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용기였을까?

20년 직장을 떠나고

by 올리가든


사진 속 나는 꽃다발을 들었고 웃고 있다. 나를 둘러서 있는 동료들도 햇볕에 약간 찡그린 표정이지만 웃음 짓는 모습이다. 그날 아침 간부 회의에 들어가서 마지막 인사와 덕담을 나눴다. 그러고는 따라 나오는 사람들과 현관에서 찍은 사진이다. 10년 전 자발적 퇴직을 했다. 정년이 60세인 조직에서 40대인 나는 그곳을 떠나기로 했다.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출퇴근을 했었지만 퇴직하는 날까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 점심시간도 되기 전에 집에 왔다. 꽃을 들고 동네를 걷는 기분이 참 낯설었다. 이제야 떠나왔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혼자 점심을 먹으려니 밥이 먹히지 않았다. 퇴직을 결심하고 나서는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었지만 20년을 다닌 직장인데 아무렇지 않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2년마다 전근하는 직장에서 일했다. 퇴직을 결심하게 된 시점도 직원 이동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나는 팀장급이었지만 막 승진을 한 터라 보직을 기다리는, 아직은 실무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동료직원과 상사 사이에서 양쪽을 잘 연결하는 역할이기도 했다.

순환보직이란 인사이동 때마다 새로운 부서로 배치해서 여러 직무에 대한 경험을 쌓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경험들은 전체적인 일의 연결성을 잘 파악하게 되니 부서별 협력이나 조직이해에 도움이 된다. 보직순환의 단점이라면 직장 초년생이 아니라도 새로운 일에 적응하기까지는 두어 달은 고생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전에 해봤던 직무 일지라도 다른 부서를 돌고 온 몇 년 사이에 시스템이 바뀌어 있으면 새로운 일처럼 배우기도 한다. 그래서 인사시즌이면 사람도 익히고 일도 새롭게 익히느라 다들 정신이 없다.


그날도 일거리에 코를 박고 있었다. 방학이라 집에 있던 초등생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다. 하루에 한 번은 사무실로 전화를 하는 터라 학원 갔다 왔다는 전화인 줄 알았다. 아들은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울음을 터트렸다. 혼자 밥 먹는 게 너무 힘들다며 엉엉 울었다. 막 사춘기에 들어서고 있던 아들, 성격으로 보아 그냥 그럴 아이가 아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우선 마음을 진정시키며 아들을 달랬다.

퇴근해서 아들을 보니 아직도 낮의 그림자가 남아있는 듯했다.

“오늘 처음 울고 싶었던 건 아니지? 언제부터 그랬어?”

“혼자 밥 먹는 게 너무 싫고 힘들어요.”

“진작 엄마한테 말하지 그랬어.”

“엄마 걱정하실까 봐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을까. 직장 일로 힘들어하는 엄마가 자기 때문에 걱정할까 봐 말을 못 했다는 생각을 하니 아들한테 너무 미안했다. 사실 엄마가 집에 있는 애들은 방학이면 얼굴이 통통해지는데 아들은 오히려 얼굴이 갸름해지곤 했다. 아침에 싸놓은 도시락만 먹으니 그랬던 거다. 혼자 먹는 맛없는 밥, 외롭고 우울했을 아이를 생각하니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건가’하는 자책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들에게는 방법을 찾아보겠다며 안심을 시켰다.

남편에게 낮의 일을 얘기했다. 잠깐 고민하던 그는 “당신도 힘드니까 그만 다니는 게 어때. 애도 이제 사춘기 올 거고.”

“그렇지! 애가 중요한 것 맞지?” 나는 그렇게 맞장구를 쳤지만 속으로 고마웠다.

맞벌이하는 선배가 하던 얘기가 있다. 어느 날 저녁을 먹으며 직장 더러워서 못 다니겠다 관두겠다고 했단다. 말없이 듣던 선배 남편은 어두운 베란다로 나가 줄담배를 피워대더라고 했다. 아내가 퇴직할까 봐 겁나서였을 거라며 다들 웃었다.


직장의 선배나 친구에게 퇴직 얘길 했더니, 일단 휴직을 내보는 게 어떻냐고 했다. 그 당시로는 2년 정도의 휴직을 쓸 수 있었다.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내 마음은 ‘이제 떠나고 싶다’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동안 사소한 불만이야 있었지만 나는 대체로 내 일에 긍정적이었다. 책임감 때문이었을지라도 열심히 일했고 따라온 적절한 성과도 좋았다.

하지만 대개의 직장인이 그렇듯 나에게도 주기적인 슬럼프가 찾아왔고 이젠 정말 넌더리 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흘을 고민한 끝에 퇴직하기로 했다. 부서장과 인사부서에 의사를 밝혔다. 퇴직에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며 언제까지 출근할지를 협의했다. 마음이 이미 떠나서였는지 하루라도 빨리 나가고 싶었다. 인원이 많은 조직이지만 정기인사가 이미 끝난 후에 결원이 생기는 거라서 내 자리에 새로운 사람을 받기까진 시간이 필요했다. 우선 동료들이 일을 분담하는 모양이었다. 다행인지 근무 종료일을 며칠 남기지 않은 시점에 공채자가 와서 내가 했던 업무를 인수했다.


퇴사 후에 지인들이 내게 묻는 말은 거의 비슷했다. “왜 그만두셨어요? 그 좋은 직장을.”

정년이 보장된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어 아깝다는 의미였던 것 같다.

아들은 남들처럼 엄마가 있는 집의 아이가 되었고 곧 중학생이 되었다. 아이들은 금방 자란다. 무섭다는 중2도 사춘기도 무사히 지나고 있었다. 이제는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하지 않은, 학원에서 늦게 오는 딱한 청소년이 된 것이다.


그 후로도 직장을 왜 그만두었냐는 물음에 대답하거나, 나를 소개할 때 ‘자녀 양육을 위해 직장을 퇴직했다’라고 말하곤 했다. 40대에 자발적으로 직장을 관두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어서였는지 어떤 사람들은 내가 부럽다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용기가 대단하다고도 했다. 자신이 하지 못한 자발적 퇴직을 했으니 한 얘기겠지만 ‘너 나가서 어떡할래’ 하는 염려도 포함된 의미였다.

좀 지나서 생각해 보니 퇴직은 복합적인 이유에서였다. 나는 직장 일에 탈진해 있었고, 남편은 나를 말리지 않고 그만두라고 했을 뿐이다. 결정적으로는 울고 싶은 사람 뺨 때려준 격으로 아들이 한방을 터트려 준 것이었다. 나는 그런 상황을 핑계로 공직이라는 갑옷을 훌훌 벗어 버렸다. 그때 안 그랬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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