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직장인의 굴레나 감옥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삶의 현장이고 가끔은 그 조직의 일원인 것이 다행스럽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진저리 치며 직장을 떠났던 내가 다시 일자리를 찾아 나선 이유도 소속이 주는 안정감이나 일이 주는 몰입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을 테다.
신록이 눈부시고 담장을 따라 덩굴장미가 주렁주렁 열린 5월, 나는 처음으로 전업주부가 되었다. 아파트 옆 초등학교로 걸어가는 꼬마들의 재잘거림을 들으며 열무김치를 담느라 부산을 떨었다. 양쪽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 라디오를 틀어놓았다. 라디오 진행자의 목소리마저 통통 튀듯 싱그러웠다. 미풍에라도 날아갈 듯한 내 마음엔 행복하다는 감정이 가득 차올랐다. 누구라도 보고 웃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토록 행복하던 시간은 석 달에 지나지 않았다. 아들이 안정되자 노동 관성이 붙은 내 몸은 알아차렸다. 집안일을 하는 것이 하늘을 나는 기분이 아니란 걸.
직장을 다니면서도 정년퇴직을 염두에 둔 적은 없다. 퇴직을 고민할 때도 어차피 정년 채울 것 아니면 좀 일찍 나가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좀 더 이른 나이에 나가면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아직은 40줄이었고 일하는 것에 대한 열정은 충만했다.
퇴직자가 다시 일하고 싶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이고, 잘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는 건 매우 중요하다. 그 중요도만큼이나 대답을 찾기도 어렵다. 맘 편한 취미 생활이 아닌 바에야 지속적인 활동이 가능하고 각자의 상황에 따른 수입도 나와줘야 하기 때문이다.
진로나 취업교육 쪽에서는 성격 심리검사를 통해 개인의 성향을 알아보고 그것을 직업 분야로 연결해 활용하기도 한다. MBTI나 애니어그램을 통한 분석으로 내게 가장 적합하고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일치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엇을 할 건지 준비하고 퇴직한 사람이 아니라면 뭐 하고 사는 게 행복할지 찾느라고 고민하게 된다.
나도 그랬다. 새로 일을 하기로 맘먹으며 무엇을 하지?라는 고민이 따랐다. 가계 수입이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다행히도 생계를 걱정할 상황은 아니었다. 조직에 속한 근로소득자가 아닌 내가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싶었다.
당시, 여성의 직업군으로 확장세에 있던 공인중개사 공부를 시작했다. 10월에 시험인데 두 달 남겨놓고 합격은 당치도 않은 일이라서 문제 유형과 시험장 분위기만 파악해 보자는 생각으로 원서를 냈다. 과락 없이 평균 60점이면 합격하는 시험이다. 평균 50점이 나왔다. 그동안 해왔던 직무와 약간의 관련성이 있기에 익숙했던 것 같다. 공부 안 하고 50점이면 1년 동안 공부하면 될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들었다. 수험서를 사서 온라인 강의를 들었다. 나는 공부도 일하듯 했다. 정해진 시간에 성실하게 집안일하면서 차곡차곡 쌓아가리라고.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있다. 뭐가 그렇게 피곤했는지 어느 날 저녁장을 봐서 돌아오는 길이 너무 힘들게 느껴졌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을 것 같은 피곤함이 몰려왔다. 걷는 것조차도 힘에 부치는 날이 며칠 계속되자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말했다.
“아이고, 엄청 피곤하셨겠어요.” 그 한마디에 며칠 간의 고통을 이해받은 기분이 들었다. 아픈데도 없이 피곤하다고만 하니 가족들은 푹 쉬라는 말 밖에는 공감하지 못했다. 갑상선 수치가 정상치보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높다고 했다. 수술치료는 아니지만 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이미 갑상선 약을 먹고 있는 언니들이 있기에 평생 먹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일단 쉬어보고도 참을 수 없는 피곤함이 계속되면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당장 약 처방을 권하던 의사는 마뜩잖아했지만 그렇게 하기로 했다.
한 달 후, 다시 병원에 갔을 때는 수치가 많이 낮아진 상태로 호전되었다. 몸이 금방 예전처럼 돌아간 건 아니어서 무리하지 않도록 조심하느라 부동산 중개사 시험은 포기했다. 아쉬웠다. 8개월을 공들였던 시간이었는데. 그때 공부하면서 느꼈던 것은 중개사를 업으로 하든 하지 않든 이 공부는 참 유용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지인들에게도 시간이 있다면 한번 공부해 보시라고 권하게 되었다.
갑상선 문제는 그동안 쉼 없이 일만 했던 내 몸이 투정을 부리고 화를 냈던 사건이다. 20년의 직장생활은 녹녹지 않았다. 살림과 육아, 과중한 업무에 의무적으로 부과된 자기 계발까지 해야 했다. 지나고 생각해 보면 열심히 살았지만 잘 사는 삶은 아니었다. 하루하루 견뎌온 것이었다.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흔히 말하는 번아웃 상태였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퇴사도 ‘치유의 시간이 필요한 사건’이라고. 비자발적 퇴사든 원하는 퇴직이었던 심지어 정년퇴직한 경우라도 어느 정도 휴식기는 필요하다. 멀리 가기 위한 쉼이다. 개인마다 상황은 다를 수 있지만, 수고한 자신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시간이나 보상이 있다면 좋겠다. 당시엔 나도 그런 것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지만 내 몸은 그게 아니었던 거다.
이런 동화가 있다. 숲에서 두 사람이 벌목작업을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부지런히 쉬지 않고 나무를 찍어댔고, 다른 한 사람은 중간중간 도끼를 벼르며 쉬었다. 결과는 다 짐작하듯이 날 선 도끼를 가진 후자가 더 오래 더 많은 나무를 벨 수 있었다.
여름과 가을을 지나면서 내 몸은 예전과 같은 활기를 되찾았다. 다시 뭔가를 해보고 싶은 욕구가 되살아났다. 인터넷 검색하다가 ‘이거 나한테 딱인걸’ 싶은 게 눈에 띄었다.
주 4일, 하루 6시간 근무, 탄력시간 적용 가능, 더구나 계약직, 다 좋은 조건이었다. 퇴직 후 더는 9시 출근 여섯 시 퇴근이라는 정규직을 원하지 않았다.
지원자격으로 세 가지를 나열하고 있었는데 사회복지사도 주택관리사도 나에겐 없는 자격증이었다. 마지막이 ‘이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자’라는 참 신기한 조건이 남아있었다. 포기할 수 없었다. 지원서를 깔끔하게 워드 쳐서 노란 포스트잇을 한 장 붙여 보냈다.
“자격증은 없는데요. 저는 3번 조건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이 일을 잘 수행할 수 있습니다.” 뽑아주는 건 그분들 맘이지만 나는 지원서를 내 볼 권리가 있다. 되면 좋고 안돼도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보냈다. 그다음 주에 전화가 왔다. 축하드린다고, 성실히 일해 달라고 말이다. 새로운 직업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나에게도 열렸다.
지원자격의 상단에 나열된 조건을 갖추지 못했을 때, 대개는 원서조차 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때 조금은 무모 하달 수 있는 행동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
지인의 딸이 교환학생을 신청하던 때였다. 모든 공개모집은 여러 조건을 내세우게 마련이어서 교환학생도 이런저런 스펙이 필요했다. 그러면서 맨 아래 조건이 ‘학점이 B 플러스 이상인 자’라는 항목이 있었다고 한다. 그 아이는 자기가 딱 B+이니 조건에 해당한다면서 신청을 하더라는 말을 지인에게서 들었다. 지인은 딸이 또라이 기질이 있어서 그런다고 했지만 나는 딸의 순수한 마음이 용기라고 생각했다.
아이는 교환학생에 선발되어 미국 대학에서 1년을 마치고 왔다. 지금은 미국의 글로벌 기업에서 컴퓨터 보안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미리 겁내서 안 될 거라고 생각하는 마음, 똑똑한 사람들 많은 데 내가 뽑히겠어하는 약한 마음이 사실은 우리를 주춤거리고 더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다. 기회를 잡는 건 작은 용기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