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그리움과 행복
3.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운 때가 있고, 그리운 계절이 있다는 것이야말로 진정 나는 행복한 시절을 보내왔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2. 행복이란 우리의 그리움에 대한 지표가 된다. 그 시절로부터 멀어질수록 과거의 감정이란 더 증폭되어지고 아득한 것이 된다. 무지개처럼 미화되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그 안에서 행복이란 지표를 믿고 나아가야 한다.
절벽 위에 서린 얼음을 밟고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아픔이 있을 때
우리는 우리의 행복이 어딘가로 달아났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진정 행복을 알고 있었을까. 하는 물음도 하게 된다. 우리에게 불행이 왔을 때. 행복이란 아득히 멀리 있는 것이 된다. 행복이란 것이 막연히 다시 올 것 같은 기분 조차 없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누군가에게 아픈 시절이 모두에게 아픈 시절일 수는 없고, 모두에게 아픈 시절이 단 한 사람의 행복한 시절일 수도 있다. 이렇듯 제각기의 삶의 길 위에서 하나의 사건은 누군가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기도, 또 다른이 에게는 불행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물론 전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쨌든 삶을 살아가며 닥치는 일련의 사건들은 불행을 가져다 주기도, 행복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비슷한 사건을 겪는다고 누군가에겐 가장 큰 불행이기도 하며 누군가에겐 쉬어가는 걸음이 되기도 한다 삶은 이리도 제각각 이여서 우리에게는 결코 삶을 폄훼할 자격조차 없음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이란 것에 대해 다른 이에게 어떻게 설명하고 나 자신에게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우리에게 행복이 왔을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것은 행복이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해야 한다. 다른 누군가의 행복이 아닌 나 자신에게 꼭 맞는 행복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곧 지표가 되며 우리의 발걸음은 지표가 있을 때 더욱 용기를 얻는다. 다른 이의 지표를 믿고 가다가는 도달하기 전에 우리는 다시 길을 잃을 것이다.
크게 보자면 인생에 비유하지만 당장에 우리는 빈자리에 대한 그리움에 허덕인다. 우리는 우리 옆의 빈자리에 대해 외로움을 느끼고 어떠한 것으로 그 공허함을 채우기 마련이다. 우리를 떠난 그 사람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어떠한 큰 하나의 사건이었을까. 나는 또 그 사람에게 어떠한 사건이었을까. 나에게는 행복 이었지만 그 사람에게는 불행 이었을까. 생과 생이 만나 어떠한 삶을 그려냈을까. 우리는 빈자리의 옆에서 참 많은 고민과 물음 속에 산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원초적인 질문은 나는 그때에 정말로 행복했을까. 지금에야 와서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닐까. 마치 비 온 뒤에 무지개가 생기듯 신기루 같은 것이 아닐까. ‘그래도 그 시절이 좋았지’라는 것은 행복은 아니다. 단순한 추억일 뿐이며 조금은 미화되어진 감정일 뿐이다. 우리가 다시 나아가야 할 지표는 아닌 것이다.
이글들은 허구이다.
이곳에 쓰인 단어는 허구이다.
문장 사이에 공백의 쉼은 허상이며 모든 단어는 가볍고 가파르게 쓰인 것이다.
이 글들은 나의 꿈같은 세계에 기인하고, 꿈은 기억에서 언제든 사라질 것이기에 꿈을 붙잡아 놓은 이 글들은 형상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볍게 쓰기를 원한다.
내 손마디를 떠난 글은 언제든 사라질 것이기에.
2015.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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