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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쥬 Feb 12. 2024

우리는 가족이라서 늘 화해하지 (2)

장성한 아들을 대하는 노모의 태도

일상에서 평정심을 잘 유지하는 우리 남편도 이성을 잃고 한 마리의 짐승처럼 포효하는 상대가 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엄마’.


시어머니 앞에만 가면 미처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 ‘어린 자아‘가 불쑥 고개를 내민다. 시어머니도 다를 바 없다. 아직 장성하지 못한 어린 아들을 대하듯 38살의 아들을 통제하려고 하니 말이다.


시어머니는 통제성향이 매우 강한 분이다. 밥상 앞에서는 어떤 반찬을 먼저 먹어야 하는지 알려주시는 분이다. 어린 시절의 남편은 이런 엄마의 간섭 아래 자신의 행동을 사사건건 통제받았다. 엄마에게 반항하지 못했던 ‘어린 자아’가 엄마 앞에만 서면 반기를 들고 나와 이제 그만 나를 통제하라고 몸부림친다.


그렇다고 시어머님의 잘못만 탓할 수 없다. 장성하지

못한 남편의 ‘어린 자아’는 결국 성장하지 못한 채로 남아 노모의 감정을 늘 외면한다. 아들에게서 존중받지 못한 감정은 때로는 서러움으로, 때로는 분노로 노모에게서 표출된다.


이번 설에도 아주 사소한 오해가 있었다. 시어머니는 각자 집에서 식사하고 작은 어머니댁에 모여 다과만 하길 원하셨다. 작은 집에 대식구가 모여 북적거리는 유난한 식사가 싫으셨던 것이다. 그런데 어른들끼리 소통의 오해가 생겼는지 작은 어머니댁에 모여 점심을 먹기로 결정이 되어 시어머니에게 전달되었다. 이때부터 시어머니의 대노가 시작됐다.


“왜 매번 나를 열외 시키고 결정을 해?”


그 누구도 시어머니를 열외 시킨 적은 없었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상황에 매우 당황해하시며 일의 자초지종을 묻기 전에 격앙된 목소리로 화를 내셨다. 그리고 ‘매번’이란 단어에 더욱 힘을 주었다. 이건 명백히 남편을 향한 분노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순간마다 남편의 ‘어린 자아’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남편은 시어머니가 내뱉는 모든 단어에 반기를 들었다. 왜 화가 났는지, 무엇 때문에 이런 상황이 일어났는지, 시어머니는 지금 어떤 마음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남편에게 중요한 건 또 마음대로 상황을 해석하고 통제하려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이 사소한 일로 둘은 결국 또 싸웠다. 7살짜리 어린 아들은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있었고, 시아버지는 작은 방에서 통기타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잠이 들려던 참이었다.


각자의 시간을 보내던 우리 셋에게 둘의 싸움은 매우 익숙한 일이었지만, 어린 내 아들이 어른들의 싸움에 크게 놀라 불안함을 느낄까 봐 나는 방에서 곧바로 뛰쳐나와 아들을 품에 안고 귀에 속삭였다.


‘아빠랑 할머니랑 또 싸우네?’


아들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가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의 목소리가 격앙되자 나는 남편에게 다가가 그만하라고 말렸고, 이내 시아버지도 방에서 나와 시어머니를 말렸다.


’ 어른이 된 내 아들에게 시어머니는 어떤 할머니로 기억될까? ‘


순간 궁금해졌다. 우리 엄마는 내 친할머니를 늘 미워했다. 곪을 대로 곪은 고부관계의 갈등 끝에서 엄마는 할머니를 오랜 시간 만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엄마를 이해했다. 친할머니는 내게 늘 다정하고 따뜻했지만, 사랑하는 우리 엄마를 매번 아프게 하는 나쁜 사람이었다.


우리 엄마가 할머니와의 애달픈 세월을 가슴에 묻고 용서하게 된 요즘에서야 나 역시 자연스레 할머니에 대한 미움이 사라졌다. 미움과 용서의 동기화, 자식과 부모 사이, 보이지 않는 마음의 연결을 경험해 본 나는 훗날 어린 아들의 기억 속에 남을 할머니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한바탕 큰 싸움이 지나간 끝에는 나와 시아버지에게 남겨진 숙제가 있다. 나는 남편에게, 시아버지는 시어머니에게 다가가 상처받은 그들의 감정을 매만져주는 일이다. 그런데 특별히 이 날은 시어머니가 나를 찾았다.


시어머니는 나의 손을 잡고 지난한 세월의 상처를 이야기하셨다.


똑똑하고, 자신감 넘치는 커리어 우먼의 모습으로 두 아들을 잘 키워내셨지만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다. 장남에게 시집왔지만 일찍 장가를 간 차남 덕에 이미 두 명의 자녀를 둔 동서와 한 집 살림하는 과정, 자신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한 동서와 시누이들의 친밀함 속에 소외감을 느꼈던 기억.. 그 오랜 풍파 가운데 마음의 상처는 이미 흉터가 되어 딱딱하게 굳었지만 가끔 불쑥 튀어나 오는 마음 시려오는 기억은 서러움의 감정으로 표출된다.


격앙된 감정이 사그라든 후, 시어머니는 살며시 우리의 방으로 찾아와 촉촉하게 젖은 두 눈을 감추며 말씀하셨다.


“뉴스를 보니 고속도로에 사고가 많이 난다고 하네. 내일 너무 밤늦게 가지 말고 안전한 시간대로 가거라. 너희 셋이 우리에게는 가장 소중하다. “


이 모자는 또 이렇게 한 고비를 넘어간다.

엄마에게 다 큰 어른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아들과 그런 아들을 마음깊이 사랑하는 엄마를 나는 분명 보았다. 이 둘은 이렇게 또 서로를 용서하고, 서로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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