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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Oct 22. 2015

"재회 (2001년 04월)" - 12: final

열두번 째 마지막 이야기

(계속) 2001년 3월 1일부터 시작되어 같은 해 6월 말에 그저 열린 상태로 마무리가 된 혜련이와 제 이야기는, 그녀가 2005년쯤 누군가와 결혼을 한다는 소식과 더불어 그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물론 결혼이라는 일이 어느 두 사람 사이의 사랑 또는 관계를 단절시키는 것은 아니나, 그리고 그녀와 제가 결혼을 마음속에 생각하며 서로를 사랑한 것도 아니지만, 사회관습상 이성간의 관계는 결혼과 더불어 자의건 타의건간에 마무리를 지어야 함이 맞겠지요. 그래도 open-ended 상태인 우리의 이별 . . . .


그 해 봄과 여름에 걸쳐 진행된 한국에서의 첫 일은 큰 실패로 돌아갔으나, 제게는 한국으로 다시 제 삶을 일부나마 다시 연결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지금은 제 삶의 반 정도를 한국에서 보내고 있을 정도로 가까와졌습니다. 가끔 그 애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항공기를 타고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길, 그리고 다시 돌아가는 길엔 설레임과 아련함을 아직도 느끼기도 하며, 도산 공원을 지날 때마다 "꼭 한 번은 들어가서 걸어봐야 하는데" 하지만 그러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고객과의 만남은 꼭 이상하게도 소공동의 그 호텔에서 하게 되었으며, 분당이라는 지역에 애착이 많습니다. 한국에서의 첫 차도 그 애가 타던 차종으로 했을 정도로 그 attachment 가 현실에서도 그리고 또한 생각속에서도 강했습니다.


제게는 중요한 prop (소품) 중 하나인 분당 정자동 이마트는 그래도 일년에 두번 정도는 일부러라도 찾아갑니다. 특별히 무엇을 사기 위해서보다는 그저 발길이 저를 그 곳으로 이끌기 때문인데, 지난 2010년 봄, 그 곳에서 우연히 혜련이를 보게 되었습니다. 거의 10년만이었지요. 그저 추억속의 혜련이로 기억하고 있었고, 살다가는 언젠가 마주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그렇게 예상치 못하게 마주하고 보니  예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시간이 정지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 때 저도 그리고 혜련이도 그저 몇 초동안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서로 마주보았던 기억 - 그녀는 30대 후반의 아이 엄마가 되어 있었고, 세월의 흔적과 아이를 키우는 쉽지 않은 일의 흔적이 그녀의 외모에서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아름다운 그녀였으며, 제가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아마 두 번쯤은 돌아볼 수도 있었을 정도로 멋진 모습의 혜련이었습니다.


5년전 혜련이를 다시 만났을 때 그저 아무 말 없이 돌아선 행동이 바른 결정이었을까? 하며 가끔 생각해 봅니다. 그 때 제가 먼저 다가서서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고, 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예전에 그 열린 상태로 끝나버린 관계를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었을 지 모르나, 왠지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다시 헤어진 일이 오히려 잘 한 일이라고 아직까지는 생각합니다. 그 때 돌아서며 보인 혜련이의 눈길 . . . 여러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그 애의 눈빛 - 반가움과, 아쉬움과, 미움과, 어쩌면 약간의 증오심까지 묻어난 눈길을 아마 그 때는 제가 감당할 수 없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무실 창문을 통해 지금, 2015년 10월 22일의 가을 풍경을 내려봅니다. 그래도 아직 우리는 같은 시간 속에서 그리고 같은 공간 속에서 같이 살아가고 있으니, 그 사실로도 그래도 행복합니다. 그리고 바램이 있다면, 언제 어디가 될지는 모르지만, 꼭 다시 우연히 만나게 되길 바래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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