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봤어요?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자유

by 올리가든

홀로 분투하며 개척했던 공공영역의 사업 전담자 역할을 쉽게 단념하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그동안 버텨온 것도 사실이고 새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맞다 싶었다.

농사짓는 집안에서 성장한 나는 흙에서 자라는 것들에 속절없이 끌린다. 신기하고 어여쁘고 사랑스럽다. 여름의 옥수수밭을 보면 가슴이 벅차다. 산비탈의 콩 모종이 그렇게 이쁠 수가 없다. 시골길을 걸을 때는 언제나 그 냄새와 공기와 소리에 행복하다. 어릴 때, 울타리 안 배추밭을 매면서 맨발에 느껴지던 촉촉한 갈색 흙의 감촉을 기억한다. 이런 생태 감수성은 아마 태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시농업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서울의 공원 한쪽을 텃밭으로 만들고 아파트 옥상에서 먹음직한 수박을 키워냈다는 자랑이 인터넷에 올라오던 때였다. 저건 내가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한 끝에 일산에 있는 도시농업 교육 기관을 찾았다. 내가 하고 있던 사업 운영자 역할과 병행하면서 프로그램 안에 텃밭 활동을 넣어주고 싶었다. 그러면 내용도 풍성해지면서 텃밭은 참여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는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움이 따랐다. 2개월이나 되는 교육과정은 주중 매일 수업에 가야 했다.



무엇을 선택할까, 뭐가 내게 중요한가를 생각했다. 지속적인 활동과 거기에 따라오는 수입이냐, 어떻게 될진 모르지만 내가 해보고 싶은 걸 하느냐의 문제로 좁혀졌다.

돌잡이 하는 아가처럼 잠시 망설이던 나는 텃밭 농부의 호미를 집어 들었다. 내가 더 젊었을 때라면, 아마도 경제적인 쪽을 고려했을지 모르겠다. 아이를 키워야 하고 사회생활에서 나의 포지션과 같은 외형적인 것들도 무시할 수 없었을 테니.


일산까지 1시간 20분이 걸리는 거리를 즐겁게 다녔다. 서울 지하철 3호선은 화정역 근처부터는 지상철이라 바깥으로 시골 풍경을 볼 수 있어 좋았다. 4월부터 6월까지 15명의 수강생이 매일 만나다 보니 금방 친해졌다. 농사 외에도 집에서 화초를 키우며 나름 전문성을 가진 친구도 있었다. 이론을 배우고 나니 농장으로 가서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고 키우는 실습도 했다. 어릴 때 해본 일이니 새로울 것은 없지만 함께해서 즐거웠다. 점심에는 각자 가지고 온 간식을 나누어 먹으며 웃음 만발한 시간을 보냈다.

밖으로 나가 흙을 만지는 일은 스트레스가 없다. 심고 뽑아주고 물을 주고.

더워지기 시작하는 6월 초까지 챙모자 하나 눌러쓰고 밭고랑에 주저앉아 일하는 행복을 누렸다.

교육과정을 마치자 각자 배운 것을 활용해 보기로 했다. 나는 일산에 있는 초등학교 방과 후 시간을 배정받았다. 함께 공부한 친구와 2인 1조로 주 2회 수업을 진행했다. 그때가 방학인 7월이라 학교에는 방과 후 아이들만 있었다. 무덥던 날 수업 자료를 가지고 학교까지 먼 길을 가는 게 걱정이었다. 다행히 방과 후 담당 선생님께서 재료 준비를 해주셨고 수업도 보조해 주셨다. 우리는 가서 강의만 진행하는 정도로 수월해졌다. 무보수 봉사였기에 학교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와주셔서 강의 초보자의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처음 1개 학교만 하던 나는 좀 자신감이 붙자 다음 달에는 1개를 더 추가해 2개 학교를 진행했다. 함께하던 친구가 이 일을 더 할 수 없는 사정이 생겨 혼자 2개 학교를 했다.


초등학생 대상 수업은 다소 힘이 들었다. 어린이 도시농부학교가 다 실습이어서 만들고 심고 하는 활동이니 아이들이 산만해지는 건 당연했다. 처음 가르친 아이들과의 수업을 의미 있게 남기고 싶었다. 아이들이 배추를 심고 벌레를 잡아주고 서로 물을 뿌리며 노는 사진들을 모았다. 음악을 넣어 CD로 만들었다. 과정을 마치는 날, 담당 선생님께 드리고 나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시점부터 나는 땀깨나 흘리며 고생한 초등학교 텃밭 강의 과정을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다음 해, 내 블로그를 본 서울의 큰 도서관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도서관 옥상 텃밭에서 봄부터 가을까지 주말 어린이 농부학교를 운영했다. 보람 있는 일이지만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했다. 이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은 나에게 어린아이들 수업은 힘들다는 사실이었다. 기가 빠지는 느낌, 힘을 소진한 기분이 들었다. 보는 것과 하는 것은 다르다. 해봐야 제대로 안다.



그 가을은 개인적으로 분양받은 5평 텃밭을 가꾸며 소소한 행복을 누렸다. 밭일은 두세 시간씩 이어지는데 일이 다 끝나야 힘들다고 느낀다. 신기하게도 일하는 중에는 어디서 힘이 솟아나는지 알 수 없다. 이러니까 손에 흙 묻히며 일하는구나 싶다. 작은 밭에서 자라는 것들을 돌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한없이 평화롭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어도 땀방울이 목덜미로 흘러내려도 충분히 참을 만하다. 잠시 불어오는 바람만 있다면.

내가 흙으로부터 느껴온 이런 감정은 종교와도 비슷하다.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가득 채워지는 만족감 말이다. 내 나이가 더 들고 하는 일이 적어진다면 작은 텃밭 농사지으며 늙어가고 싶다. 작은 텃밭이란 전제가 붙는 이유는 농사를 밥 먹고 사는 일처럼 한다면 밭일은 정말 힘든 노동임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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