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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괴왕 Jun 10. 2022

3. 포괄임금제는 근태 관리할 자격이 없다

불성실한 나까지 사랑으로 포괄해봐 어디

포괄임금제. FUCKING 포괄임금제. 누가 고안했는지 모르지만 그의 자손 모두 대대로 포괄임금제 노동자로 살면서 스트레스받아 만성 위장염을 얻길 바란다.


근로계약 체결 시 연장, 야간, 휴일근로 등을 미리 정하여 예정된 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을 말한다. 즉, 실제 근로시간을 따지지 않고 매월 일정액의 시간 외 근로수당을 지급하거나 기본임금에 제수당(諸手當, 기본임금 이외에 지급되는 모든 종류의 수당)을 포함해 지급하는 임금 산정방식.  

[네이버 지식백과] 포괄임금제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나는 평소 신문과 뉴스를 보던 사람이기 때문에 포괄임금제가 악랄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회사에 들어올 때는 소득이 생겼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기뻐서 <포괄임금제>라는 단어 자체가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실제로 근로계약서에 서명을 할 때 인사 팀장님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 회사 임금이 이렇게 좋아할 만한 정도가 아닌데.. XX 씨처럼 기뻐하는 사람 처음 보네..."


이렇게 순수했던 나였는데... 포괄임금제의 극악무도함과 직원들의 짠 급여를 배려하지 않는 회사 덕에 이렇게 흑화 해버리고 만 것이다.



1. 포괄임금제가 밥 떠먹여 주지 않는다.


식대 식대 식대! '식대 포함'을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별 거였다. 요즘 식당 어딜 가나 한 끼에 기본 8천 원을 한다. 20일 정도를 먹는다 치면 16만 원 정도를 쓰게 된다. 물론 한 끼 6천 원 정도 하는 구내식당을 쓰면 12만 원으로 지출이 줄어든다. 


그러나! 우리의 상사는 구내식당이 입에 안 맞다며 메뉴 선정을 자신이 하길 바랐다. 한 끼에 만원을 훌쩍 넘길 때도 많다. 더 환장하는 건 우리 팀에 돌아가면서 커피를 사는 문화가 있었다는 거다. 우리보다 몇 배는 버는 팀장이 왜 꾸역꾸역 사원들에게 커피를 얻어먹는지도 모르겠고 돈도 없는 사원들이 왜 팀장에게 커피를 사다 바치는지 처음엔 이해가 안 됐다. 회사 라운지에 커피 머신이 떡하니 있는데 왜 굳이? 


 후에 알았지만 사원들 대부분 여기가 첫 회사고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줄 알았다고 한다. 모종의 일들이 있고 팀 분위기가 냉랭해지고 나서야 우리는 밥을 따로 먹고 커피를 사지 않을 수 있었다. 돈을 아끼기 위해 도시락을 싸거나 구내식당을 가도 뭐라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나중에 사원들끼리 모여서 한 얘기지만, 점심 비용으로 통장이 텅텅 비는 경험을 서로 다 해봤다고 한다. 우리는 이렇게 쪼들리고 사는데 상사들 중 누군가는 우리가 밥을 제각각 먹는 것에 대해 훈수를 둔 적이 있다. 회사에서는 일 말고 서로에게서 배울 것이 있고 그런 걸 밥을 같이 먹으면서 공유할 수 있다나 뭐라나..? 돈 줄 게 아니라면 닥쳤으면 한다.



2. 외근 내보내면서 차비는 왜 안 주는데?


차비 지출이 은근히 크다는 걸 몰랐다. 한 달에 최소 5만 원 돈이 나간다. 출퇴근은 그렇다 쳐도, 외근 차비는 왜 돈을 주지 않는지 모르겠다. 청구하면 준다고 하긴 하는데 그걸 청구하는 것이 귀찮아서 청구를 포기하도록 청구 과정을 매우 복잡하게 만들었다. 가끔 야근을 하면 택시비를 준다고 한다. 근데 택시비 안 받고 야근 안 하고 싶은 게 우리 모두의 마음 아닐까?



3. 야근시키면 지각할 거다.


업계 특성상 야근을 할 때가 있다. 야근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내가 업무시간에 충분히 일을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일정관리를 위해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야근은 이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내가 낮에 내 업무를 다 하는 이유는 내 앞에 처리되어야 할 일들이 제때 처리되지 않아서다. 


그렇다고 그 시간에 내가 노냐? 그것도 아니다. 물론 회사 눈에는 업무를 안 하고 멍 때리는 것 자체가 노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근무시간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자체가 '업무 대기상태'라고 생각한다. 회사에서 내가 드러누워 자는 것도 아니고 책 읽거나 드라마를 보는 것도 아닌데 그게 왜 노는 건가? 혹시 사원들이 업무 대기상태인 것이 싫은가? 그럼 높으신 분들이 업무의 모든 처리 과정이 일정대로 진행되도록 똑바로 관리하면 된다. 나는 야근 수당이 1도 없는 포괄임금제 아래서 '불필요한' 야근을 하고 싶지 않다. 


 언젠가 예고 없이 새벽 2시까지 야근을 한 적이 있다. 정말 불필요한 야근이었고, 굳이 그 시간에 처리하지 않았어도 될 일이었다. 해당 업무에 사용되는 툴에 대해 누구 하나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만 있었어도 그런 삽질을 하지 않았을 일이다. 나는 그 불필요한 시간이 너무 아까웠고 그 새벽에 퇴근을 하면서도 다음날 오전에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이 분했다. 


무엇보다 그 시간들에 대한 수당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분개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내가 초과근무 한 시간만큼 내 업무시간 자체를 알아서 줄여나가겠다고. 그날 내가 8시간 정도 초과근무를 했고, 지금까지 지각하거나 태만했던 걸 생각하면 3시간 정도 일을 덜 한 것 같다. 앞으로 5시간 정도 업무를 덜 할 예정이다.



4. 휴가를 포괄하는 건 사탄도 울고 갈 짓이다.


다른 친구들은 수습 때도 한 달에 휴가 한 개는 생겼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우리 회사는 법정 연차 제도에 속하는 휴가를 임금에 모두 포괄시키고^^ 우리 회사만의 엿같은 휴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한 달 만근 한다고 해서 휴가가 하나 생기지 않는다. 월차 같은 게 없다고 보면 된다. 법정 연차 제도에 따라 일반 회사원들이 15개의 휴가를 얻는다면, 우리는 회계연도 시작일에 12개의 휴가를 주고 1년 동안 쓰라고 한다. 이것도 전년도 만근 기준이다. 나는 입사일 ~ 다음 회계연도 시작 기준으로 5개월만 만근 한 상태라 1년 간 5개의 휴가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여름휴가가 별도로 있지도 않다. 반차 제도? 없다. 병가? 당연히 없다. 생리 무급 휴가? 바라지 않는다. 주말 외근을 하면 하루의 대체 휴가를 준다고 하는데, 휴가를 안 쓴다고 돈으로 돌려주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취준생들에게 채용 공고 보는 팁을 하나 주고 가겠다.


채용 공고에 '리프레시 휴가 제도'가 대단한 복지처럼 적혀있는 회사들이 있다. 지원하거나 면접을 보러 갈 때 법정 연차를 보장하고 별도의 리프레시가 있는 건지, 아니면 법정 연차를 짜디짠 임금에 깡그리 흡수시키고 그들만의 이상한 휴가 제도를 운영하는 건지 꼭 따져 물어야 한다. 


웬만하면 여름휴가도 따로 있고 병가도 낼 수 있고 시간을 쪼개서 반차, 반반 차를 쓸 수 있는 곳을 지원하라고 하고 싶다. 포괄임금제로 운영되는 중소라면 그러지 않을 가능성이 1000%다.


아, '간식 무제한 제공'이 복지인 회사도 걸러야 한다. 자랑할 게 그것밖에 없다는 뜻이다.



5. 모든 걸 포괄하는데 왜 이것밖에 안 주는데?


포괄임금제 자체가 죄는 아닐 거다. 모든 걸 포괄해서 그만큼의 돈을 준다면 무슨 불만이 있겠는가? 그게 아니니까 환장하는 거다. 식대나 야근 수당 등등을 빼고 기본급만 보면 화가 나는 걸 넘어서 너무나도 무기력해진다. 이 돈으로 내가 집을 얻고 가정을 이룰 수 있을까? 부모님께 용돈을 좀 쥐어드릴 수 있을까? 물가가 치솟는다는 뉴스가 매일 나오는데 정말 이제 쌀만 먹고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암담한 생각의 굴레에 빠지게 된다.



6. 포괄임금제에 걸맞은 노동자가 되겠다.


하지만 나는 꽤나 씩씩하고 꽤나 뻔뻔한 편이다


. 회사가 나에게 짜게 굴면, 나도 회사에게 짜게 굴 것이다. 물가 상승을 반영하지 못하는 임금에 호응하기 위해 나도 세상의 상식을 반영하지 않는 무개념 사원이 될 것이다. 업무를 다 못하더라도 야근하지 않겠다. 대충 주는 업무를 대충 처리하겠다. 제대로 된 교육을 해주지 않거나 교육비를 주지 않는다면 모르는 상태로 멍을 때리겠다. 차비를 주지 않는다면 최대한 차비가 덜 드는 두 발로 느릿느릿 외근을 다니겠다. 남은 휴가를 다 쓰고 나면 퇴사를 하겠다. 회사 간식을 최대한 많이 먹겠다. 


포괄임금제는 나 같은 사원도 사랑으로 포괄하라고 포괄임금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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