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일을 모색하게 되었다. 도시농부 일은 내게 즐거운 취미였지만 지속적인 일이 되긴 어렵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새 일을 찾는 데는 1년 전 했던 사업운영자 역할이 큰 도움이 되었다. 이것 역시 지자체가 처음 시도해보는 사업이어서 경험자가 있을 리 없었다. 사업의 틀은 달랐지만, 전직의 사업 전담자 경험을 확장해 보는 정도였다. 거기에 기업의 속성을 추가한 시스템이었다. 기업에 대한 이해는 지난 20년 했던 일의 한 부분이니 수월하게 적용해갔다.
새로운 조직을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들( 윗분들)도 이런 일이 처음이긴 마찬가지였다. 행정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이끌어가고 있는 행정조직, 아이러니였다. 그건 그런 게 아니고 이렇게 하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조직의 운영에 대해 왈가불가할 자리가 아닌, 나는 그곳의 그냥 직원이었다. 헤드부터 실장 팀장까지 모두 ‘그들’의 범위에 속하는 사람들뿐이었다.
처음엔 그들에게 걸맞은 능력이 있으니 그 자리에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전직 공무원의 순진한 생각이었다. 한두 달이 지나는 동안 지켜보니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들은 왜 매일 야근을 해야 할까. 물론 사업의 틀을 세우고 끌어가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관련 공무원을 일정 기간 파견 요청해서 도움을 받는 것도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공공행정을 배우고 거기에 공무원이 하기 어려운 방법을 가미한다면 혁신적인 조직이 될 수 있을 텐데, 혁신이란 말을 많이 하던 때였으니 말이다.
우리 사업체는 시간이 지나며 나름대로 시스템을 마련해 갔다. 나도 동료들이 생겼고 어울려 지냈다. 혼자 동분서주하던 사업 전담자 역할보다 체감하는 업무의 강도는 가벼웠고 월급은 늘어났다.
그 회사에서 좋은 점도 있고 배울 점도 있었다. 공공의 자금으로 운영되었지만, 공무원이 아닌 사업부서의 분위기는 자유로웠다. 3년이란 기간을 정해놓고 목적사업을 수행하는 곳이었다. 직업공무원이 아니니 승진이라든가 하는 경쟁 분위기에 매이지 않았다.
누가 해본 적 없는 새 사업이라서 우리는 회의를 통해 논의하고 결정하는 일이 많았다. 30명이 빙 둘러 마주 보는 좌석을 만들었다. 회의가 길어지면 각자 편한 대로 일어서 있기도 하고 뒤에 남은 책상에 걸터앉기도 했다. 모두 한쪽을 보는 공간에 익숙했던 나에게 이 자유로움은 매우 신선하게 느껴졌다.
쉬는 시간에 밖으로 나가면 사람들이 모여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건물 한쪽에 있던 살구나무 아래서 10여 명 남녀가 모여 안개 같은 연기를 뿜어 대고 있었다. 처음 이 광경을 봤을 때 너무 신기하고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서 피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이전 직장에서 가끔 남자 직원들이 주차장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뻐끔거리는 건 보았다. 그때는 그들이 안쓰러워 보였다.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일하다가 좀 쉬려고 나온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동료의 절반 이상이 흡연자였고 안 피우는 사람이 오히려 소수였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못하지만, 흡연에 대해 낯설지는 않았다.
엄마가 나이 들어 담배를 피웠기 때문이다. 엄마는 치아 모두 틀니를 했었는데 틀니 초기에 메스꺼움을 억제하는데 담배가 효과 있다는 권유에 의해 담배를 배웠다고 했다. 밥 먹고 나면 현관문 밖에 놓인 빨간색 낡은 소파에 앉아 피우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래서인지 흡연자를 싫어하지도 담배 냄새가 역겹지도 않았다.
동료들은 각자의 개성이 있었지만 원만하게 잘들 지냈다. 일하던 곳이 다르고 살아온 경험치가 달랐지만, 각기 강점이 있었다. 그래서 서로가 돕는 형태로 일하면서 잘 지냈다. 무엇보다 혼자 일하던 나는 동료가 생긴 것이 좋았다. 함께 어울리고 서로 의지하면서 맡은 역할을 해 나갔다. 한시적인 조직에서 만났으니 경쟁할 일도 없었다.
3년 차에 그 조직을 정리하는 단계에서 시에 소속되느냐 자치구에 소속되느냐 그냥 해산되느냐에 대한 논의가 몇 달 동안 이어졌을 때 함께 많은 고민을 했다. 그래서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동료였던 사람들이 생각나면 어려움을 공유하던 그때의 감정이 느껴진다.
나는 이 일을 통해 공무원 조직에서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많이 보았다. 틀에 들어맞지 않는 것들이 때로는 수월하게 뭔가를 만들기도 한다는 것, 돈을 적게 벌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을 덜 인식하고 나름대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2시간 하면 될 일을 밤을 새워야만 해내는 사람도 있다는 것, 각자의 일을 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공유하거나 도우러 간다는 것, 어느 정도는 솔직히 비판할 수 있다는 것 등이다.
또 하나는 직업공무원이 아닌 '그들'의 범위에 드는 사람들은 비록 한시적이지만 생각지도 못한 큰 권한을 갖게 된다는 사실도 알았다.
어쩌다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고 다른 세상이 있음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일은 나의 다음 직장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로서 경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