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카페인은 여기저기에 들어 있다
아직 아내가 여자친구였던 시절. 나는 성산동에, 아내는 남가좌동에 살았다. 행정구역상으로 성산동은 마포구, 남가좌동은 서대문구에 속한다. 하지만 성산동과 남가좌동은 이웃동네로, 그녀와 나는 걸어서 꼭 15분 거리에 살았다. 우린 하루가 멀다하고 만났다. 매일매일이 빛나는 날들이었다.
그 빛나는 날들의 추억 한켠에 남가좌동과 성산동 사이에 있던 '도깨비 커피집'이 있다. 이 커피집 주인은 실제로 도깨비를 떠올리게 하는 인상을 지닌 커피 명인이다. 낡은 1층 건물을 수리해서 만든 까페 실내에는 늘 갓볶은 커피향이 가득했다. 평일 낮시간에도 손님들이 적잖게 자리를 잡고 커피를 마시는, 인근에서는 꽤 명소였다.
이 커피집은 아내가 사는 남가좌동과 내가 사는 성산동을 가로질러 한강으로 이어지는 실개천인 모래내에 인접해 있다. 커피집에 앉아 있으면 차량 통행량이 많은 사거리와 고가도로가 내다 보인다. 우리는 그 사거리에서 늘 작별인사를 했다. 아내와 나는 망원에서 신촌방면, 혹은 홍대에서 상암 방면으로 달리는 차들을 보면서 "오늘은 여기서 인사하고 헤어지는 거야"라고 말하곤 했다.
그 날은 늦은저녁이었고, 내일 또 만나자는 말을 하기가 너무 아쉬웠던 우리는 차들이 내달리는 사거리 초입에 자리한 커피집에 들어갔다. 도깨비 사장은 늦은 저녁에 들어서는 우리를 보며, "30분 뒤에 문 닫습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괜찮다고 말하고 주문을 하기로 했다. 나는 메뉴판에서 코코아를 가리켰다.
"밤이니까, 커피 말고 코코아 마셔야겠다."
그럴까, 라는 여자친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깨비 사장이 덧붙였다.
"코코아에도 카페인 들어갑니다."
도깨비 사장이 너무나도 진지한 얼굴로 말을 했기 때문에 (사실 그 사장님은 평소 손님에게 불필요한 말을 걸지 않았다) 나는 약간 놀랐다. 여자친구가 도 사장에게 물었다.
"코코아에 카페인이 많이 들었나요? 처음 듣는 얘긴데,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커피만큼은 아니지만 적지 않습니다. 그래도 주문하시겠어요?"
아내는 '마셔도 괜찮겠어?'라고 물었다. 나는 그녀와 따뜻하고 달콤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보내고 싶었고, 나는 도깨비의 경고를 무시하고 코코아를 주문했다. 어쨌거나 그는 도깨비가 아니었고, 나는 그저 손님이었으니까.
코코아에는 카페인이 얼마나 들었을까? 커피집 주인은 코코아에도 적지 않은 카페인이 들어있다고 경고했다.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비교대상은 당연히 커피였고, 맥락상 당연히 커피 못잖은 카페인이 코코아에도 들어 있을 거라는 얘기였다.
얼마전 아내와 집에서 코코아를 타 마시다가 그때 일이 떠올랐다.
"그때 도깨비집(가끔 이렇게 부름)에서 코코아에 카페인 많다고 그랬잖아. 이거 먹고 잠 안오면 어떡하지?"
"그날 코코아 먹고 잠 못 잤어?"
"응."
그러자 아내가 내 코코아 컵을 잡아뺏었다. 아내는 늦은 오후에 커피를 마셔도 잘 자는 반면, 카페인에 예민한 편인 나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 손에 들린 컵을 되찾아오며 말했다.
"그때는 그냥 자기 만나고 집에 가면 잠이 잘 안 왔어."
아내가 웃으며 덧붙였다. "아무튼 다는 안 돼. 반만 마셔."
나는 따뜻하고 달콤했던 추억을 즐길 권리를 당신이 빼앗을 권리는 없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컴퓨터를 켜서 코코아의 카페인 함량을 검색해보고 나서 다 마실지 반만 마실지 결정하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이것 좀 봐."
휴대폰으로 검색을 하던 아내가 흥미로운 것을 찾아냈다. 코코아의 원료인 카카오 열매가 커피보다 먼저 카페인 음료로 서구에 소개되었다는 사실이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내딛기 전부터, 카카오는 남미 문명의 지도자들이 널리 즐기는 고급 기호식품이었다. 아내는 위키피디아의 카카오 항목을 읽어주었다.
"카카오 열매 하나에는 20~50개의 씨앗이 들어 있는데, 이것을 모아 발효시켜 말린 것을 카카오콩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카페인 등의 흥분제와 지방이 함유되어 있다. 카카오콩을 빻아 코코아 음료를 만들거나, 우유와 설탕 등과 섞어 초콜릿을 만든다."
"그럼 초콜릿에도 카페인 든 거네?"
나는 재빨리 검색을 해보았다. 손바닥보다 조금 길쭉한 70그램짜리 가나 초콜릿에는 16mg의 카페인이 들어있다는 내용이 나왔다.
"16밀리그램이면 많은 거야 적은 거야?"
"음...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한 잔에 카페인 150밀리그램 들었대."
나는 스타벅스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시키면 항상 샷 하나만 넣어달라고 주문하고, 그것조차도 반 정도만 마시는 편이다. 커피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이상 마시면 약간 어질어질해진다. 아마 카페인 때문일 것이다.
"코코아도 얼마 들었는지 찾았어?"
아내는 잠시 검색을 하느라 말이 없다가, 잠시 후 화면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코코아에는... 한 스푼에 2밀리그램 정도?"
"나 좀 많이 탔는데."
아내가 숫가락을 흔들며 물었다.
"몇 스푼?"
"걸쭉한 게 좋아서 세 스푼 정도 넣었어. 그럼 12밀리그램."
나는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코코아컵을 들여다보았다.
"뭐 많은지 적은지 모르겠는데, 그냥 마시고 늦게 잘래."
"그러셔."
그 날은 평소보다 조금 늦게 잠이 들었지만, 잠을 설칠 정도는 아니었다.
카페인이 든 음료에는 카페인 함량이 표시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고카페인 음료라고 아예 표기가 되어 있는 핫식스나 스누피 커피 우유는 여러가지 이유로 졸음을 쫓아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부스터'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코코아나 초콜릿처럼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예 무시할 정도는 아닌 애매한 경우에는 누락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카페인 함량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단순하다. 카페인을 피하고 싶어서나 카페인을 해롭다고 여기기 때문은 아니다. 그냥 모르고 마셨다가 잠이 안 오면 괜히 다음날 피곤하기 때문이다. '아닌 밤중의 코코아'로부터 출발된 카페인 든 음식 찾기는 꽤 놀라운 결과들로 이어졌다.
예를 들면 어린 시절 아무 것도 모르고 마셨던 음료들 속에도 카페인이 꽤 많이 들어 있었다. 대표적인 게 콜라다. 콜라에는 100ml당 8mg의 카페인이 들어 있다. 홀쭉한 캔 하나에는 24mg, 뚱뚱한 캔 하나에는 32mg, 500ml짜리 페트에는 40mg이 들었다.
스벅 아메리카노 연하게, 그것도 반만 마시는 나로서는 콜라에 든 카페인은 적지 않은 양이다. 어린 시저 가끔 이유 없이 잠이 오지 않았던 밤들 가운데, 낮에 친구들과 마셨던 콜라가 영향을 미친 경우가 분명 있었을 것 같다.
의외로 카페인이 들어 있네, 정도가 아니라 고함량 카페인 음료보다 더 많은 카페인이 든 음식은 녹차 아이스크림이다. 브랜드마다 다르겠지만, 비싸서 가끔 사먹는 하겐다즈 녹차맛 아이스크림에는 같은 양의 커피보다 훨씬 많은 카페인이 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행히 녹차에는 카페인 흡수를 막는 성분이 있어서, 동일한 양의 카페인을 그냥 섭취하는 것보다는 효과가 덜하다.
그 외에도 외관이나 이름만으로는 카페인이 들었다고 짐작하기 어려운 경우들이 종종 있다. 예를 들어 마테차에도 카페인이 들어 있다. 청량음료의 경우에는 빽빽한 글씨로 들어찬 라벨을 살펴보면 카페인이 향미증진제로 표기가 되어 있어서 알 수가 있지만, 고카페인 음료에 해당되지 않는 커피나 차 음료의 경우에는 정확한 함량이 적혀 있지 않다.
만약 나처럼 카페인에 민감한 사람이거나, 혹은 어린이와 같이 카페인에 민감한 이들을 보호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의외의 곳에서 마주치는 카페인의 존재는 조금 난처하다. 카페인을 피해야 하는 늦은 밤이라면 정확한 함량을 알 수 없는 가공식품을 눈물을 머금고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더운 여름밤 편의점에서 마주친 녹차맛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