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울제 2주차, ADHD약 1주차
항우울제를 복용한지는 이제 2주차, ADHD약은 이제 1주차에 접어들었다.
처방을 받은 이후로, 하루 한 번 꼬박꼬박 약을 먹고 있다.
하루도 잊거나 거른 적은 없었다.
비타민 먹는 것도 맨날 잊어버리던 내가, 이 루틴만큼은 거르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 조금 신기하긴 하다.
이것이 약의 효험인건지, 아니면 오늘 하루도 기복없이 살아가고픈 내 간절한 마음에서 비롯된 의지인 건지는 함부로 판가름할 수 없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나는 꽤 성실한 복용자라고 할 수 있겠다.
작은 알약 두 개로 내 일상이 얼마나 크게 달라졌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직 잘 모르겠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솔직한 소회이다.
그저 걱정과 불안이 조금 줄었고, 책상에 앉기까지의 시간도 조금 줄었고, 미루던 집안일을 조금 할 수 있게 되었고... 딱 이 정도?
인간다운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일들을 꾸역꾸역 해낼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에너지가 생겼다.
나는 여전히 내가 원하는 만큼의 생산성을 내지 못하고 있고 (여전히 글은 잘 안 써지고),
일은 여전히 하고 싶지 않고, 크게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없는... 뭐 그런 상태다.
조금 큰 발전이라고 느끼는 것은, 더 이상 이런 나의 상태에 대해 절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약을 먹기 이전에는, 이런 상태의 나를 인지할 때마다 너무 괴롭고 힘들었었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우울과 불안의 구덩이를 깊이깊이 파고 스스로를 떠밀어 넣었었다.
빛도, 물도 들지 않는 구덩이 속에서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을 홀로 감내했었다.
그랬던 내가, 요즘에는 구덩이를 파지 않고 있다.
내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시점이 달라졌다.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정도?
나는 더 이상 내가 파낸 구렁텅이로 빠져들지 않고, 땅 위에 발을 딛고 서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내게 벌어지는 불행과 불운에 대해, 그리고 그 앞에 무력하고 유약한 나에 대해. 쓸모 없어 보이는 나를...
그냥 그렇구나, 하며 받아들이고 있다.
구덩이를 파지 않으니 세상이 조금 더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의 나를 둘러싼 이 괴로운 상황과 고뇌가, 영원할 리 없다는 세상의 이치가.
언젠가 이 또한 지나겠지, 라는 당연한 진리가.
스스로에게 침잠돼 보이지 않았던 우주의 법칙들이, 다시 머릿 속을 맴돈다.
매일 아침, 두 개의 알약을 입 안에 털어넣으며 나는 소망한다.
나의 오늘 하루가, 부디 안녕하고 강녕하기를.
오늘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내어 내일에게 빚지지 않는 하루가 되기를.
어쩌면 좋은 하루를 위한, 작은 의식을 치룬다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아침마다 서랍속에서 약통을 찾고, 내게 딱 필요한 만큼의 알약들을 꺼내 신선한 물 한 잔과 들이키는 일련의 행위들은. 그렇게 하루에 하루를 더 해 성실한 복용자가 되어감은.
오늘 하루를 잘 지내보겠다는, 부단히 노력해보겠다는 나의 다짐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