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일해야 해요?

에필로그

by 올리가든

공직이나 금융기관에서 퇴직한 분들을 자주 만난 적이 있다. 퇴직자의 재취업을 돕는 정부 위탁 전직지원업체의 교육과정에서였고, 다른 하나는 서울시에서 퇴직 중장년의 활동을 지원하는 50+사업에서였다. 대개 50 중반에서 60이 막 넘은 분들로 나보다 연배가 위였다. 은행의 지점장 출신이 많았고 대기업에서 부장 이상으로 퇴직한 사람들, 드물게는 선생님이나 공무원 퇴직자였다.


퇴직 초년생인 그분들에게 사회적응(직장 아닌 곳에서 다시 살아가는 방법)에 도움을 주기 위한 역할이었다.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겐 공통으로 할 일이 필요했다. 어떤 분들은 한 달에 200만 원만 주는 곳이면 일하고 싶다고 했다. 눈앞의 현실은 전 직장에서 받던 월급의 절반, 아니 삼분의 일도 안 된다는 200만 원을 주는 데가 귀한 게 사실이었다. 동호회 활동처럼 취미가 맞는 모임을 원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일자리를 찾아 수입을 얻고 싶고, 아니면 일거리를 찾아 자신의 품위에 어울리는 활동을 함께할 친구가 필요했던 거다.


무엇을 원하든 우선 나가서 찾는 용기가 필요하다. 지속해서 시도해 보는 적극성과 자신을 믿는 자존감은 필수다. 이전 직장에서 퇴직했다고 사회생활이 끝난 것은 아니니까. 남은 생애 동안 누구든 아무 일도 안 하면서 살기는 어렵다. 삶의 보람이 꼭 일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일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준다. 생계유지, 자아실현, 사회적 안정감 등. 혹여, 생계유지를 위한 돈벌이가 필요치 않은 사람일지라도 아무것도 안 하고 살 수 있을까.


퇴직을 앞둔 직장인들을 만나보면 우선 여행이나 다니고 싶다고들 말한다. 왜 안 그렇겠는가. 퇴직하면 놀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에 백만 번이라도 공감한다. 하지만, 마냥 놀면서 느끼는 행복은 유효기간이 너무 짧다는 데 함정이 있다.


나도 일 년을 책만 읽고 지낸 시간이 있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자양분이 되었고 꼭 필요한 시간이었음에도 당시에는 이것 말고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일요일 같은 화요일과 수요일, 주중과 주말은 나에게 똑같은 일상이었다. 그날이 그날인 그런 시간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모순이지만 스트레스 없는 일상이 바로 스트레스였다. 어느 정도의 부담과 책임이 주어질 때 활력이 솟아나는 경험을 했다.


이런저런 일을 경험하고 있던 나를 만난 지인이 말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직장을 다니고 퇴직했는데도 다시 일을 해야 해요? 이제는 놀며 지내도 되잖아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할 수 있는 동안은 하고 싶어요. 적정한 보수가 따라주면 더할 나위 없고요, 그게 아니라도 정서적 에너지를 주는 것이 필요하거든요.”


젊은이든 장년이든 자기의 일을 찾아간다는 것이 요즘엔 수월하지 않지만, 가만히 기다리거나 포기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살아가는 게 내 맘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럼에도,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리는 이치는 작동한다고 믿는다. 문을 두드리는 노력이 있다면 말이다. 일을 원하는 누구라도 그 문을 쿵쿵 두드릴 용기를 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