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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종찬 Aug 03. 2019

시대정신의 변화

The change of zeitgeist

시대정신 (Zeitgeist)은 "한 시대에 지배적인 지적/정치적/사회적 동향을 나타내는 정신적 경향"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시대의 정신 (spirit of the age)이다. 시대정신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사고와 경향이 환경의 변화에 따라 바뀌기 때문이다.


벤처 캐피털리스트 피터 틸은 그의 책 '제로 투 원'에서 비슷한 얘기를 한다. 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래를 바라보는 시대의 정서가 변화하였고 이를 네 가지 형태로 정리한다.


1. 명확하게 낙관적인 미래 (definite optimism)

2. 불명확하지만 낙관적인 미래 (indefinite optimsm)

3. 명확하게 비관적인 미래 (definite pessimism)

4. 불명확하며 비관적인 미래 (indefinite pessimism)


국가마다 시대변화의 속도가 다르긴 하지만, 피터 틸의 정리는 할아버지 세대와 아버지 세대, 그리고 우리 세대의 시대정신을 잘 표현한다. 할아버지 세대는 모두가 가난했지만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확신과 낙관을 가지고 살았던 세대였다. 기술 하나 없이 땅부지 사진만으로 해외 은행으로부터 수백억의 큰 자본을 유치하고 세계에서 가장 큰 조선회사 중 하나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시대였다.


국가경제가 위험하니 결혼반지, 금목걸이를 모아 국가경영을 돕자고 제안한 광주의 한 상인의 말을 받아들여 온 국민이 227톤, 약 2조 원이 넘는 금을 자발적으로 모을 수 있었던 것도 불명확한 미래를 낙관했던 아버지 세대에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먹을거리가 있는 것만으로 감사했던 확신과 낙관의 시대에서 다른 먹거리를 찾아나선 불확실과 낙관의 시대로 시대정신은 변화했다.


제로 투 원 - 피터 틸


우리는 현재 불명확하며 비관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내 또래 세대는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확신이 없는 동시에, 미래의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아버지 세대에서 올라버린 집값은 평생을 일해도 소유하지 못하는 수준이 되어버렸고, 부자의 탄생을 "개천에서 용 났다며" 자랑스러워하던 시대에서 부의 일굶 자체가 비난과 시기의 대상이 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우리 세대는 비관적이고 예민하다. 그들은 정치적 옮바름 (Political correctness)에 집착하고, 남성성과 여성성을 부정하며, 소유를 포기하고 모든 것을 공유한다. 실제적 행위보다 정신적 의미가 더욱 중요하게 받아들여진다. 할아버지 세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풍요를 누리지만, 정신적으로 빈곤하고 피로한 세대이다.




책임지지 않는 사회

우리 세대는 책임을 지지 않은 윗 세대의 결과물이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획일화된 교육을 주입했고 삶의 방향성과 인생의 결정을 대신해주었지만 자녀가 온실을 벗어나 사회에 나왔을 때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자녀 개인의 선택을 대신해줌으로써 그들의 경험, 고난, 역경과 배움의 가능성을 배제시켜버려 놓고 “나 때는 더 힘들었다”거나, “요즘 젊은 세대들은 나약하다”는 꼰대적 사고를 한다.


"공부 열심히 하고, 연애는 대학 가서, 직장을 잡고 안정적으로 살면 행복할 수 있어"가 이전 세대가 자녀에게 강요한 방식이었다. 어떠한 결정도 책임도 질 필요 없었던 자녀들이 커서 인생의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공허함으로 가득 찬 이유는 바로 책임의 부재 때문이다. 결국 부자들은 자립력을 잃은 자녀들의 차, 집, 결혼, 직장까지 대신 지불하며 책임 아닌 책임을 지지만, 재산이 넉넉지 않은 일반 가정에선 이마저도 어렵다. 결국 스스로의 인생을 책임지는 기회를 박탈해버리고 책임지지 않는 윗 세대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돈을 버는 행위는 책임의 영역이다. 사업을 일군다면 고객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고, 직장에 다닌다면 회사와 내 업무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우리는 그에 대한 대가로 돈을 벌고, 그 번 돈을 소비하는 행위를 권리로서 행사한다. 하지만 우리는 권리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뻔한 말이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 사회에 산다.


나심 탈레브의 책 '스킨 인 더 게임'에는 밥 루빈 드레이드 (Bob Rubin trade)란 명칭이 나온다. 금융산업이 발달하면서 천문학적인 금액이 몰리게 되었고, 리스크가 점점 높아지는 상황에서 금융권 종사자들은 시스템의 리스크와 개인의 보상이 연결되지 않는다는 현실에 안주하여 더 큰 보너스를 위해 리스크를 방치했고, 이 결과 금융위기가 왔지만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시티은행의 임원이었던 밥 루빈은 천억 원의 보너스를 챙겨갔지만 감옥에 가지 않았다.


이렇게 우리 윗세대는 나의 결정과 행동이 타인에게 피해가 갔을 때 그에 따른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을 만든 세대다. IT산업에서는 웹사이트 하나 만들어 상장하고 수백억을 챙겼던 닷컴 버블이 일어났고, 본질적인 발전보다 내외부 설득용 명분을 만드는 컨설팅 산업과 고객의 자산보호 보다 중개인의 커미션으로 구동되는 금융산업이 부흥했다.


The wolf of Wall street


본질적 진실이 무시되는 사회

본질적 진실은 항상 경시돼 왔다. 우리는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사회에 산다. 예를 들어 대학, 아니 학교의 존재 이유는 학문을 쌓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학교는 본질적 존재 이유인 학문을 가장 경시하고 부수 요소들로 가득 채운다. 대학을 가면 청춘과 낭만을 즐길 수 있고 졸업장이 있으면 취직이 잘되며, 인맥 쌓는데 도움이 된다는 등의 부수적인 조건들 말이다. 본질적인 건 눈에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학교는 경쟁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피부로 와 닿는 부수적인 요소들을 넣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할아버지 세대가 필요에 의해, 또는 변화를 위한 이상을 위해 일군 가치들은 산업화를 지나 아버지 세대에서 현상유지를 위한 명분으로만 존재하게 돼버렸다. 암호화폐 시장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P2P 결제시스템으로 탄생한 비트코인으로 시작해 기술발전이란 명목으로 수많은 코인들이 파생되었고, 결제시스템으로서의 사용은 경시되고, 수천 개의 코인에 베팅하는 도박장으로 변질되었다. 도박장이란 현상유지를 위해 암호화폐를 암호 자산이라 표하며, 마치 새로운 자산 클래스가 생긴 것처럼 포장한다.


세상에는 본질적 진실을 기반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과, 현재의 상태를 보고 미래를 예측하려는 사람으로 나뉜다. 빌 게이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컴퓨터도 익숙하지 않던 시절에 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인터넷은 팩스기 보다도 못할 것"이라 예측했다. 당시 범용화를 이루지 못했던 인터넷 시장의 상태만 보고 국경 없이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는 본질적 진실을 바라보지 못한 것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를 예측하고 경고했던 사람들은 미래를 예측한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뒤돌아보면 너무 뻔했던 본질적 진실을 얘기했던 것뿐이다. 서브프라임 신용으로 이러한 부동산 시장이 유지될 수 없고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아주 간단한 사실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의 상태를 보고 미래를 판단하기 때문에 본질적 진실을 무시한다.

본질적 진실을 보고 미래를 판단하는 사람들은 어떤 형태든 간에 그 진실의 논리적 결론을 얘기하는 것이고, 그 결론이 현실이 되었을 때 대중의 눈에는 미래를 예측한 것처럼 보인다. 현재의 상태만을 보고 현상을 이해하는 사람들의 예측은 블랙스완 (=예측하지 못한 큰 파급력을 가진 사건)으로 가득 차 있다. 즉 현상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기준이 본질적 진실인지 현재의 상태인지에 따라 명확한 결론이 될 수도, 블랙스완 효과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책임의 중요성

심리학 교수인 조던 피터슨은 책임이야말로 삶의 의미를 준다고 주장한다. 그는 "세상은 험난하고, 그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인생은 원래 고통스럽다. 이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선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고, 그 의미는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책임감을 가지고 해냄으로서 생겨난다. 따라서 개인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삶을 살아라"라고 얘기한다.

갓 학교를 졸업한, 세상에 어떠한 가치도 제공할 수 없는 20대들은 경험과 배움을 통해 사회나 주변인들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내가 어딘가 쓰일 수 있다는 사실, 세상이 나를 원한다는 사실이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이자 삶을 이어나가게 하는 동기라는 것이다.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선 책임을 가져야 한다.


모든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의미 있는 삶과 책임을 갈구한다. 조던 피터슨은 젊은이들이 지구온난화, 국제 인권, 세계평화와 같은 범국가적 책임에 대해서는 열정적인 이유를 스스로의 존재 이유 (삶의 이유)를 느끼고 싶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개인으로서는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타인에게 책임을 강요함으로써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세상이 필요로한 책임을 지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조던 피터슨은 책임의 범주를 개인으로부터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방을 먼저 치울 수 있어야, 개인의 삶을 책임질 수 있고, 스스로의 인생을 책임질 때 가정을 책임질 수 있고, 그렇게 자신의 능력에 따라 책임의 범위가 넓어지며 그 이후에야 국가 또는 범국가적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던 피터슨은 철학적 관점에서, 나심 탈레브는 리스크의 관점에서, 피터 틸은 투자의 관점에서 모두 '책임'의 중요성을 얘기한다.


희망적인 시대

변화는 항상 극적인 순간에 이루어진다. 자만의 끝에서 파멸하고, 절망의 끝에서 희망이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우리 세대는 낙관의 시대를 살지 못했고, 책임지지 않는 시대를 거쳐 변화를 갈망하고 있다. 의미 있는 삶은 책임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전파하는 조던 피터슨, 자신 또는 사회의 모든 행위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고 설파하는 나심 탈레브의 메시지에 사람들이 열광한다.


우리는 책임을 지고 본질적 진실을 흐리는 것에 대항하는 시대로 가고 있다. 미네르바스쿨, 알트스쿨와 같은 대안교육방식과 온라인 교육, 유튜브 등이 교육이라는 학교의 본질적 역할을 대체하고 있다. 기업들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대학 졸업장이 아닌 기업 채용의 본질인 개인의 '능력'을 더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결국 어려운 시대는 강인한 사람을 탄생시킬 것이고, 우리는 낙관과 확신이 가득한 시대정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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