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없는 음해도 가능하고, 스타 정치인으로 충분하며, 메시지는 없는 곳
바스크 지방선거와 카탈루냐 지방선거를 사이에 둔 지난 4월 말, 쉴 틈도 없이 스페인 정치를 뒤흔든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가 그 누구와의 사전 상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5일 동안의 정치 일정 중단을 숙고하고 발표해 버린 일. 내각을 구성하고 있는 국무위원을 포함해 PSOE 당의 핵심 인원들과도 사전 교감이 없었던 상태로 공개된 총리의 대국민서한으로 4월의 마지막 주말, 스페인 정치계는 도파민의 극한으로 치달았다.
Necesito parar y reflexionar. Me urge responderme a la pregunta de si merece la pena, pese al fango en el que la derecha y la ultraderecha pretenden convertir la política.
멈춰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파와 극우가 정치를 왜곡시키려 하는 네거티브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어갈 가치가 있을까에 대한 대답을 찾을 필요가 있다.
사건의 발단은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PSOE의 당 대표가 된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집권당 PP의 핵심 인물이자 지금 PP당의 가장 큰 비리 사건인 Caso Gürtel의 핵심 인사인 José Manuel Villarejo와의 통화 속에서, 그들은 페드로 산체스의 장인이 마드리드 내에 다수의 사우나를 운영하고 있고 그 안에서 게이들을 대상으로 매춘행위를 불법적으로 저질렀다는 정보를 주고받는다. 이는 수년이 지나 최근까지도 국정감사에서 관련된 질의가 이루어질 정도로 PP당의 주된 네거티브 전략이 되고 있다.
문제는, 이 주장들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전혀 없거나 거짓이라는 데에 있었다.
이뿐 아니라, 페드로 산체스의 아내 Begoña Gómez가 총리 부인이라는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해 팬더믹 기간 자신 주변 사람들에게 보조금 혹은 주요 직책을 주었다거나, 총리 부인 자신마저도 지원금을 수령했다는 주장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문제는 공식 문건에 팬더믹 보조금을 받았다고 올라온 Begoña Gómez는 동명이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극우 및 우파 언론은 마치 총리 부인이 보조금을 수령했다는 보도를 해버렸다.
계속되는 음해공작에도 총리 측은 무대응 원칙을 유지해 왔는데, Manos Limpias라는 극우 집단에서 거짓에 기반하여 제기한 소가 받아들여짐으로써 더 이상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 같다.
극우의 일단 지르고, 아니면 말고 식의 의혹 제기에 속절없이 밀려나다
사실 꾸준했던 전략이다. Unidas Podemos에서 이전 정권의 성평등부 장관을 지낸 Irene Montero에 대해서도 비슷한 식의 시도가 있었고, 발렌시아 지역 정당 Compromís의 핵심 정치인이었던 Mónica Oltra의 경우 전 남편의 성범죄를 덮으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주장만으로 지방 정부 수반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2년이 지난 지금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녀의 사임으로 치러진 선거를 통해 발렌시아 지방 정부는 PP와 Vox의 우파/극우파 연정 정부가 들어섰다. 우파에게는 명확한 전략이 생긴 셈.
스타 정치인으로 굴러가게 된 스페인 정치, 페드로 산체스 이후의 PSOE를 고민하게 만들다
칩거에 들어가 버린 총리를 위해, PSOE 당이 위치한 Ferraz 길에는 엄청난 지지세력들이 모였다. 갑작스러운 총리의 행보로 인해 토요일 아침 당은 회의를 소집해야 했고 회의를 앞둔 당을 지지하기 위해 거리를 가득 메우며 'Merece la pena(그럴 가치가 있다)'를 포함한 많은 구호를 외쳤다. PSOE로써는 난감할 수 있는데, 당 자체에 대한 지지보다도 페드로 산체스라는 인물의 카리스마가 지나치게 커진 나머지 페드로 산체스에 대한 플랜 B가 없었기에 당 전체가 혼돈에 빠지게 된 것도 같다.
'민주주의의 재생'을 외치며 되돌아온 총리, 하지만 명확한 메시지는 없다
5일 동안의 칩거 이후 29일 월요일 돌아온 총리는, '민주주의의 재생'을 언급하며 총리직을 계속 이어갈 것을 밝혔다. 다만 문제는, 자신이 닷새 동안의 시간 동안 감정적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가다듬고 받아들였는지, 그리고 외부의 지지가 어떻게 자신에게 받아들여졌는지를 밝히는 것 이외에 정확히 이 '민주주의의 재생'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지에 대해 정확한 언급은 없었다. 모두가 직간접적으로 PP에 의해 수년간 마비상태가 된 Consejo General de Poder Judicial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을 짐작하고는 있으나 총리의 연설에서 직접 언급된 것은 아니다.
결국, 닷새 동안의 칩거는 스페인의 정치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에 대한 숙고를 위한 시간이 아니라 내러티브의 중심을 자신으로 되돌리기 위한 도구였던 것처럼 보이기만 한다. 물론 이 모든 사태의 시작이 비이성적이고 근거 없는 주장과 그를 받아들이는 제도의 문제 이긴 했으나, 과연 이렇게 불합리한 게임의 법칙을 무력화하고 새로운 방식을 정립하기 위해 과연 어떻게 나아갈 지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없이 그는 카탈루냐 지방 선거 운동 지원에 나섰다.
닷새 동안 멈춰버린 스페인의 정치를 보며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누구나 근거 없는 주장을 해도 충분히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고 심지어 사법부에게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와 동시에, 정치를 비롯한 세상 전반의 세태가 명확한 메시지보다는 이미지와 카리스마로 강렬하게 각인되기만 하면 그뿐인 것만 같다.
근거 없는 음해를 하는 스페인의 극우세력과, 그에 대응해 칩거에 돌입하며 정치 무대의 초점을 자신에게 맞추는 데 성공한 총리 모두가, 결국 동일한 정치게임의 법칙을 사용해 이미지의 정치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