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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빈 Jan 11. 2024

도전 재-디깅

Part 1. 사진 : 쓰는 사진



   촬영에 나서면 찰-칵과 찰——칵의 미묘한 차이를 귀가 먼저 알아챈다. 눈은 자연스레 누군가의 카메라로 향한다. 카메라가 손에 들려 있다면 찰——칵은 위험 신호다. 프로참견러이면서 동시에 소심인자가 다분한 내향형 인간인 탓에 (속으로) 카메라를 대신해 열렬한 SOS를 보내고 이내 (혼잣말로) 나지막하게 내뱉는다. 저 정도 셔터 속도면 흔들립니다. 흔들려요! 한편 사진이나 영상을 보다가 특이한 연출 장면을 마주하면 두 분류의 촉각이 발동한다. 해당 장면의 촬영 방식을 알고 있다면 옆사람에게 나름대로 거드름을 피운다. 반대로 그렇지 않다면 현실적 상상을 더해 촬영 방식을 유추해 본 뒤 온갖 방법을 동원해 정답을 확인한다. 맞췄을 때의 쾌감이란! 과몰입거리엔 늘 이런 류의 촉각이 곤두선다. 써놓고 보니 아주 변태가 따로 없다.


   직업이 병이 된다고 촉각 변태가 카메라 매거진 에디터로 오래 일하니 사진에 관한 모든 촉각이 자연스레 카메라와 촬영 기술에 집중됐다. 아마 내가 1830년대 후반, 사진술의 시작점인 다게레오타이프가 발표되던 자리에 있었다면 몇 년 여에 걸친 발명 비하인드를 특집 기사로 내지 않았을까. 연표를 만드는 일을 시작으로 어떤 시행착오를 걸쳐 지금의 형태가 되었는지 관계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다게레오타이프를 직접 체험하고 있었을 거다. 가능하다면 사용자마다 다른 저마다의 촬영 기술이 있는지 수소문하고 다녔을지도. 그리고 예술의 형태적 제약을 넘어서는 기술에 감탄하며 사진의 독특한 복사 방식을 향해 만만세를 외쳤겠지. 헤드는 ‘예술, 기술이라는 새 날개를 달다’. 독자는 당시 재빠르게 카메라 오브스쿠라와 화학 약품을 구입해 사진을 제작했던 다게레오타이프 마니아들이고. 그러니까 내게 사진은 예술이기 이전에 기술인 셈이다.


   현실에서 내 실제 독자 역시 사진 마니아였다. 더 정확하게는 사진을 촬영하는 방식과 기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그들은 정형화된 촬영 방법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신만의 독특한 촬영 방식을 연구했다. 난데없이 디지털카메라 바디캡에 구멍을 뚫어 렌즈 없이 선명한 상을 얻는 핀홀 카메라를 만든다거나 작은 상자 안에 일상적인 물건으로 장면을 구성해 직접 만든 피규어를 찍었다. 궁금하다면 기꺼이 카메라 제조사의 발표 자료, 학술 논문 등을 찾아 기술을 파헤쳤고 때때로 카메라를 분해해 작동 원리를 알아보기도 했다. 뼛속까지 문과 DNA가 흐르는 내게 가장 난해한 대목이었다. 결국 나는 비자발적 마니아가 됐다. 타의에 의한, 먹고살기 위한 디깅을 시작한 것이다. 사실 기술 자료나 논문을 찾아 읽고 내 것으로 체화해 글을 쓰는 일은 늘 해오던 일이라 어렵지 않았다. 마감과 커피만 있다면 책, 탭 파도와 함께 밤을 새우는 일쯤이야. 다만 애독자 엽서와 온라인 채널 댓글로 몇 번 호되게 혼난 뒤엔 사진을 공부하는 시간이 배 이상 늘었고, 반박의 여지가 없도록 몇 번이고 팩트 체크하는 법을 익혔다. 그렇다고 호기롭게 카메라를 분해할 용기는 없었다. 대부분 대여받은 장비이거나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내가 힘을 합쳐 지른 고귀한 아이들이었으므로. 대신 직업적 베네핏을 이용해 개발자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공정을 직접 돌아보며 사진 기술에 대한 글을 썼다.


   문제는 마니악한 이들의 시간을 사진으로 따라잡아야 한다는 데 있었다. 카메라 매거진 독자는 직업과 관계없이 짧게는 몇 년, 길게는 몇십 년까지 주말을 반납하고 밤낮으로 사진을 찍어온 사람들이다. 그야말로 디깅의 일선에 있는 자들. 때문에 카메라 매거진 에디터는 매달 새롭게 출시되는 사진 장비의 기능과 성능을 설명하기 위해 전문적인 수준으로 사진을 찍어야 한다. 사진가가 분야나 자신만의 주제에 맞춰 사진을 찍는다면 카메라 매거진 에디터는 장비에 맞춰 사진을 찍는다. 초망원렌즈를 다루는 달에는 서킷, 새와 같이 그에 걸맞은 분야를 찍고 광각렌즈를 다루는 달에는 건축이나 별사진 등 장비의 성능과 기능을 설명할 사진을 선택적으로 담는 식이다. 저마다 전문가가 즐비한 다양한 사진 분야에서 글과 사진만으로 독자를 설득시켜야 한다니, 이제와 말하지만 취미 사진가로서는 모든 순간이 미칠 노릇이었다.


   당시 함께 일했던 선배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진에 반쯤 미쳐있었다. 아니다. 정정하겠다. 그들은 독자 이상으로 카메라에 ‘도른자’들이었다. 족히 15kg은 되는 장비 가방을 매일 짊어지고 다니며 쉬지 않고 사진을 찍는 선배는 알고 보니 최약체였다. 사무실에 엠바고가 걸린 신제품이 도착하면 먹잇감을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다들 눈이 돌았다. 기술 자료도 필요 없었다. 맞댄 머리와 카메라를 쫓는 눈과 손이 그 이상의 몫을 해냈다. 어느 날 한 선배가 렌즈를 분해해 토이 카메라용 장난감 렌즈를 만들었다며 사진 결과물을 보여줬을 땐 안경을 낀 선배의 입 꼬리가 광대까지 승천하더니 이내 머리가 미친 과학자처럼 펑하고 변했다.


   이과적 호기심도 사진적 경험도 적었던 나는 선배들과 다른 우물을 파겠다 선언했다. 초심자의 시선으로 카메라와 사진 기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박박 우기며 열심과 끈기를 무기로 초심자의 삽질을 시작했다. 전국 팔도, 해외 곳곳을 다니며 주말을 반납하고 밤낮없이 사진을 찍었다. 사진 마니아와 도른자들의 시간을 바짝 쫓아야 했으므로. 무모한 시간이 연속됐다. 사전 지식 없이 야간 산행을 감행하다가 조난을 당할 뻔한 적도 있고 별궤적을 찍으려고 새벽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 노래를 부르며 몇 시간을 고군분투한 적도 있다. DMZ에 들어가 독수리를 코앞에서 보고 간담이 서늘했는가 하면 갑자기 파워 외향인의 탈을 쓰고 등 땀을 흘리며 화보 촬영을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맨땅 중에서도 자갈길에 헤딩하며 머리가 깨진 썰을 풀자면 2박 3일도 짧을 터. 다만 나는 이 모든 시간을 좋아했다. 좋아한다는 단어로 마음을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진을 찍는 일에 몇 년을 푹 빠져 있었다. 요리에 능숙해질수록 흰 요리사 모자가 점점 주방장의 높이에 가까워져 가는 것처럼 하나의 사진 레시피를 정복할 때마다 내 어깨가 점점 하늘로 치솟았다. 당시에는 다방면에 능한 사진가가 되는 비단길이 깔렸다 여겼다. 결국에는 사진으로 나름의 예술을 하고 싶었으니까. 게다가 남의 돈으로 판을 벌려 경험을 쌓으며 취미 욕구까지 챙기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말이다.


   마지막 책을 끝으로 퇴사를 하고 보니 의도치 않게 내가 걸어온 길에는 디깅러의 모래가 깔려 있었다. 동시에 사진을 향한 내 모래 구덩이가 종류별로 지천에 널려 있었다. 그럼에도 닥트리오로 진화할 사진 분야를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디깅이 처음부터 내 안이 아닌 밖에 뿌리를 두고 있었고, 시작이 늦은 탓에 어느 한 분야에 깊은 삽질을 할 여력이 없었다. 매달 새로운 장비와 함께 새로운 분야의 사진가가 되었더니 정작 나는 어떤 사진가인지 알아볼 겨를이 없었다. 분야를 가리지 않는 사진가란 상업의 영역에서는 어느 정도 먹힐 수 있어도 예술의 영역에선 디그다만 외치다 전사하기 십상이다. 아 그러고 보니 내 이름이 괜히 디그다가 아니었구나.


   이대로 전사하지 않기 위해 카메라 매거진 에디터라는 타이틀을 떼고 나라는 사람이 사진을 어떤 방향으로 가져가고 싶어 하는지 꽤 오래 고민했다. 나는 어떤 사진을 좋아했나에서 출발했다. 지금까지 쌓아온 기술을 저버리고 예술만을 택하고 싶나, 꼭 찍는 삽질이어야 하나를 고민해 봐도 대답은 모두 아니라는 결론에 닿았다. 결국 내게 사진은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사진은 글과 마찬가지로 내가 가진 생각이나 관점을 내 안에서 정리하고 누군가와 나누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던가.


   지금은 다시 0으로 돌아와 씹어먹을 나무뿌리를 찾아 헤매는 디그다가 됐다. 요즘은 사진을 잘 찍지 않는다. 대신 그간 찍지 않던 시간에 해왔던 것처럼 사진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이제는 전시를 보고 사진 관련 서적들을 읽으며 사진 너머의 이야기를 본다. 때때로 사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고 어떤 사진가가 궁금해지면 그의 생애를 두루 살핀다. 그럼에도 이야기 안에서 언어적 표현과 이를 구현하는 사진술을 들여다보는 일은 저버리지 않는다. 사진과 다양한 산업 기술의 접목이 없었다면 최초의 카메라는 광학 기술을 이용한 다른 장난감처럼 오락거리에 지나지 않았을 테고 지금은 자취를 감춰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면 이를 통한 사진술의 발전 역시 없었을 테고. 결과적으로 사진가는 사진이 눈앞의 대상을 복사하는 일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담는 표현 방식에 금방 한계를 느꼈을 거다.


   결국 나는 사진에 있어 디깅이 디깅을 낳는 무한루프에 갇혀버렸다. 이러다 진짜 모래 구덩이를 위한 삽질만 하다 끝나는 거 아닌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사진을 쓰기 위한 나의 눈이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길 바랄 뿐이다. 그 경계에 서서 내 작업을 하기보다 누군가의 작업을 알리는 사람이 내 업의 종착역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외쳐 본다. 끝끝내 디그다로 전사할지언정 도전, 재-디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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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에디터와 번역가, 남에게 취향을 팔기보단 매번 본인이 사기만 하는 전직 마케터가 풀어내는 디깅의, 디깅에 의한, 디깅을 위한 에세이. 디깅을 처음 시작하는 분, 다수가 인정하는 프로 덕질러, 이 장르 저 장르 최애는 없고 차애만 가득한 우리 옆집 사는 분까지 두루두루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에세이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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