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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가든 Oct 06. 2021

추억의 쓴맛, 구절초 조청


이맘때 산에 가면 구절초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나는 중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논으로 밭으로 엄마를 많이 따라다녔다. 엄마는 몸빼 바지를 입고 머리에 수건을 쓰고 고무신을 신었다.

우리가 콩이나 고구마를 심은 산 밭으로 가던 길에는 구절초와 백미 같은 약용식물이 눈에 띄곤 했다. 구절초는 길가 키 작은 소나무 아래나 비탈진 등성이에서 자랐다. 여름에는 잎을 보고 구절초를 알아보지만, 가을에는 꽃이 피니 멀리서도 찾기 쉬웠다.


구절초 잎은 국화잎과 비슷해도 잎 면이 희뿌연 국화와 달리 윤기가 난다. 가느다란 갈색 줄기에 몸체는 그다지 볼품없어도 하얀 꽃만큼은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았다. 구절초는 다년생이긴 하지만 뿌리가 깊지 않았다. 한 손으로 휘어잡아 당기면 뿌리째 뽑혔다. 그때마다 잎에선지 뿌리에선지 진한 냄새가 났다. 아마 둘 다에서 나는 약초 향기였을 것이다. 뽑힌 뿌리를 왼손 바닥에다 툭툭 쳐서 달라붙었던 흙이 떨어지면 엄마 앞치마에 차곡차곡 넣었다. 내가 보았던 구절초는 대체로 척박한 땅에서 자랐다. 작은 돌들이 많은 흙에서 악착같이 성장한 것들은 풀숲에서 자란 가늘고 큰 것보다 작았지만 줄기도 당차고 향도 더 짙었다.

엄마가 구절초를 보는 족족 채취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리 집은 아들 말고도 딸이 다섯이나 되었다. 딸들에게 구절초 조청을 만들어 먹일 생각이었다.

산 밭을 오가며 뜯어 모은 구절초가 어느 정도 양이 되면 조청을 만들 때가 된 것이다. 춥기 시작할 때였으니 가을걷이가 끝나고 한가해진 12월 초순 이었다. 잘 말린 구절초를 달여내면 꺼먼 물이 나왔다. 여기에다 불린 엿기름과 찹쌀을 넣고 종일 끓였다. 적어도 이삼일은 조청 만드는 일에 매달렸다. 엄마는 밤중이나 새벽에도 가마솥 아궁이에 불을 살피러 드나들었다. 온 집안에서 쌉쌀한 한약 냄새가 났지만 그 냄새가 좋았다.


어느 정도 되었다고 생각될 때, 조청을 주걱으로 떠서 주르륵 흘려보면 더 달여야 할지 멈춰야 할지를 알게 된다. 꿀 정도의 점성이 생기면 먹기에 아주 좋은 상태다. 까맣고 윤기나는 구절초 조청이 되었다. 여름의 뙤약볕과 가을밤의 이슬을 먹고 자란 구절초의 쓴맛과 엿기름의 단맛, 쌀의 진득함이 조화롭게 엉겨 새로운 맛으로 탄생했다.


겨울에 이른 저녁을 먹고 나면 출출해지기 마련이었다. 안방에서 뒤꼍으로 난 창호 문을 열면 조청 단지가 손에 닿았다. 단지 뚜껑 위에는 스테인리스 국자와 밥그릇이 있었다. 언니들과 나는 각자 반 공기쯤 떠서 숟가락으로 조금씩 먹었다. 처음에는 쓴맛에 찡그리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쓴맛보다는 단 뒷맛에 한 숟가락 더 뜨게 되 묘한 맛이 있었다.


엄마는 “우리 집은 딸내미들이 많아서 내가 이걸 꼭 만든다.”라고 하며 해마다 구절초 조청을 고았다. 구절초가 손발이 차고 몸이 찬 사람에게 좋다고, 여자는 뱃속이 따뜻해야 한다고 했다. 딸들이 모두 집을 떠나 독립할 때까지, 구절초 조청 만드는 일이 엄마의 겨울 행사였다.


지금은 녹용을 처방한 보약도 중금속이 많다고 먹을 생각을 못 한다. 손수 자연에서 채취한 재료로 며칠이고 불을 때며 고아 낸, 뭉근한 사랑과 정성을 이제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쓰지만 몸에 좋은 보약, 소박하지만 은근한 것들은 사실 그 시절 구절초 조청 같은 것들이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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