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에도 뽑아줄까?
세상은 수요공급의 법칙 안에 있다
퇴직하고 나니 굳이 서울의 2호선 근처에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덜 복잡하고 공기 좋은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래도 서울과 쉽게 연결되는 수도권을 벗어나고 싶지는 않았다. 이사 오고 가장 큰 차이는 대중교통이었고 일거리였다. 수십 년 동안 전철을 이용하면서 당연할 줄 알았던 이동의 신속성과 편리성이 이곳엔 없었다. 거기에다 뭔가를 해볼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았다. 서울에선 일자리가 아니면 일거리라도 찾으면 찾아지는 곳이었다. 서울이 왜 특별시인지 알 것 같았다. 대한민국의 기회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그곳을 벗어나고서야 인식하게 되었다.
새로운 도시는 2호선 근처와 비교 안될 만큼 자연환경이 무척 좋았다. 쾌적한 숲이 있었고 넓은 호수가 있었다. 하지만, 멋진 뷰를 보는 것만으로 살 수는 없잖은가. 아는 사람도 없고 무료했다.
뭐라도 해볼까 하고 또 인터넷을 캐보기 시작했다. 우연히 모 재단의 직원 채용 공고가 보였다. 이것 역시 새로 만들어진 재단이어서 한 달 전부터 관리자를 먼저 채용했고 이제 직원 채용도 거의 막바지였다. 시 설립재단이니 조건은 공무원 수준이었다. 경력요건은 내가 직전까지 했던 일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채용조건을 갖춘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았다. 업무 자체도 내 경력과 매우 유사해서 낯설지 않았다. 다만, 내 나이에도 채용해 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당시 구직시장에서 50이 넘는 나이는 서류 탈락인 경우가 많았다. 경력이나 능력의 문제 이전에 50대면 일하기에 너무 많은 나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원서를 내보는 건 내 자유니까, 맘 편하게 질러보기로 했다.
사실, 공채에 응시하기로 한 것은 어느 정도는 실험적인 도전이었다. 50대의 재취업자를 채용할지 가늠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전년도에 실업수당을 받는 동안 나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쓰기, 면접과 같은 채용에 관련된 3개월짜리 전문교육과정을 이수했다. 비록 단기간이지만 학생들 대상 취업 강의에 보조강사로 들어가기도 했다. 덕분에 채용 서류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이를 단점으로 보지 않는다면 나는 적격자였다. 누군가는 그건 당신 생각이고 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쪽에서 원하는 경력이 모두 내가 한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시가 설립한 재단이니 목적 사무는 다르지만, 시스템이 운영되는 방식은 공공행정이나 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공무원의 일을 잘 알면서 재단의 사무도 해본 사람이니 내가 아니면 누가 적격자란 말인가. 당신들이 필요하면 뽑겠지 하는 담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결국, 이사 온 지 한 달 만에 다시 출근하는 사람이 되었다. 입사해서 일을 해보며 깨달았지만 나는 그들이 가장 하기 어려운 일을 맡기려고 뽑은 사람이었다. 입주 기업들을 관리하고 아카데미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이 내가 맡은 주 업무였다. 기업관리 영역은 기존 직원들이 하기 싫어한 일이었다. 내가 관련 경력이 있고 나이도 있으니 다소 어려운 일이라도 해낼 걸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들이 필요한 곳에 써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나이가 문제가 되지 않았을 터였다.
나의 재취업은 시장의 수요와 공급 법칙을 벗어나지 않았다. 조직과 구직자가 서로의 욕구를 채워주는 것, 그것이 직업 세계의 원리이고 사회가 굴러가는 이유일 것이다. 냉정 하달 수도 있지만 지극히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