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께 말씀드렸었지만 약을 먹지 않았던 두 달의 시간 동안 제가 병명 뒤에 숨어 꾀병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 정말 내가 아픈 게 맞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기에 그리 했었지요.
병원을 가는 길에 제게 무척이나 다정하고, 정성스럽게 대해 주시던 원장님의 마음을 아는 저로서는 오랜만에 옮기는 발걸음이 무거웠더랬습니다. 대기실에 앉아서도 두 달의 시간을 뭐라고 설명을 할지 마음이 복잡했는데 토요일의 대기인원이 많아서 그랬는지 별말씀 없이 처방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번주에 다시 병원을 찾았습니다. 월요일 아침이라 조금 한산해 보이는 대기실을 지나 진료실로 들어가 앉자 일상적인 투약에 관한 질문으로 상담을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병원을 오지 않았던 두 달간의 기간에 대한 해명?ㅎㅎ을 했습니다. 원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두 달 동안 병원에 오지 않으면서 진짜 본인의 병에 대해서 알게 되고, 치료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힘들어지는지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기 위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시 내원하셨을 때 제가 별다른 말씀을 안 드렸던 거고요. 환자분들한테는 어쩌면 이런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의사로서 자주 하게 됩니다. 화를 내거나, 원망하지 않는 건 환자분들도 자신이 건강한 사람인지 아닌지, 건강한 사람으로 살고 싶은 열망과 희망이 있기 때문에 그러시는 거라 이해하게 됩니다."
또 한 번 제가 담당의사 하나는 정말 잘 만났다는 재확신에 무척이나 기쁘고 감사했어요.
시간에 쫓기는 병원에서, 그것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깊이 공감받고, 이해받으며 지지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흥분되고 감사했답니다..
선생님...
요즘은 수영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처음에 잔뜩 힘이 들어간 상태에서 수영을 하고 나면 다음날 여기저기 다 쑤시고 아팠는데 이제는 물이 좀 편해지고, 물살에 몸을 편안히 놓고 움직이다 보니 그렇게 아픈 곳이 없네요.
처음 수영을 배우면서 늘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제가 물속에서 숨을 참아야 한다는 두려움에 머리를 물에 잠그는 일조차 쉽지 않았던 일이 생각이 나네요. 스스로 내가 정말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오랫동안 속으로 유쾌하게 웃었더랬습니다. 아.. 제가 정말 제가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니요..ㅎㅎㅎㅎ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삶과 죽음은 인생을 부르는 포괄적인 이름이지 않나 싶어요. 어느 쪽으로 무게중심을 두느냐에 따라 내 삶의 음영의 짙고 옅음에 차이만 있을 뿐 두 쪽 다 인생의 애틋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선생님...
인생의 반 이상을 살아온 저의 무게 중심이 죽음에서 삶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의 생동감, 역동성, 아름다움.... 이런 것들이 무척이나 명료하게 보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산책을 하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아침의 산책만큼이나 선생님께 편지를 쓰는 시간이 제게는 무척 삶을 애틋하게 받아들이는 시간이라 무척이나 감사하고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