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한번째 이야기
(계속) 뉴욕으로의 귀환 이후, 한달 동안을 밀린 일과 더해진 일에 숨돌릴 틈도 없이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게다가 한국으로 파견된 팀과 한국 기업들간의 업무가 매끄럽지 않았기에 이 또한 보충하고 보완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었고, 제 career 의 한 축을 이룰 수도 있는 이 업무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던 그 때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 순진했었던 듯 . . . 각 국가마다 기업의 환경과 해당 정부와의 대응 방식, 그리고 기타 작지만 세밀한 조율이 필요한 부분을 미처 살피지 못했던 것이 그 당시 우리 팀이 크게 실패한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저도 그 후 5개월간 열 번 이상 서울과 뉴욕을 왕복하며 여러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상당한 자금력은 있었지만 한국 내 어떤 인맥도 없었다는 치명적인 부분으로 인해 결국 3개월이 지난 6월 30일, 우리 팀은 전체 팀을 철수시켰습니다.
여기에 저와 혜련의 사이 또한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녀는 인내와 믿음으로 그 자리를 지켜 주었지만 보통 어느 이성관계가 그렇듯이, 남자의 실수가 더 많은 듯 합니다. 저 또한 그랬지요. 업무에서의 압박감과, 불분명한 혜련이와 저와의 미래가 서로 엇갈려서 결코 원하지 않았던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뉴욕에 있던 제 3자에 의해 야기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제 사업에 대한 오해까지 혜련이의 마음에 심겨지게 되어, 우리의 관계는 저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관계가 최악까지 떨어지기 전, 혜련이는 우리의 관계가 더 이상 나빠지는 것을 원치 않아서였는지, 여름으로 돌아서는 길목인 7월 초에, 아래와 같은 편지 한 장을 보내주었습니다:
보낸날짜 2001년 07월 09일 월요일, 낮 2시 42분 02초 KST
정원이가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이지 않을 것에 대해 염려했던 것은 사실이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차이에 대해 받아드릴 여유가 없어보여서 안타까왔지. 나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고...그것이 너가 한국에 왔다간 후 나에게 느껴지는 아쉬움의 전부야.
그리고, 이곳에 왔을때, 널 만난 것에 대한 나의 작은 배려에 대해 너무나 많은 고마움을 표현하는데, 그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 너무 신경쓰지 말아. 차갑게 느껴지는 목소리는 아마도 너에 대한 관심의 일부가 나의 생활에 돌아와 있어서 일지 모르겠다. 너처럼 커다란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니...하지만, 난 나를 잃어가면서, 나의 정서를 망각하면서 살고싶지는 않아. 나를 잊게 만드는 일은 하지도 않을거구...의욕적인 너의 모습에서 내 삶을 돌아보고 많이 긴장하기도 했지만, 나의 에너지로는 그런 긴장은 감당하지 못할 것 같네. 각자 나름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이해하며 살자. 그리고 너의 마음속 깊은 곳에 옥탑방의 불빛이 꺼지지 않길 바랄께.
이 편지를 받기 전, 혜련이의 그 당시 몇 장의 다른 편지들은 이와 비슷한 메세지를 담도 있었다는 것을 그 당시 이후 수 년이 지난 후에야 할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혜련이는 그 때 우리 사이에 있어 그 짧은 3개월간에 일어난 쓰라린 기억보다는 그나마 아름다운 추억이 더 많이 오래 남도록 하기 위해 조용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우리 사이의 결말을 맺고자 했었나 봅니다.
이 편지에 대한 답장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이별은 시작되었습니다.
(계속: 마지막 epis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