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
갑작스럽지만 회사의 장점에 대해 몇 개 써보고자 한다.
내가 너무 부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 있어서 나 자신을 갉아먹는 느낌이기도 하고, 회사가 너무 싫어서 일까지 하기 싫은데 이것이 결국 내 손해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내 경력은 소중하니까..!
우리 회사의 장점을 몇 가지 나열해 보겠다. 내가 느낀 것도 있고, 잡플래닛에 나와있는 평가를 참고하기도 했다.
1.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
쓸데없이 격식을 강요하는 회사들에 비하면 훨씬 자유롭다. 일단 내가 옷을 편하게 입고 다닌다. 우리 팀이 팀 특성상 복장이 자유로운 편이다. 다만, 남성 직원들에게는 약간의 격식이 요구된다.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팀 리더의 재량에 따라 업무 시간에 간단한 용무를 보러 외출하는 것이 허용된다. 물론 그것을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은 우리 팀 리더다..^^ 나와 친한 직원들은 오후에 옥상에 가서 바람을 쐬고 올 때도 있다. 지각을 해도 많이 혼나는 분위기는 아니다.
2. 오피스가 깔끔하다.
사장님이 되게 인테리어에 신경을 쓰시는 분 같다. 인테리어가 엄청 화려하게 예쁘다기보다는... 어디 가서 우리 회사 사무실을 보여줬을 때 부끄럽지 않을 정도다. 친구들한테 사무실 사진을 보여줬을 때 "너네 회사 왜 이렇게 좋아?"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3. 다정한 사람들
회사에 엄청 무서운 사람은 없다. 다들 신입에게 다정하게 해 주시려고 노력한다. 본인이 꼰대임을 인지하고 꼰대처럼 굴지 않으려고 노력하시는 분들도 많다. 젊은 세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하려는 노력을 하려는 노력의 노력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 특히 임원 어르신들께 꽤나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어서 좋다.
4. 간식/음료 제공
요즘 회사 낙은 냉장고 털어먹는 것이다. 빨리 먹지 않으면 빵이나 컵밥은 금방 동이 난다.
5. 다양한 경험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여러 가지 업무를 맛볼 수 있었다. 이것들이 다 내 밑천이 되리라고 믿는다.
6. 신입에게 가혹하지 않다.
이건 아마 팀 바이 팀이겠지만, 내가 서툴고 뭘 못한다고 해서 너무 나무라는 분위기는 아니다.
100프로 진심이 아니다 보니 한 자 한 자 적기가 너무 어렵다. 글자 수 늘리는 것조차 안된다.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듯 이 장점들에는 이면이 있다.
1.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 → 관리가 안되기 때문이다.
우리 팀이 회사에서 비교적 제일 자유로운 팀 같은데, 그 이유는 우리 팀이 관리가 잘 안 되는 팀이기 때문이다. 우리 팀에서 가장 자유로운 것은 우리 팀장이다. 본인이 이틀에 한 번 꼴로 근무시간에 한의원을 갔고, 남들보다 일찍 퇴근했다. 본인이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그렇게 할 것을 허용했다. 양심 없는 사원인 나는 팀장이 허락해준 대로 행동했지만 착한 우리 팀원들은 최대한 점심시간을 활용했다.
2. 오피스가 깔끔하다 → 겉보기만 번지르르하다.
회의실 유리벽 코팅, 카페테리어 조명 공사를 한답시고 회사가 어수선해진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 정도 공사를 할 정도로 문제가 있지 않았던 것들이다. 그 돈으로 우리의 인센티브를 줬으면 좋았을 텐데..
3. 다정한 사람들 → 일을 어영부영한다.
다정한 말투로 이상한 업무를 부탁한다. 내 커리어에 도움이 하나도 되지 않은 일, 누가 싸놓은 똥을 처리하는 일, 상사들이 하기 싫은 잡무 등이다. 정작 단호하게 거절해야 하는 일에도 다들 다정하게 대처해서 그 일들이 모두 사원들에게 돌아온다. 다들 너무 착하시다!
4. 간식/음료 제공 → 식대를 포함한 임금을 받고 있으며 이 임금이 매우 적다.
더 설명할 게 없다. 채용공고에 자랑스럽게 적혀있는 복지다. 임금이 적고, 포괄임금제이며, 인센티브가 없고 복지 제도가 거의 없다. 그리고 냉장고에 간식이 떨어진다고 그게 빨리 채워지지도 않는다.
5. 다양한 경험 → 교육 지원 같은 것이 일절 없이 낯선 일이 주어진다.
이 회사를 다니면 만능이 된다는 걸 상사들은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체계와 교육 없이 낯선 업무를 받고 되는대로 처리하는 걸 '만능'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업무의 퀄리티는 이곳에서 중요하지 않다.
6. 신입에게 가혹하지 않다 → 일이 제대로 처리되고 있지 않아도 상황을 넘기면 그만이다.
5와 비슷한 맥락일 수 있겠다.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결과물이 있어도 이것이 겉으로 기능하거나 면피가 된다면 그냥 넘어가도 된다는 식이다. 이렇게 엉망으로 처리된 일은 돌고 돌아 업무로 다시 돌아온다는 걸 우리 관리자들은 모른다.
장점을 쓰면 애사심이 생길 줄 알았는데 애사심보다는 얼른 내 소중한 경력을 위해 이곳에서 도망쳐야겠다는 생각만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