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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츄 Jun 28. 2017

오래된 운하

6월 넷째 주-1

 일요일 오전이면 종종 찾는 옆 동네 차포드 언덕 놀이터. 

유일하게 애완견들이 같이 들어 가 놀 수 있는 놀이터다. 놀이터 안에 개울가가 있어 여름이면 물놀이도 할 겸 해서 간다. 개도 풍덩 애도 풍덩. 

큰길에서 놀이터까지 걸어가는 산책로 옆으로 이젠 사용하지 않는 작은 운하가 연못처럼 변해 있다. 19세기 유행했던 로맨티시즘 페인팅에 나올 법한 풍경. 

과거 양털 가공업이 발달했던 우리 동네에는, 철도와 도로 운송이 활성화되면서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100여 년 간 버려졌던 운하들이 여기저기에 있다. 'Mill'이라고 부르는 옛날 공장들이 대부분 양털 가공 공장이었다. 지금은 다른 공장이나 사무실, 주거지 등으로 용도가 변경되어 사용된다. 아직도 윔블던 테니스 공이나 당구대 용 고급 모직을 생산하는 역사 깊은 양털 가공 공장이 있기는 하지만, 한 두 군데를 제외 하고는 대부분 사라졌다. 

최근 들어 주민들의 주거 환경도 개선하고, 관광화할 목적으로 버려졌던 운하를 개보수하는 곳이 늘어나는 추세. 이렇게 재연결된 운하는 보트 하우스들이 정박하거나 이동하는데 이용된다. 주로 휴가용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많기는 하지만, 실제 주거용인 보트 하우스들도 꽤 많다. 이 보트들도 '집'이라서 정해진 위치에 정박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편도 받고, 세금도 내니까. 


 어쨌든, 동네 사람 말고는 누가 이런 데를 알까 싶은 이 놀이터 산책로에는 의외로 외지인들이 많이 온다. 일요일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눈곱만 떼고 개산책을 나오는 동네 주민들과는 구분되는- 꽃무늬 원피스에 하얀 모자를 쓰고 풀메이크업하고 나오는 아주머니들, 큰 배낭과 몇 백만 원짜리 자전거를 끌고 지나가는 사람들, 미국이나 호주, 캐나다에서 친척을 방문한 듯 보이는 왠지 모르게 스타일이 다른 단체 손님들- 등의 사람들을 산책길에 자주 만난다. 겉모습 뿐만 아니라 여행객은 여행객 특유의 표정이 있다. 

이 산책로 중간에 오골계와 거위, 오리와 닭 등을 다수 키우는 마당 넓은 집이 있는데, 집에서 식구들이 먹기에는 알 생산이 많다 보니 종종 길 옆 울타리에 테이블을 꺼내 놓고 알을 판다. 주로 오리알. 슈퍼마켓과 비슷한 가격이긴 하지만, 눈 앞에 보이는 즐겁게 노는 오리들한테 나온 신선한 알이라서 그런지 인기가 많다. 닭알과는 다른 별미이고 해서 금세 다 팔리곤 한다. 항상 사람이 지킬 순 없으니 그냥 돈통이랑 알을 두고 사람들이 알아서 가져가고 지불하는 시스템이다. 

시골 동네에는 도둑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이런 커뮤니티에 대한 신뢰에 기반한 '알 판매' 행위가 우리 동네에는 흔한 편이다. (닭이나 오리 키우는 집이 많다.)

오리알을 사 오면서 '행복한 삶'이나 '삶의 질'을 결정짓는 많은 요소 중에 이런 이웃에 대한 신뢰도 한몫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내가 가진 무언가- 물건이든, 돈이든, 감정이든, 사랑이든, 안정감이든..- 를 빼앗아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살아가야 하는 긴장감, 경계심, 불안이 없는 삶. 매일 편안한 마음으로 사는 것만 해도 꽤 괜찮은 인생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  

지난주엔 엄청 더웠다. 더울 땐 역시 모히또.

일요일에 50펜스 주고 산 '템즈강' 퍼즐. 부려야 할 때 안 부리고, 안 부려도 될 때 부리는 이놈에 쓸 데 없는 집념으로 이틀 만에 다 맞췄다. 새벽 두 시까지 침침한 눈을 비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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