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밤새 퍼붓는 빗소리에 잠이 자주 깨네요. 다소 피곤한 아침을 루틴으로 받아들이며
지낸 지 한 달이 넘고 있네요. 건강하게 잘 지내시는지요?
출근길에 비가 쏟아져서 옷도, 신발도 다 젖어버렸습니다. 신발은 젖을 거 감안해서 슬리퍼를 신고 왔는데... 아뿔싸... 미끌리면서 삑삑 소리가 났어요. 꼭 걸음마 연습하는 아가들의 그 삑삑이 신발처럼요. ㅎㅎㅎㅎㅎ
조심조심히 미끄러지지 않고 걸으려고 발에 힘을 주면서 걸으니 막상 사무실에 와서 앉는데 걸을 때는 몰랐던 피로감이 한 번에 몰려 오더군요. 다소 조심스럽고 피곤했지만 삑삑이 신발로 인해 경쾌하고, 발랄한 출근길이었던 것 같아요.
요즘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무척 즐겁습니다. 그래서 과음하지 않는 선에서 사람들과의 모임을 자주 즐기면서 지내고 있어요. 참 다양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새삼 느끼는 요즘이에요.
아무래도 술자리다 보니 사람들의 실수하는 모습도 보게 되고 그 모습을 보면서 지나온 저의 어두웠던(?ㅎㅎ) 과거도 회상이 되어 가슴이 따끔거리기도 했네요. 그렇지만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 어떤 기준이나 판단으로 보게 되지 않고, 그냥 편하게 관망하게 된 저의 모습에 많이 놀라고 있는 중입니다. 화가 안 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그런지는 사실 아직도 이유를 생각 중에 있지만 집에서든 얼큰하게 취기가 오를 때든 제가 과거에 화가 자주 났던 포인트들이 자주 그리고 빠르고 편하게 지나치고 있는 자신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는 중입니다.
예전에는 어떤 상황이든 그 이유가 무엇인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 무척이나 열심히 찾으려고 골똘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스쳐 지날 것은 스치고, 무언가 가슴에 와닿을 때는 편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지나치게 의미에 집착했던 것은 아마도 삶에 대한 집착과도 이어지는 게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출근하면서 문득 가슴속에서 '지금을 즐겨... 그러니까 죽음보다 삶에 집중하도록 해.' 그런 말이 떠올랐어요.
그 생각이 난 뒤에 난 왜 그렇게 오랫동안 지금을 살자고 결심해 놓고 죽음에 집중하면서 살았을까 의구심이 들었어요. 지금에 집중하는 일은 삶이었던 건데 말이죠.
새삼 삶에 집중하라는 그 메시지에 가슴이 뜨거워졌네요.
그리고 새삼 살아 있는 내가 내는 많은 소리들이 재미나게 느껴졌네요. 아침에 삑삑거렸던 그 슬리퍼의 소음도, 졸음을 이기려 조용히 껌을 씹고 있는 소리도, 선생님께 이렇게 편지를 쓰면서 자판을 두드리는 작은 소음도... 모두 살아가고, 살아 있다고 외치는 작은 소음이라는 생각이 신선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