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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대규 JELMANO Dec 01. 2017

의복의 기원에 대한 이론정리

베니스 옐마노의  11월 패션컬럼



의복의 기원에 대해 
인류문화학, 복식사학, 동물행동학 등 여러 학문분야의 여러 합리적 가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단 하나의 명확하고 우세한 결론은 내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 복합적 원인으로 사이좋게 몇 가지 학설이 어깨동무를 하는 있는 형국입니다. 
다만 서서히 배척되는 가설이 있고, 여전히 선두에서 어깨를 두르고 전진하는 가설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우선 배척되는 가설들과 앞서는 가설들을 살펴보면서, 
결국
어떻게 
이 이론들을 머리속에 간단하게 
정리하고 있으면 좋을지 알아봅니다. 




베니스에서의 첫 겨울


옐마노가 올 봄부터 지내고 있는 베네치아 메스트레의 경우, 10월이되면서 해 지는 시간이 무척 당겨졌습니다. 여름 끝자락까지만 해도 21시까지는노을이 남은 햇빛을 담고 울렁거리는 서쪽 하늘에 보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 이후 9월 중순 19시 반으로 일몰은 한 발을 내밀었습니다. 10월 초에는 다시 한 시간이 줄어 18시 반이 되었고, 10월말 인 현재는 17시로 줄었습니다. 어제 써머타임이 해제된 것의 영향이 큽니다. 지난 3월에 빌려주었던 1시간을 돌려받고 얼떨결에 잠도 한 시간 더 자고일어났습니다만, 마음은 그리 밝지 못한 것 같습니다. 심리적으로는이제 막, 매우 길어진 ‘윈터 타임’이 시작되었고, 앞으로 줄어들 햇빛 때문인지, 예전에는 하지 않았던 사색이 깊어지는 시기입니다. 놀랍게도 베네치아지역의 일몰시간은 앞으로 다가올 12월 중에는 낮 4시 반까지정면 돌진할 예정입니다. 얼추 비슷한 위도상에 있는 밀라노 보다 훨씬 무거운 밤을 가진 베네치아에서 저의 첫 겨울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입는 것 중 아주 일부인, 옷





깊어지는 생각은 평소 무심코 넘어갔던 기본적인 것들에 머뭅니다. 기본적인것들에는 ‘의식주’가 있겠고, 오늘은 그 중 제일 앞 ‘의(衣)’ 의 기원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입는다.’ 라고 표현하는 대상은 비단 ‘옷’ 만은 아닙니다. 우리말에는‘피해를 입다’, ‘상처를 입다.’ 라는 표현이 있고, 영어권에서는 향수를 입다(wear)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어에서는 신발의 다른 말로footwear 라고 하고, 안경을 eyewear 라고도 합니다. 결국 ‘의’란 섬유, 직물 등 특정 물질이나 소재를 이르기 보다, 좀 더 광의적인 의미로 ‘우리 몸에 걸치는 모든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넓게 생각하기로 하겠습니다. 




의복의 기원에 대해 인류문화학, 복식사학, 동물행동학 등 여러 학문분야의 여러 합리적 가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단 하나의 명확하고 우세한 결론은 내려지지 않고, 여러가지 복합적 원인으로 사이좋게 몇 가지 학설이어깨동무를 하는 있는 형국입니다. 다만 이제 서서히 배척되는 가설이 있고, 여전히 선두에서 어깨를 두르고 전진하는 가설이 있습니다. 우선 배척되는가설들과 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힘을 잃고 늙은 가설들




의복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론 중 ‘수치설’이 있습니다. 이 가설은 구약성서 중 창세기 신화를, 의복의 기원을 설명해 주는 최초의 문헌으로 간주합니다. 뱀의 유혹에빠진 최초의 남녀가 특정 나무 열매를 먹고, 갑자기 수치심을 느껴 ‘치부’를 나뭇잎으로 가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르면 인류 최초의 의복은 '나뭇잎'이 됩니다. 이 가설의 문제점은 어디에 있을까요? 


수치설의 치부



‘나뭇잎’이 문제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문제는 바로 ‘치부’ 입니다. 치부, 즉 수치스러운부분은 현재 대부분의 문명사회에서 ‘치부’라고 치부하는 부분이 맞습니다. 바로 그 지점에 문제가 있습니다. ‘치부’는 언어에서 발음과 의미의 결합이 자의적이듯,  하나의 사회에서 '우연적' 관습의 결과물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 이유는 문명권 별로 수치심을 제일 크게 느끼는 부위가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 아이의 경우처럼, 처음에는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다가 사회로부터 학습된 깨달음(어른의꾸짖음, 친구들의 손가락질 등)에 의해 수치심을 ‘깨닫고 배운다’라 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시 민족에 관한 연구에서 보면, 문명인에게 있어서 예의를 갖추는데 아주 중요한 치부 은폐가 어떤 미개인들에게는 별로 중요시 않다는 것은 이 가설의 설득력을 약화시킵니다. 왜냐하면 수치심이란 것이, 생득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합의한 관습에 따른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창세기 중 나무열매를 먹는 행위를 ‘사회화 과정’으로 해석할 경우,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여전히 유효한 가설이기 되기 때문에 현재 복식사 교과서 초반부에 여전히 살아남아 이 이론이 소개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혼자 생각해 봅니다. 




실용적인 환경적응설



‘수치설’ 이외에 이성흡인설, 장식설, 환경적응설 이 있습니다.이 세 이론이 어깨동무 삼총사 이론으로서 인간의 행위의 여러 측면에서 의복의 기원을 협동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중 환경적응설은 보온설, 신체보호설, 실용설 등을 포함하며, 자연계에 노출된 인간의 허약한 음부 (陰部) 및 체온등을 보호, 유지하기 위해 고안되었다는 설명입니다.  합리적 설명이지만, 굳이 매슬로의 5단계 욕구단계설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가장 하단에 있는 두 가지 욕구생리, 안전욕구 그 이외에 애정, 소속욕구, 존경, 자아실현 욕구등 인간의 추상적이고, 심미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인류의 의복의 기능을 설명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밥 만 먹고는 못 산다는 장식설


이에 이성흡인설과 장식설이 환경적응설의 유물론적 한계를 보충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장식설은 인간의 1 차적 욕구 본능인 자기 보존에 있어, 인간은 먼저 '식'(食)과 '성'(性)의 욕구를 충족시킨 후 비로소 심리적인 욕구로 몸을 장식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일부 학자들은 장식적인 욕구의 내면에는 실질적으로 양성간의 흡인이라는 동인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기에, 이성흡인설은 큰 의미에서 장식설을 포함하면서 환경적응설의 맞은 편에서 의복 기원 이론의 축을 형성하고 있는 중요한 이론이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세상만사는 결국 남녀, 섹시한 이성흡인설


이성흡인설은 남녀가 서로 이성을 끌려고 하는 동기에서 의복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다윈의  "대다수 동물의 미에 대한 동경은 이성의 주의를 끄는 것에만 국한되어 있다"는 주장을 통해서 볼 때, 인간 의복의 기원은 이성 흡인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으로 해석 가능합니다. 




노출과 은폐는 결국 동전의 양면 


주의를 끈다는 것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치부(恥部)를 은폐하는 것과 치부를 장식하여 눈에 잘 드러나게 하는 것, 즉 강조하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이 효과가 더 클까요? 몬테규(Montague)가 "세상에는 보여 주고 싶어서 감추어져 있는 것이 있다"고 한 말이나, 원시부족에서 나체 종족을 몸을 가리지 않고 살던 여자가 춤을 출 때는 치부에 피복물을 가렸다는 사실은 현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미개인들이 치부를 은폐하는 것은 수치심에서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이성의 마음을 끌기 위한 수단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고요한 외침’ 과 같은 문학적인 역설이 의복의 기원의 내면에 깊숙히 숨겨져 있었던 것이지요.  





11월이 되면서, 할 말은 밤처럼 늘었으나 베니스 사람들의 침묵은 안개처럼 길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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