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상태
1.
퇴사했다.
두어 달째 쉬고 있다.
이곳에 할 말이 더 있지만 회사를 다니지 않는 동안에는 최대한 전 회사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2.
평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친구들이 말했다.
"야 XXX 회사 그만두니까 단톡방에서 조용한 거 개 웃기다ㅋㅋㅋ"
업무 시간 내내 틈틈이 회사 욕을 해대던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까 평일 낮에는 단톡방에서 별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된다.
웃기면서 슬프다.
많이 반성했다.
다시 말하면 직장 생활 내내 내가 가까운 사람들과 나눴던 모든 이야기의 소재가 '회사'였다는 거다. 좋은 얘기만 해도 모자란데 싫어 죽겠는 것만으로 우리 이야기를 채워왔다. 내 삶의 콘텐츠가 오로지 싫어하는 것들로만 가득했다.
3.
회사를 다니지 않으니까 낮에 시간이 많다. 개운하게 일어나서 적당히 집을 치우고 하루 최소한의 분량으로 할 일을 해낸다. 밥벌이에 대한 불안 외에 나를 괴롭히는 건 없다. 이건 내가 이겨내면 되는 거다. 소소하게 좋아하는 걸 하고 아주 최소한의 성취만 챙긴다.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요즘이 정말 소중하다.
4.
내가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친구들은 여전히 회사에서 분투하고 있다. 낮 동안 쌓인 톡들을 읽으면서 조금 피로감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러다가 또 반성한다. 친구들도 피곤한 와중에 내가 하는 회사 욕을 다 들어주고 날 열심히 위로해 줬다. 너덜너덜해진 정신을 이끌고 서로의 토로를 들어주는 귀찮음을 감내하는 것이 우리의 별 것 아닌 우정이었다. 친구들에게 정말 많이 감사했다. 나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깨닫게 된 일이다.
한편으로는 우리 예전에는 서로 재밌게 봤던 작품 얘기도 하고 시답잖은 상상을 하면서 낄낄대기도 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싫어죽겠는 회사 이야기만 하게 됐나 씁쓸하기도 하다. 직장 생활은 사람을 버석하게 만든다. 돈을 벌어야 하는 평생의 의무는 인생을 인생 같지 않게 만든다. 갑자기 자본주의가 싫고 혁명이 하고 싶다.(종북 아님)
5.
이직을 하게 되면 회사 욕을 개인적 공간에 말고 남한테는 최대한 덜하고 싶다. 회사가 싫으면 내가 싸워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 속 시원한 이야기만 전할 거다. 아니면 그냥 내가 회사를 떠나고 말 거다. 뭐랄까 만족스럽지 못한 직장 생활로 인생의 콘텐츠를 채우는 어리석은 행위는 그만하고 싶다.
이 시리즈는 틈틈이 계속 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