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다섯살 무렵 어느 날, 자기가 그린 그림을 보며 "너무 못그렸어"라고 하더군요. "응? 멋진데?"라고 반응해줬지만 아이는 거울을 보더니대뜸 "너무 못생겼어"라고 말했습니다.
순간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걱정되는 마음에 "왜 그렇게 생각해?"라고 물었지만 이제 네 돌 된 아이에게 '왜'라는 질문은 너무 난이도가 높았겠지요. 슬쩍 웃으면서 "그냥 못생겼어"라고 한 번 더 말하는 아이를 보면서 가슴이 턱 막혔습니다. 조급한 마음에 아이가 얼마나 예쁜지 열변을 토하면서 설득하려고 애썼던 기억이 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낮은 자존감이 아이에게 전해진 걸까?
책의 서두부터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고 강조하던 입장이 독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아이의 모습은 결국 나를 비추고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 책망하며 대책 없이 깊은 한숨만 내쉬었죠. 언젠가 상담을 하다가 '결국 엄마 때문이라는 거죠?'라는 말을 들었었는데 그 때 느낀 원망과 그 아래 깊은 슬픔, 외로움이 와닿는 순간이었습니다.
아이는 한동안 비슷한 말을 반복했지만 다행히 가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아내와 커튼에 대해 얘기하던 중 "별로 안 예쁘다"고 말했더니 그 말을 잘못 들은 아이가 어이 없다는 듯이 "내가 안 예쁘다고?"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웃으면서 "너도 사실은 네가 예쁜 거 알지?"라고 속삭이며 장난을 주고 받았습니다. 마음의 긴장이 좀 풀리자 비로소 더 중요한 게 보였습니다.
"다은아 엄마, 아빠 눈에는 솔직히 네가 예쁘긴 한데.. 사실 그거랑 상관없이 엄마, 아빠는 너를 엄청 사랑해. 아빠는 그게 중요한 거 같아."
그러면서 어린이집 선생님과의 면담이 떠올랐습니다. "다은이는 정말 사랑스러워요. 집에서도 얼마나 사랑해주시는지 보이더라고요." 선생님은 아마 대부분 부모에게 비슷한 말씀을 해주셨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저 얘기를 듣고 얼마나 반갑던지 주책 맞게 "그쵸?"라고 반문할 뻔 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흔들리던 마음도 차분해집니다. 언제인지 모르게 아이의 부정적인 자기평가도 유야무야 사라졌습니다.
양육을 하다보면 문득 아이의 아쉬운 면이 유난히 커보이는 날이 있습니다. 그럴 때 '엄마, 아빠 때문'이라는 말이 머리를 채우면 평소 하던 좋은 생각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집니다. (저도 부모의 책임을 강조하며 이런 생각을 부추긴 것 같아 죄송한 마음입니다..) 사실 아이는 좋은 면들을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있고, 그런 점 역시 우리에게서 비롯된 것들인데 말이죠.
우리가 자기 반성을 하는 이유는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아이의 좋은 점에 충분히 눈 맞추며 '엄마, 아빠 때문덕분'이라는 기초를 튼튼히해야 합니다. 아이를 향한 긍정적인 시각과 그렇게 형성된 부모로서의 자존감이 바탕이 된다면 일부 아쉬운 면이 보이더라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아이가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나고 얼마 전 아이가 저 시기에 유난히 부정적인 평가를 자주 했던 이유를 드디어 알게 됐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