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윌슨Bee Wilson, 『식사에 대한 생각』을 읽고
바야흐로 다이어트 시대. 이제 “나 다이어트 해.”라는 말은 우리 주위 사람 누구에게서나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미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건강을 위해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을 하는 모습은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사회 분위기의 이면에는 좀 다른 모습이 존재한다. ‘다이어트’가 전반적으로 유행하는 이런 풍조는 반대로 해석해 본다면 우리가 음식을 ‘제한’해야 할 만큼 음식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당연한 이야기를 왜 굳이 언급하는 것이지? 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현시점에 우리가 당면한 것들의 무게에 대해 잘 모른다. 사실 우리는 역사 시간에 배우는 과거의 반만큼도 현재에 대해 모를지도 모르겠다.
‘살려고 먹는다’는 말이 와닿는 사람은 요즘 많지 않을 것이다. “아,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라며 시간에 쫓겨 겨우 끼니를 때울 때에나 우리는 반쯤 우스갯소리로 “살려고 먹었다”고 표현할 뿐이다. 그러나 정말로 살기 위해 무언가 먹을거리를 찾아 헤매고, 그나마도 먹을 것이 없어서 영양결핍에 시달리던 시대에 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시절이 사실 그리 오래전 이야기는 아니다. 유명한 애니메이션인 ‘검정고무신’만 봐도, 먹을 도시락이 없어 물로 배를 채우는 학생의 모습이 나온다. 검정고무신이 한국의 6~7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현재 5~60대의 연령대 세대만 해도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을 살았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개발도상국 국가에서는 콰시오커Kwashiorkor(심각한 단백질 영양 실조증으로, 온몸이 부풀어 오르고 배가 불룩 나오는 병), 괴혈병, 펠라그라Pellagra(니코틴산 결핍으로 인해 걸리는 병), 각기병과 같은 영향 결핍성 질환이 어렵지 않게 발견되곤 했다.
그럼 우리는 언제부터 풍족한 음식 환경을 누리게 됐을까? 그 기준은 1910년경에 개발된 ‘하버-보슈법’으로 변화의 기점 시기를 짐작해볼 수 있다. 식량 생산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2002년을 기준으로 전 세계 인구의 40%는 이 하버-보슈법 덕분에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이 암모니아 합성 질소 비료에 대한 사실은 여러분뿐만 아니라,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최근에야 책을 읽다가 처음 알았다. 물론 이러한 비료 개선 이외에도 밀 품종의 개량 등 다양한 기술적 변화가 식품 환경의 변화로 이어져 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영양실조를 벗어나, 그것도 풍요를 누리는 것을 넘어서 과섭취의 시대에 들어서게 된 걸까? 사실 이런 음식이 넘쳐나는 환경은 세계 2차 대전 이후 국가 주도하에 계획적으로 조성되어 온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은 1950년대부터 90년대 사이에 전 세계 곡류 생산량이 세 배 이상 증가하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자국민을 배불리 먹이는 정도를 넘어서 미국은 넘치는 곡물 생산량을 주체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결국 미국 내 잉여 곡물 생산물이 썩고 넘쳐 바다에 버려질 정도로 애물단지가 되자, 이내 다른 국가들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1955년에 미국과 ‘잉여농산물도입협정’을 맺고, 미국의 잉여 농산물을 무상원조의 명목으로 들여왔다. 그런데 이 농산물의 70%가량이 밀가루였다. 그렇다. 우리에게 익숙한 지금의 분식 문화는 바로 미국에서 흘러들어온 밀가루를 국민들이 소비하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장려한 결과이다.
이렇듯 미국과 유럽 국가들을 선두로 사람들의 평균 섭취량이 충족치를 넘어서면서 오히려 잉여 칼로리 섭취로 과식하는 환경이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점차 거대 식품 기업들은 이러한 잉여 칼로리를 섭취해야 할 이유를 만들어 음식에 갖다 붙여 팔기 시작했다. 즉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기호와 문화적 경향에 따라 음식을 필요 이상으로 더 먹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이다음부터 이어졌다.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은 점차 필요 이상의 칼로리를 사람들이 더 소비하게 만들기 위한 마케팅을 펼치며 사람들의 하루 평균 음식 섭취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려갔다. 대표적인 것이 음료이다. 언제부턴가 세트 메뉴에는 항상 음료가 껴있다. 하지만 음료는 그 자체로 포만감을 주지는 못하면서 식사만큼의 칼로리를 가지고 있다. 즉 음료를 곁들어 먹기 시작하면, 평균적으로 섭취하는 칼로리의 양만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방식에 그다지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너무나 다들 자연스럽게 그렇게 팔고, 먹기 때문이다. 이제는 음료를 세트로 주는 메뉴 구성은 햄버거 가게만이 아니라 다른 음식점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식단이 많이 변화한 모습을 보이는 시기는 부유한 국가를 기준으로 봤을 때 1960~70년대이다. 우리나라는 90년대 이후 즈음으로 볼 수 있겠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을 기준으로 보면, 가정식을 먹던 식단에서 포장 음식과 가당 음료로 점철된 식단으로 바뀐 속도는 몇십 년 정도가 소요됐다. 하지만 그런 국가들을 따라가는 개발도상국, 경제 발전을 이룩하며 점차 경제적 안정을 이뤄가고 있는 국가들은 10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에 이런 선진국들의 식단 변화를 따라가고 있다. 멕시코의 경우 과체중과 비만율이 1988년에서 1998년 이 10년 사이에 78%가 증가했고, 2006년 기준으로 멕시코 인구의 8% 이상이 제2형 당뇨병을 앓고 있다.
이렇듯 빠른 속도로 여러 국가들의 식단 변화 속도가 단축된 이유는 미디어의 등장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텔레비전을 시청한다는 것은 가공식품의 직접 마케팅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미디어를 통해 광고되는 식품은 영양학자들이 ‘논코어Noncore’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즉 주식으로 먹는 음식이 아니라, 굳이 먹지 않아도 상관없는 주전부리라는 말이다.
그 결과 현대사회는 비만이라는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2006년에는 처음으로 과체중 인구가 영양부족 인구를 앞질렀다. 영양이 부족한 인구도 여전히 8억 명이라는 수치로 아주 많았지만, 과체중 인구는 무려 10억 명을 돌파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 칼로리를 과섭취하는 상황에 놓인 전 세계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영양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고 있지만, 정말 필요한 영양소들은 부족하게 먹고 있다. 그러면서도 앞서 언급한 제2형 당뇨병, 고혈압, 뇌졸중 등등 잘못된 식습관에서 오는 각종 질병들에도 시달린다.
누군가는 음식을 선택하는 것이 개인의 문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각종 가공 식품들을 마케팅하는 매스미디어에 둘러싸인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선택을 좌지우지하는 환경이 어떠한지 잘 말해준다. 게다가 그나마 ‘건강한 것’이라고 믿었던 식품들도 생각과는 다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과일은 과거에 비해 품종 개량과 재배 방식의 변화 등을 거치며 과거의 씁쓰름하고 떫었던 맛은 거의 사라지고 단맛이 강하게 나는 것들 뿐이다. 덕분에 마트에서 집어오는 요즘 과일들은 맛있지만, 그로 인해 과일에 풍부하다고 ‘알려졌던’ 다양한 영양소들은 사실 과거에 비해 많이 감소했다. 그와 반비례하여 당분 함량은 높아졌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런데 사실 여기까지 들었을 때, 일정 부분은 생로병사의 비밀이라던가 다큐, 뉴스에서 한 번쯤은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다 싶으면서도, “맞아, 우리나라도 비만율 정말 심각해.”라고 곧이어서 생각하는 한국인들은 사실 별로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이 현대적 식단 변화의 흐름을 겪으면서도 전통식이 가지고 있던 건강한 식단을 유지하는 데에 성공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비 윌슨Bee Wilson의 『식사에 대한 생각』을 읽으면서 현 사회가 직면한 식단에 관한 문제에 대해 통감할 수 있었는데, 동시에 갑자기 우리나라에 대해 이야기해서 깜짝 놀랐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게 ‘영양 전이의 커브를 꺾는데’ 성공한 국가라고 한다. 영양 전이의 커브를 꺾는다는 것은, 보다 건강한 식사 패턴으로 변화의 방향을 돌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인 중에 우리나라가 빠른 경제성장을 이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 별로 없을 것이다. 1962년에서 1996년 사이에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약 17배나 증가했다. 그렇지만 위의 멕시코와 같은 국가와 비교했을 때, 그런 경제성장 사이에 일어난 우리나라의 식단 변화는 상이했다. 1998년 기준으로 한국에서의 비만 인구는 남성은 1.7%, 여성은 3% 정도였다. 또한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도 한국인의 채소 섭취량은 오히려 더 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도시에 살면서도 여전히 채소를 섭취하는 식단을 유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나물 반찬부터 시작해 요리에 채소를 넣어 먹거나 쌈을 싸 먹는 등 채소를 ‘맛있게’ 먹는 전통식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김치는 기본 옵션이다. 김치볶음밥에 김치를 얹어 먹어야 찐 한국인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지 않은가.
물론 현재 2021년의 한국인 식단은 1990년대만큼 건강하지는 않다. 우리도 음료수를 마시고, 배달 음식을 즐긴다. 또한 비만과 당뇨병, 심장질환 등의 환자 비율도 90년대보다는 훨씬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인은 여전히 앞서 언급한 다른 국가들에 비해 채소를 훨씬 많이 섭취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우리의 음식’인 ‘한식’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식사를 일컬어 ‘밥’으로 통칭한다. 우리는 ‘밥’이 들어간 인사말이 참 많다. 지나가다 지인을 마주치면, “밥 먹었어?”라고 묻고, ‘나중에 한번 만나자’는 인사말로 “언제 밥 한번 먹자”고 한다. 인사말 외에도, 다소 서러운 상황에 놓였을 때 ‘찬밥신세’라고 표현하고, 힘을 복 돋는 말을 할 때 “한국인은 밥심이지”라고 하며 다시 밥을 권한다. 그렇다. 우리는 참 밥에 진심인 민족이다.
식사를 대하는 태도는 시대별로 변해왔다. 뭐, 식문화의 변천사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고려시대, 삼국시대까지도 올라갈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멀리 가지는 말고 대한민국을 기준으로 생각해보자. 사실 지금의 기성세대만 하더라도 유년 시절에 굶주림을 경험한 적 있는 세대이다. 물론 한반도가 일제 강점기와 분단, 전쟁 등을 거치긴 했지만, 국민의 다수가 굶주림을 겪었던 건 지난 2,000여 년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것은 비단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사적으로 동일하다. 앞에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가 이렇게 음식의 풍요를 누린지는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여전히 전 세계의 인구 전부에 해당 되는 말도 아니다. 때문에 오랫동안 인간에게 음식은 ‘귀한 것’이었고, 또 대다수에게는 생존의 문제였다.
하지만 요즘 우리가 가볍게 말하는 ‘살려고 먹는다’는 말이 생존의 문제라는 뜻은 아니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느새 우리의 음식에 대한 ‘감사함’은 ‘당연함’으로 변했다. 그리고 이제는 당연함을 넘어서 이런 ‘풍족함’을 ‘경계의 대상’으로 대하게 되었다.
앞서 대중 매체의 등장으로 논코어 식품의 직접 마케팅 대상이 되었다고 언급했다. 미디어, 특히 텔레비전이 보편적으로 보급됨에 따라 우리의 식탁에는 변화가 찾아왔다. 그리고 요즈음 미디어는 음식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또다시 변화를 가져왔다. 요즘 TV나 스마트폰 속 SNS에서는 다이어트 식품 광고, 연예인들의 다이어트 비포&에프터, 몇 달 만에 수십 킬로그램을 감량한 사람 등등 ‘날씬한 몸’에 대한 콘텐츠들이 넘쳐난다. 이런 것들은 우리에게 ‘뚱뚱해지지 마’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또 그와 동시에 먹방도 유행한다. 우리는 유튜브에서 한 사람이 도저히 다 먹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양을 늘어놓고 먹는 사람들을 보며 ‘대리만족’한다고 말한다. 남이 먹는 모습을 통해 ‘먹는다’는 것을 대리만족하는 시대에 사는 것이다. 그리고 보통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먹방은 살면서 접해보기 힘든 특이한 음식보다는 우리 주변에 널려있지만 ‘마음껏 먹을 수 없는’, 흔하지만 맛있는 음식들을 양껏 먹는 영상이 주를 차지한다. 라면이라던가 햄버거, 피자, 치킨, 케이크 한판 등등 우리도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런 사실은 음식이 우리에게 삶의 만족도를 높여주는 풍요로움을 느끼게 하지만, 동시에 함부로 누리면 안 되는 ‘애증’의 것이 되었다는 걸 말해준다. 이제 우리의 도처에 깔린 음식들은 내 입안에 소확행을 주면서도 또한 너무 쉽게 내 몸을 망쳐놓을 수도 있는 존재가 되었다.
다시 밥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자꾸 우리의 식탁이 변했다고 하는데, 그럼 요즘 우리가 ‘밥 먹었다’고 말하는 건 어떻게 먹는 걸 말하는 걸까? 기본적으로 우리의 전통적 식사 방식인 한식을 먹는 것은 여전하다. 한식은 밥을 주식으로 하고, 여러 가지 반찬을 곁들여 먹는 식사 형태이다. 일상적으로 하는 식사에서 매일 반찬을 많이 두고 푸지게 먹긴 힘들다. 그렇지만 식당에 가서 한식 메뉴를 시키면 우리는 적어도 김치를 포함한 두세 가지의 반찬을 두고 밥과 함께 메인 음식을 먹는다. 직장을 다니는 성인이나, 학교에서 급식을 먹는 학생들이나 한식을 먹으면 여전히 비슷한 형태로 식사를 한다. 물론 요즘 한국인들도 햄버거, 피자, 치킨 등등 정크푸드로 식사를 하기도 하지만, 한국인의 대다수가 매일, 그것도 주식으로 잘 먹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끼니를 위한 식사 형태에서 달라진 점은 무엇이 있을까? 가장 전반적으로 변화했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아침 식사이다. 한국인들의 식단이 전통식을 어느 정도 지키고는 있지만, 요즘 아침까지 밥과 국, 반찬을 차려놓고 먹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아침에는 바쁘기 때문에 끼니를 거르는 사람도 많다. 혹여 먹더라도 씨리얼 같은 간편식이나 과일, 토스트에 커피와 같은 한식이 아닌 식사를 하는 이들이 늘었다. 게다가 요즘은 물을 타서 마시는 가루 형태의 간편식이나, 단백질 쉐이크 같은 걸로 식사를 대체하기도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런 식사를 하고 나갔을 때 ‘밥 먹었어?’라는 질문에 ‘밥 먹었다’고 대답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아니, 샌드위치 먹었어.’ 라던가, ‘아니, 쉐이크로 끼니 때웠어.’, ‘아니, 샐러드 먹었어.’ 등과 같이 말이다. 물론 부가 설명 없이 그냥 ‘밥’으로 퉁 쳐서 대답하는 이들도 있다.
한국인은 ‘밥 먹다’는 말에 ‘식사를 하다’라는 의미를 담아서 쓴다. 즉 ‘쌀밥만 퍼먹었어’라는 뜻으로 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끼니를 위한 간편한 식사를 ‘밥 먹었다’의 범주에 넣기에는 좀 주저하는 것 같다. 왜 그러는 것일까? 우리에게 밥을 먹는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자신이 먹는 것이 자신을 규정한다”는 말이 있다. 태어나보니 한국인이라 먹게 된 한식이지만, 이 ‘밥’은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규정하게 하고 있을까? 오늘날 우리의 식탁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김선업·김흥주·정혜경, 「한국사회 음식 문화의 현대적 전개: 식사 양식과 음식정체성을 중심으로」, 『사회사상과 문화(Journal of East Asian social thoughts)』 Vol.19 No.2, 동양사회사상학회, 2016.
정혜경, 「한국 음식문화의 의미와 표상」, 『아시아리뷰』 5(1),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2015.
최준식, 『한국 음식은 ‘밥’으로 통한다』, 한울, 2014.
[네이버 지식백과] 제2형 당뇨병 [type II diabetes] (생화학백과)
비 윌슨Bee Wilson, 『식사에 대한 생각』, 어크로스, 2019.
이미지1, 검정고무신 물주전자로 물마시는 자료화면 (검정고무신 애니메이션)
이미지2, 영양실조 걸린 이미지, https://m.blog.naver.com/PostList.naver?blogId=duckjiny)
이미지3, 떡볶이, 수제비 등등 분식 이미지 (출처 : 직접 촬영)
이미지4, 햄버거 세트 (출처 : 구글 free이미지)
이미지5, 과일 사진들 (출처 : 구글 free이미지)
이미지6, 김치볶음밥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53가지 건강 한식 : 외국인도 쉽게 따라 하는 간편 레시피])
이미지7, 쌀밥 한 그릇 사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전통향토음식 용어사전])
이미지8, 한식 상차림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맛있는 한국여행 : 관광통역안내사를 위한 한식 해설서])
이미지9, 단백질 쉐이크 사진 (출처 : 구글 free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