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식 4일째
어제는 단식 삼일째였는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배가 고프고 기운도 없었다. 이 방법은 배가 안 고픈 단식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기억이 편집되었었나 보다. 수수팥떡 사무실에서 걸려온 전화에 상태를 얘기하니 "몸이 드디어 단식을 인식하나 보네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쯤 된장찜질을 하면 좋다고 권했다. 4시간이나 배꼽아래 된장팩을 붙이고 있어야 한다니 망설여진다. 고민하는데 젊어서는 잘 못 느끼지만 나이 들어해 보면 된장찜질 좋은 게 느껴진다고 했다. 단식키트에 포함되어 온 면보자기를 꺼내 된장팩을 만들기 시작했다. 랩으로 허리를 싸맸다. 4시간을 채우려고 아들 라이딩 갈 때도 된장팩을 붙인 채 갔다. 냄새가 날까 봐 두터운 잠바를 자크를 꼭 잠가 입었다. 뭔가 바쁜 날이었다. 아들을 데려오자마자 저녁을 차려주고 냄새를 빼기 위해 샤워를 얼른 하고, 학교 총회에 가야 했다. 된장찜질 후 꼭 해야 한다는 관장을 밤늦게야 할 수 있었다. 된장이 어떤 작용을 한 것인지 원리는 모르겠지만 장이 더 깨끗하게 비워졌다는 게 눈으로 보였다. 배도 더 꿀렁꿀렁 소리도 났다.
언제나 안내해 주는 사람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 하루종일 기운 없이 보낼 수 있었던 날에 "몸이 단식을 인식하는 중"이라는 말을 들어 '한 번은 겪어야 할 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고가 틔이니 예전 경험들과 긍정적인 생각들이 떠올랐다. 이렇게 힘든 날 다음에 찾아왔던 편안함이 떠올랐다. 영원히 안 먹고살 것 같은 날의 기억이 선명해졌다. 헬스 하다 근육통도 심해 고통스러울 때 "체지방이 빠질 때 그러더라고요"라는 말을 들었던 것과 같이 고통의 의미가 '제대로 되어가는 과정'으로 바뀌어 반가운 마음까지 들었다.
단식하는 동안에는 에너지가 매우 한정되니 필요 없는 곳부터 찾아 공급을 끊게 된다. 내가 '단식할 때가 되었구나'라고 느끼는 신호 중 하나는 뾰루지인데 그때 단식을 해보면 신기하게 뾰루지가 사라졌다. 몸 안에 상처나 염증이 있다면 이렇게 사라지고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단식은 눈에 보이지 않는 수술이라고도 하는 말에 동의된다.
오늘은 단식 4일째, 다행해 어제처럼 눈 뜨자마자 허기에 쫓기지 않았다. 생활단식이라 직장과 학교를 다니면서 할 수 있는 단식이다. 나도 일상을 거의 그대로 하고 있다. 테니스를 가면서 산야초를 잘 챙겨 먹고, 한 병은 기운 없을 때 마시려고 가지고 갔다. 볼머신을 치는데 평소보다 금방 힘들었다. 힘드니 좋은 점도 있었다. 볼머신이 내뱉는 공을 빨리빨리 쳐내기 바빴는데 몸이 느려지니 저절로 천천히 스윙이 되었다. 요즘 연습하는 게 천천히 공을 치기라 딱 좋았다. 느리게 치니 자세도 잘 보였다. 코치님은 내가 힘이 없는지를 전혀 눈치 못 하는 것 같았다. 고작, 3일 차니까. 체중계의 변화도 -1.6kg 밖에 안되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공따라 뛰어다니는데 숨은 찼지만 몸이 가벼워진 게 느껴졌다. 오늘도 손이 뼈에 달라붙는 느낌이다. 수분때문이겠지.
집에 와서는 비상식량 쌓아두는 싱크대 안을 정리했다. 보지 않는 책들도 밖으로 뺐다. 단식하는 동안에는 더 사지 않고 냉장고도 비워가고 있다. 예전에 제빵 한다고 포대로 사놓은 밀가루를 쓰기 위해 추가로 필요한 버터와 냉장고 야채들을 한꺼번에 말기 위한 김밥김은 샀다. 언젠가 먹을 것들을 사지 않고, 지금 있는 재료를 쓰기 위한 장을 보니 손도 가볍고, 마음도 가벼웠다.
단식 사흘째가 지나가고 있다. 칠부능선을 넘어가고 있다.
Johannes@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