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자리에서 보는 풍경
시민이 되어 바라보니
나는 다시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사람이 되었다. 퇴직하고 2년 가까이 이런저런 활동을 했지만, 고정적인 자리에 나가게 된 건 처음이다. 아직 추운 2월이라 뭔가 더 설레고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남편이 출근 기념이라며 백화점까지 가서 털 재킷을 사주었다.
출근 첫날, 팀장님과 담당자를 만났다. 그들이 이 사업의 주관자이면서 궁금한 것을 나에게 물었다. 내가 맡은 일이 아직 누구도 해본 적 없는 새로 생긴 업무였기 때문이다. 사업의 예산을 가진 건 그들이었지만 일에 대한 전반적인 운영은 나에게 일임하는 형식이었다.
사람들을 모집하고 소그룹으로 교육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아카데미 기획자이며 운영자 같은 역할이다. 사람들을 대하는 건 어렵지 않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전직에서 만났던 수많은 일반 대중의 한 사람과 다름없었고 이번엔 그나마 뭔가를 제공하는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가보지 않은 길은 새롭고 낯선 것들로 가득했다. 어느 날은 햇빛이 찬란했고 또 어느 날은 먹구름으로 어두웠다. 혼자 고민하고 해결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일하면서 만나는 아파트 관리소장님들과 주민들이 나의 고객이고 친구가 되었다.
만나는 분들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명함에는 OO 전문가라는 정말 낯선 직함이 붙어 있었지만 우리는 서로 그렇게 불렀다. 참여자들 대개가 40~60대의 여성이어서 그런 호칭이 더 편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명함을 주었고 받았다. 사업을 설명하고 참여를 호소했다. 알고 있던 사람은 한 명도 없이 모두 초면이었지만 이 일이 즐거웠다. 내가 속한 자치구를 거의 발로 답사했다. 버스를 타거나 걸어 다녔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내 사업의 참여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연결해주고 돕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직장 초년생 같은 열정이 되살아났다.
일하는 것에 천국은 없다. 내가 할만하다고 느꼈던 이유는 새로 일을 갖게 되었다는 기쁨으로 스스로 에너지를 짜냈기 때문이다. 사무실의 사업 관련자들은 내게 위로가 되기도 했지만,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다.
그들의 무관심한 태도에 화가 났지만, 그들 처지에서 보면 새롭게 만들어진 사업이란 언제나 귀찮은 일이었다. 기존 업무에 덤이 붙었다고 생각하니 그랬을 것이다.
그해 여름이 유난히 더웠다. 잠시만 걸어도 땀이 흘렀다. 참여자들을 모집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너무 힘들다고 느껴질 땐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러다가 다시 나 자신을 다독였다.
‘이게 뭐라고,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자. 그냥 하는 데까지 해보자고. 지난 20년 동안 이것보다 더 어려운 일도 잘 해냈잖아. 이 정도를 내가 못할까.’
결국, 1년 사업을 마무리했다. 첫 사업이라 모든 것이 새로워서 좋았고 그래서 외롭고 힘든 시간이었다. 사업이 끝나고 잠깐 지방으로 여행을 떠나 있던 내게 담당자가 전화를 해왔다.
상기된 목소리로 “선생님, 알고 계셨어요? 저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우리가 최우수상 받았어요!” 그렇게도 소극적이었던 그는 내게 고맙다고 했다.
사람들은 공공이 시행하는 일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를 갖는 듯하다. 공공예산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저런 일을 왜 하나 하는 비판적인 시각도 그중 하나다. 그 생각을 변화시키는 건 쉽지 않다. 시간이 필요하고 누군가 공공과 시민 사이의 매개 역할을 해야 한다. 나는 공공행정을 오랫동안 경험한 사람이고 이제 일반 시민이다. 그나마 양자의 처지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내가 전 직장에서 일할 때 시민들이 불만스럽게 내뱉던 말이 ‘당신들 탁상행정이라고’란 말이었다. 그때는 자신의 의무는 다하지 않고 공공에 비난만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 자리에서 나와, 이제 시민의 입장으로 살아보니 탁상행정이다 싶은 경우를 경험하게 된다. 나는 공공에서 월급을 받지만, 시민의 입장을 고려하는 반관반민의 자리에 있었다. 양자의 시각을 잘 이해하고 연결하며 조율하는 일이 내 역할이기도 했다. 이 일에 지원했던 많은 사람 중에서 나를 뽑아 준 이유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자리에 앉아야 비로소 새로운 풍경을 보게 된다는 말이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