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이 생겼다

다시 일하는 기쁨

by 올리가든

명함이라는 걸 받고 보니 직장인이라는 실감이 났다. 내 이름이 찍힌 명함을 갖게 된 건 처음이었다. 좀 어색하기도 했지만 좋았다. 전 직장에서는 명함이 필요하지 않았다. 새로운 내 일은 밖으로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이 많다 보니 명함은 필수였다. 처음에 200장을 받았는데 가을에 다시 200장을 더 찍은 걸 보면 여기저기 참 많이도 다녔던 것 같다.


처음 보는 이에게 그냥 누굽니다 라고 소개하는 것보다는 명함을 건네는 게 편리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구구하게 설명 안 해도 소속과 직책만 보고도 대강 뭘 하는 사람인지는 힌트를 주는 게 명함이기도 하다.


그렇게 명함을 살포하듯 뿌리고 다니던 어느 날 퇴근길에 앞집 윤서 엄마와 현관에서 만났다. 내 차림을 보고 어디 다니시냐고 물으며 집에 들어와 차 한 잔을 하자 했다. 무슨 일을 하느냐 묻기에 설명하기도 어려운 신생직업이라 명함을 건넸다.

“어머, 이런 일도 있어요? 뭘 하는 건데요?”라고 시작한 그녀의 질문이 이어졌다. 얼굴만 알고 인사 정도만 나누던 우리는 서로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녀는 두 아이를 키우며 집에서 가끔 그림을 그리는, 미술대학원을 마친 회화 전공자였다. 나보다 10살이 젊은 30대였다.

“언니, 출근하는 게 너무 좋아 보여요. 부러워요. 저도 뭔가 하고 싶은데 경력도 없는 아줌마가 어디에 취직하겠어요.” 스스로 포기한 듯한 말투였지만 자신의 욕구를 적극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라면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알아볼 테니 일단 정보를 좀 찾아볼 것을 권했다.


아파트 같은 통로의 또래 엄마끼리 서로 초대해 차 마시며 시간 보내는 게 일상이었던 그녀에게 변화가 일어난 건 두어 달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낮에 집에 없는 것 같아서 일하게 된 거냐고 물으니 “아니…. 그냥 애들 가르쳐 보려고요. 마땅한 게 없더라고요.”

초등학생 방문학습지 선생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원하던 일을 찾은 건 아니지만 일을 한다는 것이 즐거운 모양이었다.

“좀 힘들기는 한데 그래도 활력이 생기니 좋은데요.”

그렇게 시작한 학습지 선생님을 1년을 넘게 하던 그녀는 고등학교에서 미술을 담당하는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전공을 찾았다.


1교시에 수업이 있다며 아침 일찍 출근하는 그녀와 종종 마주치기도 했다. 힘든 건 사실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미술 수업을 하게 되어 기쁘다고 했다.

어쩌면 내가 명함을 뿌리고 다닌 것이 그녀에게 자극제가 되었을지 모르겠다.


나이 들어 새롭게 일을 시작하면서 좀 달라진 게 있다면,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조금씩이라도 성장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 지역사회에서 봉사자로 활동하든, 책 읽는 주부로 소통하는 이웃을 만나든,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가든 각자가 원했던 것을 찾는 실마리가 되길 바랐다. 그러는 가운데 나도 그들도 함께 성장하면서 새로워지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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