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플 성수에서 브런치스토리 팝업 전시가 열렸다. 글쓰기는 내 삶에서 꼭 필요한 존재라 늘 마음에 두고 있다. 그래서 이번 전시가 궁금했다. 브런치 출간 작가 인터뷰 내용을 전시한다는 건가? 출간 책을 전시한다는 건가? 그림도 아니고 글을 어떻게 전시한다는 거지? 시시할 것 같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어떤 전시를 할지 기대되기도 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기대 이상이었다. 매일 글을 끄적이고는 있지만 업로드하지는 않고 있었는데, 전시를 보면서 롤모델들을 보니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뭉근하게 끓어올랐다. 다른 일정 때문에 1시간 남짓한 정도로만 전시를 보고 나왔는데 너무 아쉬웠다. 하나하나 즈려밟아 곱씹어보고 싶었다.
전시 제목은 [작가의 여정]. 전시 모토는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였다. 전시에 기승전결 순서가 있었다.
프롤로그.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Chapter 1. 어느 날 작가가 되었다
Chapter 2. 계속 쓰면 힘이 된다
Chapter 3. 나의 글이 세상과 만난다면
에필로그. 작가라는 평생의 여정
브런치 작가면 전시장에 들어가서 맨 먼저 작가 카드를 만들어 주신다. 유치하다 싶었는데 막상 받고 나니 '작가'라는 수식어가 새겨진 신분증 카드가 퍽 마음에 들었다. 카드를 받고 나면 관람 시작이다.
브런치에서 좋은 글을 읽으면 늘 저자의 작가로서의 스토리가 궁금했다. 전업 작가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글을 잘 쓰는지, 어떻게 출간까지 하게 되었는지. 이번 전시에서 그 호기심을 시원하게 해소해 주었다. 직업 작가가 아닌 사람들이 어떻게 출간 작가가 되었는지, 그 여정을 상세히 보여준다. 작가들은 자신만의 키워드를 찾아냈다. 그 키워드를 찾기까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들이 각자 있었다. 올해 브런치 대상 수상 작가 10명 각각의 스토리와 그들이 던진 질문을 전시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질문을 해서 키워드를 찾았다'에서 끝나지 않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가 써보도록 종이도 준비해 두어서 대화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키워드는 웰다잉, 고통, 의사, 의사한의사복수면허, 30대 여성, 운동 정도가 되겠다. 작가 선언도 해보라고 했는데, 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싶었던 의사 May Gwon은 어느 날 작가가 되었다", "고통이 가득한데도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알고 싶었던 의사 May Gwon은 어느 날 작가가 되었다"라고 해보았다.
질문 옆에는 친필로 써서 더 다정하게 다가오는 응원 글귀를 작가들이 써놓았다.
"무작정 달리기! 달리다 보면 분명 어딘가에 닿아 있을 거예요. 경계 너머에서 만나요, 우리!"
"뭐든 하면 실마리가 되어 실타래가 되고 멋진 옷이 됩니다. 뭐든 하자!"
저자들이 브런치에 처음 글을 올리기 시작한 날부터 어떤 사람을 만나서 어떤 제안을 받고 어떤 시도를 해서 책을 내게 되었는지 스토리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알고 나니 저자들이 쓴 책도 더 재미있게 다가왔다. 그중에서 꼭 읽어 보고 싶은 책도 발견했다. 의사이다 보니 환자의 경험에 대한 글에 관심이 많은데, "태어나는 말들"이란 책이 바로 그런 내용이었다. 그 외에도 작가로서 그동안 어떤 도전을 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그중에서 주변 인물 인터뷰 프로젝트에 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나도 하고 싶었던 프로젝트라 반가웠다. 이분이 진행한 인터뷰는 점점 성장해서 지금은 sideproject.co.kr에서 다능인 커뮤니티 겸 뉴스레터 발행도 하고 있다. 좋은 롤 모델을 찾을 수 있었다.
바라는 대로 된다고 믿는 내게 생생하게 목표를 그리는 것이 목표달성에 중요하다. 그래서 생생하고 구체적인 경험담은 내가 목표를 시각화하는 데에 귀한 영감을 준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로서의 여정을 자세히 볼 수 있어서 롤모델로 삼을 요소를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그저 일상을 진솔하게 쓴 글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응원을 받으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이야기해 주는 저자도 있었고, 작품을 탈고까지 했는데 출판사와 계약이 불발되었을 때 POD라는 대안을 찾은 과정, 내 글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댓글로 논쟁하는 걸 보는 마음, 우연한 인연으로 해외 번역판이 출간되는 경험 등을 이야기해 주는 저자도 있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든 생각은 '진솔하다'였다. 작가로서 경험한 것에 대해 길어야 한문단 정도 되는 글에서도 마치 바로 앞에서 오랜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듯했다. 저자들의 스토리 앞에는 그분들이 전해주는 글쓰기 꿀팁도 곳곳에 메모지처럼 가져갈 수 있게 놓여있었다. 그리고 저자들의 소중한 물건들도 전시하고 있었다. 우수 도서로 선정되어 받은 트로피, 습작 노트, 애착 필기구, 여행 다니며 모은 수집품 등등. 작가들의 취향이 물씬 묻어나서 보고 느낄 것이 많았다. 이렇게 느낀 것을 그저 감상에만 담아두지 않고 실제로 글로 쓸 수 있도록 전시 곳곳에서 글쓰기를 격려하고 있었다. 계속 쓰는 삶을 응원하며 정문정 작가님과 윤수훈 작가님이 써주신 글이 인상 깊었다.
일본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는 교양의 가장 큰 역할을 '쪼개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는 것도 배운 사람, 즉 언어가 있는 사람에겐 쪼갤 수 있는 미세한 차이가 보인다는 거죠. 그는 이를 해상도에 비유했습니다. 높은 해상도로 세상을 볼 수 있으면 차이를 분별해서 더욱 섬세하게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작가가 되고 싶은 분이라면 세상을 선명하게 보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일 텐데요. 이는 쇼츠나 요약으로는 절대 마주칠 수 없는 세계라는 확신이 글을 써갈수록 강해집니다. 스스로의 마음과 타인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노력을 계속한다면 우리는 더욱 또렷해질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이 만날 새로운 풍경을 응원합니다. - 브런치 작가 정문정
쓰기 위한 삶이 아닌, 쓰고 싶은 삶을 살았을 때 계속할 수 있는 힘이 생기더라고요. 매일 쓰고 그릴 수 있다면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쓰고 싶은, 작가의 삶을 살아요! - 브런치 작가 윤수훈
출간 작가들의 이야기 다음에는 브런치 스토리가 만든 콘텐츠 큐레이션 공간인 [틈]을 소개하고 있었다. 하나의 주제를 깊고 넓게 들여다보면서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 취지이다. 매주 새로운 주제로 다양한 글을 소개한다. 얼마 전 [틈]에 내 브런치 글도 소개되었다. 얼떨떨하기도 하고, 내 마음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음에 감사하기도 하고, 모자란 글이라 부끄럽기도 했다. 나의 진심이, 독자의 진심이 서로 닿을 수 있도록 글쓰기에 더 정진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거기에다 오늘 전시를 보면서 응원도 받고 롤모델들까지 발견하니 더더욱 글쓰기에 힘쓰고 싶다는 의지가 자라났다.
어느덧 전시의 마지막인 에필로그 섹션에 다다랐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로 가슴이 웅장해졌으나, 내심 무엇에 대해 써야 하나 걱정이 슬며시 올라오려던 차였다. 나의 걱정을 어떻게 알았는지 에필로그에서는 마지막으로 의지 굳히기 작전을 쓰고 있었다. 소소한 일상의 순간과 작은 깨달음 속에서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고, 힘주어 이야기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글쓰기 기술이 아니라 진솔하게 나만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응원을 해주었다. 에필로그 바로 앞에서는 친절하게도 30일간 쓸 주제를 아예 정해주었다. 그래, 핑계 댈 것 없다. 한 단어라도 좋으니 그저 매일 앉아서 쓰면 된다. 요즘 책 '아티스트 웨이'를 따라 12주 동안 창조성 워크숍을 셀프로 진행하고 있다. 두 가지가 핵심 활동인데, 바로 매일 아침 3페이지씩 쓰는 모닝페이지와 매주 한 번씩 혼자 오롯한 시간을 보내는 아티스트 데이트이다. 이제 5주차이다. 지금처럼 꾸준히 써나가면서 발견할 새로운 세상이 기대된다. 그리고 이 꾸준한 노력 끝에 작가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러워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