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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바꾸려면 바꾸고 싶은 생각이 떠올라야 한다

인지재구조화는 오답노트를 계속 보며 학습하는 과정

손때가 필요 이상(!) 많이 묻은 나의 노트북 (안경닦이 어디갔지..)

상담자라면 한 번쯤 듣고 배우게 되는 상담기법이 있다. CBT(Cognitive Behavior Therapy, 인지행동치료요법)는 사람의 생각(인지)이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이 세 가지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비합리적이고 왜곡된 생각을 보다 현실적이고 타당한 생각으로 변화시켜 심리적 안정을 되찾도록 돕는 심리 치료의 한 형태이다. - 위키백과 중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상담기법이 있지만 나 같은 성향 (사고 과정을 논리적으로 나열해서 이해하기 좋아하는, 심리학 세부 분과로 인지심리학을 전공한)의 사람이라면 CBT가 비교적 설득력 있게 느껴질 거라 생각한다.


살다 보면 다양한 사건 사고에 휘말리며 스스로 만든 자화상과 나만의 알고리즘(schema, 도식)을 만들고 수정한다. 이걸 직관적으로 잘 보여준 영화가 인사이드아웃 2가 아닐까 싶다.

https://namu.wiki/w/인사이드%20아웃%202/줄거리#s-5.3

주인공은 청소년기를 보내며 자신의 자아를 통합적으로 형성하는 법을 배운다. 우리도 그랬다. 그런데 영화와 달리 우리네 삶은 이후 몇십 년이 이어진다. 그러니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우리는 한번 만든 자아로 평생을 우려먹을 수 없다. 성인이 되며 어린 시절 형성된 나를 파괴하는 작업을 하고, 초년생 때 미숙해서 당한 트라우마로 무너진 나를 성숙해진 내가 다시 재건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평생에 걸쳐 나를 지웠다 다시 만들며 상황과 세월에 맞게 나라는 건물을 유지해 나간다.


그런데,

건축물을 지을 때 균형 있게 짓지 않으면 건물이 받는 하중이 균일하지 않아 무너진다. 우리에겐 그 가능성을 방어기제, 어떤 상황이나 자극에 대한 자동적 사고, 기존에 형성된 신념 등이 높인다.


한번 본 자라 때문에 놀란 가슴이 솥뚜껑, 맨홀, 비슷하게 생긴 모든 철제 동그라미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놀라고 화가 난다. 자라의 상황을 비슷한 모든 것에 대입하며 점점 강화시킨다. 그러다 똑같은 대처 방법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순간이 오면 펑! 마음의 세상이 초토화되어 버린다.


인지 재구성은 자라의 상황은 한 번이었고, 솥뚜껑 맨홀 철제 동그라미라고 해서 자라가 아니라는 걸 의식적으로 배우고 그에 따라 반응을 학습하는 과정을 뜻한다. 예를 들어 갑자기 누군가가 죽었던 경험이 있어서 연락에 대한 불안이 올라오면 ‘그건 과거의 일이지 지금 이 상황은 달라, 괜찮아.’라고 스스로 수정할 수 있고 렌즈를 뒤로 뺄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훈련을 하려면 ‘기억’을 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익숙한 개념이 있는데, 그걸 이길 새로운 개념이 기억날 리가. 그래서 메모가 중요하다. 메모에 내가 습관적으로 반응하는 것, 그것이 틀린 이유, 어떻게 다르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반복적으로 보고 외워야 선수가 경기에 출전할 때처럼 자동 반사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

메모를 쓴 지 이제 만 5년이 되어간다. 그러면서 많은 반응과 생각들을 되돌아보고 수정해 나가는 중이다. 내 오답노트는 메모에 고정이 되어 있고 그것이 익숙해졌다 싶을 때 고정해제를 한다. 고정 메모가 많다는건 불안이 많다는 의미고 해제를 많이하면 그만큼 많이 정리되었다는 뜻이다. 나의 도식들은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바뀌어 갔다.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이 작업을 하는 이유는 그러면서 많은 관계들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부모-자식 간의 관계, 연인 간의 사랑, 스스로와의 관계. 모두 알아서 좋은 사이가 되는 게 아니라 관계에 대해 배우고 훈련했을 때 더 좋아졌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행복해지는 과정이라 믿는다. 그렇기에 앞으로 내 개인적 생활 속에서도, 내담자분들의 식사 습관 수정에 있어서도 이 과정을 잘 활용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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