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샘 Feb 15. 2021

마흔다섯, 엄마에게 투정 부리기 딱 부끄러운 나이.

지적이지 않고 독립적이지 않지만 어른이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너, 엄마 원망하고 있니?”

“..... 아니.”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 말하는 게 딱 엄마 원망하고 있는 거구만.”

“.......아니라니까.”

“야, 나도 살기 힘들었다. 너 그만큼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는 것도 나는 정말 최선을 다 한 거야.”

“알아요.”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아닌 게 아니었다. 나는 엄마를 원망하고 있었다. 가난이 지겨워서 엄마를 원망하면서도 평생을 나보다 더 치열하게 살고도 나보다 더 가난하게 산 엄마가 불쌍해서 차마 입 밖으로 내놓을 수는 없었다. 나이 마흔다섯인데 아직도 자기 인생에 책임을 못 지고 인생이 뜻대로 안 풀리면 엄마 탓을 하는 한심한 어른. 어른이 아닌 어른.

내가 일 년째 팔리지도 않는 좁디좁은 빌라에서 살고 있는 것이, 번듯한 아파트에 살아보지 못하는 것이, 시어머니 갑질에 시달린 것이 어째 내 엄마의 탓일까마는 엄마 탓을 해버리고 만 것이다. 과거의 선택을 했던 것은 나인데 왜 그건 다 엄마가 나를 세뇌했기 때문이라고 찌질하기 짝이 없는 원망이라는 똥을 애꿎은 엄마에게 싸 댄 것일까? 엄마가 죽도록 일해서 대학까지 보내 놨으면 내가 스스로 더 나은 생각을 했어야 하지 않나? 엄마의 생각이 틀렸다고 판단했다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걸 선택했어야지 왜 이제 와서 한심하게 엄마 탓을 한 것일까? 대체 나는 언제 어른이 될까? 나도 어른이 되긴 할까?


이런 죄책감과 자괴감에 시달리느라 일이 손에 안 잡혀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브런치를 통해 메일을 하나 받았다. 21세기북스라는 출판사였다. 책을 읽고 리뷰를 써달란다. 그런데 책 제목이, 책 홍보 문구가 안 그래도 뜨끔뜨끔한 가슴을 후벼 판다.


“내 머리로 생각하고 행동하라!”

“지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위한 생각의 기술, 어른의 교양”


그래서 덜컥 하겠다고 해버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 한 권 읽는다고 철딱서니 없는 한 인간이 갑자기 어른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책은 재미있다. 몇 년 만에 밤새워 책을 읽었다. 물론 책이 재미있어서 밤을 새운 것은 아니다. 5인 이상 집합 금지 때문에 그 어디에도 갈 수 없다는 핑계로 명절 내내 누워 잤더니 잠이 오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도 책이 재미없다면 잠들었거나, 책을 집어던지고 다른 짓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쓴 천영준 작가는 기술정책학자라고 한다. 데이터와 콘텐츠를 이용하는 사용자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다 ‘인간주의’라는 개념에 천착하게 되었고, 사람의 인식과 행동 본질에 관련된 옛사람들의 연구를 추척하기 위해 고전 원문 읽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작가가 소크라테스부터 애덤 스미스까지 30인의 삶에서 찾은 생각의 기술을 어른들이 읽기 쉽게 풀어놓은 책인가 보다.



전체적으로 어렵지 않게 술술 읽을 수 있다. 내가 가볍게 읽어서 그런가 그냥 고개를 끄덕거리며 빠르게 읽었다.

알던 내용은 내가 나이먹고 생각이 달라져 느낌이 사뭇 다른 것이 재미있었고, 모르던 내용은 새롭게 알게 되니 흥미로웠다.



예를 들면 석가모니. 왕자였던 석가모니가 인생의 답을 찾고 진짜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가출을 했다는 부분을 읽으며 스무 살 때는 참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참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진짜 내가 누구인지 알려면 내게 주어진 삶 속에서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책임지는가를 봐야하는 거 아닌가?

하!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구나. 결국은 또 자책으로 이어지지만 말이다.


 


가장 흥미로웠던 인물은 ‘르 코르뷔지에’. 요즘 내 모든 고민을 만든 사람이란다! 프랑스 건축가인 르 코르뷔지에는 ‘누구에게나 편하게 살 집을 줘야 한다’고 외치며 인류 역사에 아파트를 선보였다고 한다. 그는 한국에서 아파트 값이 이렇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으며 많은 사람들이 사고 싶어 하는 공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면 어떤 생각을 할까? 역시 내가 옳았어라고 생각할까? 한국의 투기꾼들에겐 사는 곳이 아닌 사는 것이 되어버린 것을 보며 씁쓸해할까? 아무튼 그는 실용적인 것이야 말로 가장 숭고하다는 생각으로 인류가 윤택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풀어냈다.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를 자신이 찾아낸 방법으로 풀어낸 역사 속 인물들을 만나는 것은 유익한 시간이다. 나도 나의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고 내가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서 엄마 탓을 한 미안한 마음을 전화 한 통으로 때운다. 칠순의 엄마는 어른이 되지 못한 마흔다섯 살짜리 딸의 투정을 또 받아준다.


“엄마, 죄송해요.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좁은 집에 갇혀있으려니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서 그랬나 봐요.”

“아니야, 우리 딸이 코로나 때문에 얼마나 답답할까, 내가 왜 진작 더 악착같이 돈 모아서 우리 딸한테 넓은 아파트 한 채 척척 사주지 못했을까 싶어. 미안해.”

“내가 일해서 사야지. 왜 그걸 엄마가 사줘요.”

“그래, 열심히 벌어서 니 아들하고 넓은 아파트에 좀 살아봐라. 근데 너는 아들하고라도 같이 있지. 엄마는 하루 종일 집에서 혼자 있으려니 정말 우울증 올 것 같다.”


눈물이 핑 돈다. 엄마의 외로움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어른이 되긴 글렀다.





** 이 글은 21세기북스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썼습니다. 원고료는 받지 않았습니다. ^^;;



작가의 이전글 Mom, open your eye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