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이 더 아까워요
일하는 것의 기쁨과 슬픔
경력과 나이는 무기이기도 했지만 나 자신에게 좀 부담이 되기도 했다. 나이 든 만큼 잘하고 싶었다. 출근하자마자 새해 사업계획을 세우느라 바쁘게 돌아갔다. 각자 맡은 업무의 계획이 몇 차례의 수정을 거쳐 하나로 묶이면 팀 계획이 되었다. 워드 치고 수정하고, ctrl+c 와 v를 반복하는 작업이 야근까지 하게 했다.
하루는 동료가 하는 말이, 매일 늦게 퇴근하는 아빠에게 아들이 묻더란다. 아빠는 회사에서 무슨 일 하시냐고. 아빠는 워드 치고 월급 받는다고 대답했다는 소릴 듣고 웃음도 나고 슬프기도 했다. 사실이긴 했다. 우리는 몇 달 동안 거의 매일 워드 치고 회의하고 월급을 받았다. 연간 사업계획을 세우고 새 사업을 기획하면서.
나의 주 업무 중 하나였던 기업관리가 시간을 소비하게 했다. 이 문제는 재단이 설립되기 이전에 있던 단체에서 물려받은 일이라고 했다. 처음부터 영(0)이 아닌 것을 0이라고 생각하고 맞추라 하니 안 맞는 게 당연했다. 숫자는 대충 맞춰지지 않는다.
나는 일이 어떻게 된 건지는 알아보고 싶었다. 처음부터 안 풀릴 그것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할 만큼 했고 더는 그것에 시간을 낼 수 없었다. 그럴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검내용을 요약해서 상황을 보고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조직이 새롭게 론칭될 때 완전히 새 사업이면 좋다. 우리가 잘하면 되니까. 하지만 이관되어 온 것들은 그게 아니다. 인수인계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 고생 제대로다. 흔히 이런 걸 두고 남이 싼 똥 치우느라 개고생 한다고 하지 않나.
아카데미를 기획하고 강사를 섭외하고 과정을 홍보하고 수강생을 모집하고 진행하는 일련의 과정이 기획 운영의 한 세트다. 지역신문에 올라갈 홍보기사를 써주고 플래카드나 인쇄물을 제작하는 것 탐방 활동과 같은 외부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것도 이때 해봤다. 하나의 과정이 끝나면 보고서를 올려야 마무리다. 이 경험은 나중에 다른 곳에서 요긴한 도움이 되었다.
기획단계에서 결재라인에 늘어선 분들이 속을 좀 썩였다. 트집을 잡으려면 뭔들 못 잡겠나. 우리를 힘들게 했던 건 팀장과 헤드(head)가 사이가 안 좋았다는 거였는데 중간에 낀 우리 담당자들은 엄마 아빠 싸우는데 눈치 보고 가끔 얻어맞는 꼴이었다. 직원들만의 회식자리에서는 그 둘이 꼰대와 또라이의 조합이라고 안주거리가 되곤 했다.
공직은 인사이동이 정기적으로 이뤄지는 곳이다. 그래서 맘에 안 드는 상사나 동료가 있어도 참고 지낼 수 있다. 2년, 짧으면 1년이면 헤어지니까. 그런 면에서 공무원 조직이 그나마 오래 근무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지도 모른다. 반면, 산하기관들은 헤드를 선출직 지자체장이 임명하기 때문에 단체장의 입맛에 맞으면 연임은 어렵지 않은 경우도 많다. 조직 규모가 크지 않으면 인사이동이 있어도 같은 건물 내에 있거나 하여튼 그 영향권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이런 곳에서는 더욱 좋은 사람들이 만나야 직장생활이 수월하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처럼 세상에 거저 되는 일은 없다. 직장은 월급을 줄 테니 너의 삶을 달라는 듯 일하고 일하고 야근도 자주 했다. 그렇게 일한 대가로 그전 직장보다 곱절의 급여가 통장에 들어왔다.
늘 피곤한 나는 월급을 써볼 시간이 없었고 집에서는 짜증만 늘었다.(내가 그곳을 나온 후에 식구들이 한 얘기였다) 과다한 업무량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건 지나친 간섭이었다. 좀 지나면 해결될 걸로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모든 일을 해결해 주진 않는다. 포기가 해결일 때가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노력한 만큼 좋아진다면 그곳에는 희망이 있다. 안 그럴 때가 진짜 문제다.
찌뿌둥한 일상을 개선해보려고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을 시작하고 나름 애를 쓰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쌓이기만 하는 심신의 스트레스를 견디고도 멀쩡할 만큼 나는 젊지 않았다. 내가 안 벌면 식구가 굶나? 이 일을 안 하면 내가 불행할까? 일을 관두는 게 사회악인가? 다 아니다. 자명한 답이 나왔다.
회사를 떠나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하고서야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 지치고 행복하지 않은, 돌보지 못한 나 자신에게 너무도 미안했다. 좁디좁은 닭장에 갇혀 모이만 쪼아 먹는 닭처럼, 매일 알만 낳아주는 어미 닭처럼 아무것도 돌아보지 못하고 일만 한 것처럼 느껴졌다.
어떤 이는 그런 일자리를 놓고 나오는 게 아깝다고 했다. 직장 구하기 어려운 때에 배부른 소리라는 뜻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내 인생이 더 아까웠다.
사건의 한가운데 있을 때, 우리의 눈은 그 안에 집중된다. 객관적인 것을 보기 어렵다. 거기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그 자리를 제대로 본다. 나는 겨울 스포츠인 프로배구 팬이다. TV 중계를 보면 ‘벗어나서 바라보기’를 자주 한다. 게임이 안 풀릴 때, 감독은 세터나 각 포지션의 선수들이 벤치에 나가 관전할 시간을 준다. 쉬고 들어온 선수들이 더 나은 플레이를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우리 팀과 상대 팀의 경기를 밖에서 지켜보면 새롭게 보이는 게 있는 법이다.
우리 삶의 일들이 이 같은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나 현실은 쉼을 주지 않는다. 일을 버리고 나와서 더 좋은 기회를 잡을 수도 있지만 가졌던 일조차 놓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쉽사리 벤치로 나가볼 생각을 못 한다.
지금은 일의 두 가지 측면이 너무 극단에 있다. 일을 안 하면 먹고 살기 어려운데 일이 없는 경우가 있고, 돈 쓸 시간도 없이 죽어라고 일만 하는 고액 연봉자도 있다. 일을 나누어서 돈을 나누는 방법이 필요하다. 삶은 제각각이라 일에 대한 생각도 다를 것이다. 어느 정도의 일이 개인의 삶에 행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