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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괴왕 Jun 10. 2022

2. 10분 일찍 출근하기 싫어요

기묘한 근태관리 1편


10분 일찍 출근해서 업무 준비를 하는 것이 맞다!
vs
업무 준비도 업무의 일종이다. 뭐든 정시부터 하겠다!



친구들끼리도 이 주제로는 싸움이 난다. 나는 당연히 후자다. 그렇다고 해서 진짜로 9시 정각에 딱 맞춰 출근하는 건 아니고(그럴 때도 있지만) 1, 2분 정도 일찍 와서 컴퓨터를 켜고 물을 떠 와서 자리에 앉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출근 루틴이다.


발칙하게 퇴근도 1, 2분 일찍 하는 때가 많다. 정시에 퇴근을 하면 집에 가는 시간이 30분은 더 늦어졌기 때문이다. 회사 건물 엘리베이터는 타이밍이 안 맞으면 10분을 기다릴 때도 있다. 엘리베이터 시간이 늦어지면 지하철 시간은 더 늦어진다. 분명 나는 6시에 퇴근했고 회사에서 역까지는 10분이 안 되는 거리에 있는데 지하철을 타고나면 6시 반이 넘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나는 1,2분 일찍 나와서 여유롭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알맞은 시간에 집에 도착하는 걸 택했다. 나는 9to6 외의 시간을 단 1분도 회사와 관련해서 쓰고 싶지 않다. 


물론 내가 처음부터 이렇게 뻔뻔했느냐? 절대 아니다.


당연히 입사 초기에는 지각도 하지 않고 6시 정각에 퇴근했다. 나는 누울 자리를 봐 가면서 다리를 뻗는 타입이다. 


팀장은 입사한 지 며칠 되지 않은 나한테 10분 일찍 출근하라고 당부했다. 10분 일찍 출근해서 업무 준비를 하고 9시 정각부터 일을 시작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나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일단은 따랐다. 그런데 팀장은 9시 정각에 출근하는 일이 손에 꼽혔다. 나한테 말하길 본인은 아침에 아이를 바래다줘야 해서 10 to 7로 근무를 한다고 했다. 우리 회사는 유연근무제를 하는 회사가 아니었지만, 능력 있는 직원에게 이 정도 특혜는 충분히 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 별로 개의치 않았다. 팀장이 5시에 퇴근하는 걸 눈치채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니까 팀장은 9시가 넘어서 회사에 온 뒤 5시에 퇴근을 한다. 나는 이해가 안 갔다. 그의 자녀가 스스로 등 하원을 할 수 없는 미취학 아동도 아니고 등하원을 대신해줄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남들보다 적게 근무한다고 해서 그 근무시간에 일만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전이든 오후든 근무 중인 사원을 붙잡고 자녀 얘기를 하거나 자녀 학교 알림장 보기, 뉴스 보기 등을 하느라 바빴다. 게다가 그는 이틀에 한 번 꼴로, 혹은 더 자주 근무시간에 병원을 간다. 물리치료를 받거나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온다. 하루에 1시간 반~2시간가량을 또 거기에 쓴다. 다른 팀에서 우리 팀은 왜 일을 여유롭게 하냐(?)는 불만이 가끔 터진다고 하는데, 충분히 이해한다.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는 사원들에게도 병원과 은행 등에 용건이 있으면 근무시간에 다녀오라 말한다. 자신은 저녁이 있는 삶이 중요하다며 우리에게도 야근을 하지 말라고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후에 따로 다룰 예정이다.) 


너무 감사하지만 입사하고서 실제로 근무시간에 병원과 은행을 다녀오는 사원은 눈치 없고 뻔뻔하고 누울 자리 봐서 다리를 뻗는 나뿐이었다. 나 외의 모든 사원들은 근무시간에 제 자리를 지켰다. 지금 생각해보니 다른 사원들에게는 근무시간에 다른 용무를 보고 올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잘 풀리지 않는 업무가 있고 마감이 다가오는 일들이 있었다. 그걸 해결하거나 도와줄 수 있는 중간 상사도 없다. 그리고 입사한 지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됐지만 팀장은 주기적으로 우리에게 '회사가 근태관리를 더 엄격하게 할 것이다'라며 압박을 주었다.


나는 근무태도가 스스로에게 매우 너그러운 상사를 보며 '나도 저런 사원이 되자'라고  결심했다. 다만 '저런 상사는 되지 말아야지'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덕분에 나는 지각을 하면서도 자괴감에 울부짖지 않고 정시 1~2분 전에 회사에 도착한 뒤 정시가 되기 1~2분 전에 퇴근하는 당당한 삶을 살게 됐다. 


근태관리에 대해서는 쓸 말이 더 있다.

혹시 누가 이 글을 보면서 '뭐 이딴 새끼가 다 있지', '요즘 애들 진짜 개념 없다'라고 생각하며 화가 난다면 미리 유감의 뜻을 전한다. 맛있는 거 먹고 기분 풀길 바란다. 나는 당신 같은 맑은 물아래서는 이 정도로 썩을 인간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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