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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zzie Jan 16. 2019

내가 달리는 이유

나의 생애 첫 하프 마라톤

"300 METERS LEFT"라고 씌어있는 깃발이 보인다. 이미 빗물에 축축하게 젖은 운동화 속의 발은 감각이 잘 느껴지지 않고 허벅지 바깥쪽 근육과 종아리는 만져보지 않아도 돌처럼 딱딱해졌음을 느낄 수 있다. 좁고 짧은 통로를 지나니 왼편에 안개 가득 낀 바다가 보인다. "지치고 힘들 때 내게 기대. 언제나 네 곁에서 있을게." 귓가엔 끝까지 힘내라고 계산적으로 만들어 놓은 음악 플레이 리스트 중 끝에서 두 번째 곡인 지오디의 ‘촛불 하나’가 흐르고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보드워크 위를 뛰는 수많은 러너들의 발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도착지점을 알리는 대형 아치와 그것을 향해 두 팔을 하늘 위로 뻗고 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분명 300m 남았다고 했는데 그 거리가 천만리처럼 느껴진다. 

다행히도 김태우의 마지막 후렴 부가 끝나기 전에 주시하며 달리던 피니시 라인에 도착한다. 결승선을 지나 무거워진 다리를 걷는 속도로 낮추니 ‘아 끝났다’ 하고 안도감을 느낀다. 주최 측 직원들이 메달을 걸어주고 우비를 나눠준다. 2시간을 내리 비 맞았는데 인제 와서 우비가 무슨 소용이겠냐마는 추위 때문에 일단 입는다. 휴대폰이 울리고 태평양 바다 너머에서 인터넷으로 내 위치를 트래킹 하던 엄마, 아빠의 축하 메시지가 들어온다. "소영이 완주 축하 축하`" 그렇게 올해 5월, 2시간 9분 48초 만에 내 생의 첫 번째 하프 마라톤을 완주했다. 


하프 마라톤. 마라톤 길이의 딱 절반인 21킬로미터 또는 13.1마일. 흔한 버킷리스트 조항이면서도 노트에 적어두곤 미루고 잊혀지는게 대부분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달리기는 둘째치고 운동과는 거리가 먼 나의 지인들은 하프 마라톤을 완주한 나를 철인 취급하기도 한다. “너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2시간 넘게 계속 뛰어? 한 번도 안 걸었어? 대박.” 그러나 앞서 문장들에서 짐작했겠지만, 사실 완주의 감동이 그렇게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완주라는 것, 끝이라고 하는 건 그 전 과정에 비해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죽음이 있기에 내가 사는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물론 나의 하프 마라톤 이력이 자랑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달리기를 하는 데에는 완주 이외의 이유도 있다. 

처음 장거리 달리기를 시작했을 땐, 센트럴 파크와 도시 곳곳을 뛰어다니는 것에 재미를 붙인 데다 러닝 클럽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았다. 또 무언가를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인지라 러닝 클럽 가입 후 몇 달 뒤 10킬로미터 경기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시작을 알리는 화약총 소리를 기다리다 덜컥 겁이 났다. 몇천 명이 참가하는 이 경기에서 내가 1등을 할 수 없을 거란 사실이 나를 압도한 것이었다. 그럼 대체 난 무엇을 위해 달리기를 하고 이 경기는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난 여태껏 평생을 키가 작은 축에 속했었다. 이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나의 수단은 늘 이기는 것이었다. 그게 학교에서 누구보다 좋은 성적을 받는 게 되었건, 스쿼시 랠리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이던, 어떤 힘든 일에도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는 것이 되었든 간에 난 이렇게 사는 것이 경쟁 사회에서 원하는 나의 모습이자 내가 살아남는 방법이라 믿었다. 하지만 달리기는 나의 믿음을 배신했다. 달리기 경기에서 내가 이길 수 있는 대상은 없기 때문이다. 이길 수 있는 사람도 없고 (2018년 12월 기준 하프 마라톤 여성 최단 시간은 1시간 4분 51초이다.) 골대도 없고 득점판도 없다. 오직 나만 있다. 달리기 경기에서 내가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 잡다한 생각들과 내 앞에 달리는 사람을 추월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우스운 오만함이다. 


달리기 경기에서 내가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 잡다한 생각들과 내 앞에 달리는 사람을 추월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우스운 오만함이다. 

지난 5월 빗속에서 콘크리트 위를 뛰면서, 그만 달리고 싶은 순간들은 몇십 번 찾아왔고, 걷고 싶다는 생각은 수백 번 했다. 그에 비해, 내가 속도를 낮추지 않고 계속 뛰어가야 하는 이유는 딱 세 가지였다. 8마일 지점에서 나를 응원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나의 움직임을 계속 추적하며 지켜보는 엄마, 아빠를 실망하게 하지 않기 위해. 내가 이 경기를 완주함으로써 조금 더 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 혹여나 내가 낙오자가 된다고 해도, 친구들은 어깨를 두드려 줄 것이고 엄마, 아빠는 실망하기보단 더 큰 응원을 해줄 것이며, 나는 다음 기회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으면 되는 것이었으나, 내가 멈추지 않아야 했던 세 가지 이유가 나에게는 너무 소중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나는 이기지 못했지만 이겼다. 우산 쓰고 비를 맞으며 기다리는 친구들과 하이파이브를 해냈고, 나를 건강하게 낳아준 부모님에게 나의 건강한 모습을 보여줬으며, 딱 하프 마라톤의 길이만큼 강해졌다. 

나는 완주 후에 메달을 받는 순간보다도 끝이 보이지 않는 직선 도로를 달리면서 “걸을까? 아니야 지금 걸으면 리듬 깨질 거야. 아냐, 그래도 좀 걸으면 호흡이 덜 가빠질 거야. 아니야 그럼 더 체력이 떨어질 거야,” 하던 나의 내적 갈등이 더 기억에 선명하다. 8마일 지점 간판이 보였을 때 친구들을 본다고 생각하니 뛰던 가슴의 쿵쾅거림과 흥 나는 음악에 취해 조금 수월하게 달렸던 짧은 시간들의 짜릿함을 기억하고 싶다. 
이기지 못했지만 얻고 싶었던 걸 모두 얻었기 때문에 행복했고 다음 도전, 예를 들면 26.2마일짜리 마라톤이 많이는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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