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자 일상의 모든 부담감이 사라졌다. 같은 의미로 할 일도 없어졌다. 그렇지만, 집안일이라는 최후의 직업이 있었다. 그것도 직업인데 바깥일을 병행하느라 그간 힘들었던 거다. 집안일은 잘하려면 매사가 일 투성이지만 평생 전업주부로 있어 본 적 없는 나는 집안일은 완벽이 아닌 최소한으로 했다. 북클럽에서 만난 어느 분이 화장실 청소를 2시간씩 한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워킹맘이 퇴직하면 집안이 반짝반짝 윤이 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영 모르시는 말씀이다. 시간이 있으나 없으나 하고 사는 건 똑같다. 솔직히 한 일주일 정도는 반찬 만들어 쟁여놓고 청소하고 잘했다. 하지만, 군대 갔다 온 아들의 태도가 일주일 만에 회복되는 것과 비슷하다. 아들이나 엄마나 회복 탄력성이 최고다.
직장에 다닐 때는 책 읽을 엄두를 못 냈다. 조용히 책을 읽는 건 감히 바라지도 않았다. 경력이 쌓여가면서 그 분야에서는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했지만, 내가 알고 있는 건 좁은 지식이란 걸 퇴직하고서야 알았다. 나의 무지와 오만이 부끄러웠다.
우리 도시는 도서관은 정말 남부럽지 않다. 서울보다 좋은 점은 자랑스럽게도 도서관이다. 시설도 좋은 데다 규모도 크다. 이사 오길 잘했다고 느끼게 하는 것 중 하나는 단연 공공도서관이 많다는 거였다.
도서관에 다니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졸졸 흐르는 개울가를 걸어 싸리꽃과 금계국, 수레국화가 화사한 오솔길 끝에 도서관이 있다. 수만 권의 장서가 있는 그곳은 나에게 놀이터였다. 거기에서 책만 읽으며 하루를 보낼 수 있는 현실이 너무 고마웠다. 한 달을 조용히 파묻혀 책과 사랑에 빠졌다. 오고 가는 길은 하루 만 보 걷기를 덤으로 챙겨주었다.
〈분노의 포도〉나 〈안나 카레니나〉 같은 긴 소설을 읽었을 때는 내가 너무 자랑스러웠다. 젊을 때부터 짧은 시 정도만 읽던 인내심 없는 나라는 사람이 소설을 완독 한 것이다. 책은 내 안에 차오르는 기쁨을 가득 부어주었다.
독서의 맛을 알게 된 것과는 별개로, 매일 혼자 책만 읽는 것은 외로운 일이었다. 읽고 이야기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도서관의 독서동아리에 가입했다. 회원들은 어떤 분들일까 기대하며 일주일을 기다렸다. 40~50대의 여성 일곱 명이 모였다. 매주 수요일 오전에 두 시간 동안 토론을 했다. 회원들이 자유롭게 정한 책을 미리 읽고 오는데, 그 책을 추천한 회원이 그날의 발제자가 되었다. 몇 개의 논제를 가지고 생각을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초등학생 중학생을 둔 엄마, 대학생 자녀나 직장인 자녀를 둔 전업주부 등 형편은 다들 달랐지만, 책 읽는 기쁨을 이미 알고 있는 선수들이었다.
같은 책을 읽고도 감상은 같기도, 다르기도 했다. 모두가 공감하여 맞장구를 칠 때 조용히 듣다가 완전히 상반되는 느낌을 말하는 회원도 있었다. 아차 싶으면서도 분위기가 전환되고 토론하는 보람이 되었다. 다른 의견이 반대가 아닌 새로운 시각으로 보였다.
누군가 처음, 시를 외워보자는 제안을 했을 때 못한다고, 50대가 긴 시를 어떻게 외울 수 있냐고들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신기한 건 외워진다는 거다. 나이가 뭘 못하게 하는 건 아닌데 먼저 겁을 낸 거였다. 나이는 죄가 없다. 스스로 움츠러들고 핑계 대는 내가 아니라면.
여러 사람이 추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게 되었다. 문학 외에도 자연과학, 사회학, 철학, 예술 등 혼자였다면 감히 읽지 못했을 장르를 읽었다. 재미없고 어려워 읽기 싫은 것도 있었지만 약속을 지키려고 끝까지 읽었다.
성실한 회원들은 독서 노트에 깨알 같은 글씨 빼곡하게 인상적인 구절을 기록해와서 읽어주었다. 이런 정성 때문에 혼자만 안 읽고 올 수가 없었다. 서로 다름을 이해하며 나의 지식과 생각의 경계가 조금씩 확장되어 가는 걸 느끼게 되었다.
점심을 함께 먹고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런 시간이 믿음으로 쌓이고 따뜻한 공감대가 생겨났다.
블로그에 도서 리뷰를 남기기 시작했다. 그냥 잊어버리기엔 아쉬웠다. 내 생각을 정리하고 의미 있는 구절을 기록해서 공유하고 싶었다. 혼자 책 읽던 때의 나처럼 외로운 독서가에게는 보이지 않는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독서 활동을 통해 우리가 어느 만큼씩 성장했다고 믿었다. 용기를 얻어 함께 글 쓰는 일을 시작하고 싶었다. 일상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해 보자는 의견을 냈다. 회원들은 손사래를 쳤다. 자기를 글로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소위 사모님이라 불리는 사람들이었고 선량한 인테리들이었지만 자신을 대놓고 드러내는 건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글쓰기는 용기가 필요한 일인가 보다. 아쉽지만 혼자라도 할 수밖에 없었다. 블로그에 <도서관 가는 길>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고 짬짬이 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