명되어왔었다. 불행 뒤엔 큰 뜻이 있기 마련이었고 기쁜 일은 감사한 축복이었다. 명상을 접하고 우주와 하나 된 다는 것에 대해 알게 되고 나서는 납득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에너지가 나를 아우르고, 끌어들이기도, 밀어내기도 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마치 기사단장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그 존재 자체의 이상도 이하도 바라거나 생각하지 않는 화가처럼.
우리는 “완전히 올바른 일이나 완전히 올바르지 않은 일”이 존재하지 않고, 완벽하게 진실이지도 그렇다고 완벽하게 진실하지 않은 것도 없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완벽하게 현실과 비현실로 나누기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다. 주위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과 내가 닥친 상황들을 100% 이해하고 풀이하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누군가에겐 고통이고, 누군가에겐 선택이고, 누군가에겐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설명할 수 없을지라도 우주 어딘가에선 그 모든 일의 원인과 과정과 결말이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같은 생각이었나 보다. “구덩이” 속 강물이 ‘나는 강물이며, 쉼 없이 흐른다’라는 사실에 너무 많은 의식을 집중한 듯 보였던 것처럼, 아키가와 마리에가 멘시키씨의 저택 안에서 보낸 시간이 “그녀의 뜻과 상관없이 제 원리에 따라” 흘러갔던 것처럼.
사람의 힘으로 멈출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시간의 계념과는 완전하게 독립된 이데아와 메타포의 목소리를 따른 화가는 그것이 이데아고 메타포가 무엇이 되었든 간에 “황량한 황야에 버려진다 해도, 어딘가에 나를 이끌어줄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믿게 된 것이다. 무언가가 어떤 형태를 갖추고 있고 왜 존재하는지 왜 알려고 할까. 그저 그 무언가가 내가 간절히 원하는 바를 이루게끔 도와준다는 사실을 미친 척 믿어보면 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