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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빈 Feb 22. 2024

드라마는 인간을 쓴다

Part 3. K-드라마 : 캐릭터 애착형 시청자의 띵작 연대기



  진화론을 믿는다. 나는 자라면서 보고 읽고 경험한 모든 것을 흡수하고 방출하며 때마다 다른 이로 성장해 왔다. 다윈이 주장한 종의 변이까지는 아니더라도, 모든 행위가 어쩌면 당시의 생존을 위한 크고 작은 투쟁이었다. 내 앞에 놓인 새로운 환경에 맞춰 적응하고 스스로 발전해 가는 과정이었으니까. 그 예측 불가능한 시간엔 항상 누군가의 이야기가 있었다. 주변사람들의 입으로부터 전해진 나는, 혹은 누구는 어떻더라는 말부터 시작해 책이나 연극, 영화와 드라마까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읽고 보며 한정된 나의 세계를 안정적으로 넓혀갔다. 그러다 언젠가부터는 새로운 환경에 놓여 크고 작은 이벤트에 휩싸일 때면 마법의 안내서처럼 펼칠 누군가의 이야기를 두둑이 쟁이는 일이 어떠한 안전지대를 다지는 일만큼 중요해졌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건 드라마다. 책은 어떤 시기에는 죽도록 읽기 싫었다. 흥미를 잃은 구간에서 읽는 행위가 중단되면 그대로 안녕을 고하는 책도 왕왕 있었다. 게으른 인간에게 책장을 넘겨야만 플레이되는 능동 100%의 시간은 여가로만 여겨지지 않았으므로. 연극은 내 안에 사는 경기도인과 내향인이 손을 맞잡고 시위를 해대는 통에 서울 대학로로 가기까지 매번 채찍질을 해야 했다. 한창 때는 주로 소극장을 전전했는데, 앞 좌석에 무릎을 대고 누군가의 뒤통수를 요리조리 피하며 연극을 보는 동안 극과의 연결점이 이탈되는 경험을 한 뒤로는 발길을 끊었다. 영화는 드라마 못지않은 든든한 친구였다. 공부 빼고 다 재밌던 고등학교 때부터 극작가를 꿈꾸던 스무 살 중반까지는 거의 매주 영화관에 갔고 매년 영화관 VIP 혜택을 누렸다. 누군가의 시선으로부터 잘 다듬어진 주인공의 드라마틱한 삶을 가장 먼저 목격하는 일에 도취돼 있었으므로 장르를 가리지 않고 신작을 찾아봤다.


  마감 노동을 하면서 대중없는 업무 시간을 핑계로 영화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는데, 정작 영화와의 시간을 몽땅 드라마로 채운 이유는 따로 있었다. 스물과 서른 사이, 나는 심리학에 빠져 있을 정도로 더 깊게 인간의 생과 생애에 관심을 가졌다. 프랑스 작가 장 폴 사르트르의 말처럼 삶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고,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내내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그 결과가 저마다의 삶이 된다 믿었다. 두 시간에서 세 시간 반 사이. 이 짧은 시간에 주인공의 선택으로 결정된 삶에서 세상을 배워왔던 나는 어느 순간 영화의 호흡이 짧다고 느꼈다. 영화를 보며 주인공의 생에 몰입하려는 찰나에 크레딧과 마주하길 여러 번. 짧은 러닝타임 탓에 개연성마저 떨어질 때면 도대체 주인공은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그런 선택을 해야 했냐고 제작자를 붙잡고 묻고 싶기도 했다. 반면 드라마는 뭉근한 호흡으로 주인공의 삶 구석구석을 면밀히 살피고, 여러 이벤트 안에서 주인공의 선택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연속성 있게 감상하기 좋았다. 소설로 치면 머리맡에 두고 밤마다 조금씩 읽어 내려가며 몇 날 며칠을 그 세계에 빠져 지내는 장편의 호흡이었다.



  생애 최초의 드라마는 캐릭터 설정에 충격을 받았던 2002년 방영작 <명랑소녀 성공기>다. 여자 주인공 차양순(장나라)에게 휘몰아치는 고난과 역경, 남자 주인공 한기태(장혁)의 까칠함과 재력.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겠거니 생각한 건 오만이었다. 기죽지 않는 발랄함, 특유의 어눌한 사투리로 중무장한 차양순은 오히려 한기태가 위기에 휩싸였을 때 기지를 발휘해 그를 구한다. 동화나 만화 속에서 세상을 구경하던 초등학생에게 전형적이지 않은 스토리 전개는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문이 열린 격이었다. ‘띵띵띵- 이제 동화와 만화를 졸업할 시간입니다.’ 같은 종소리를 들었다. <명랑소녀 성공기>를 보기 위해 드라마 방영 시간이 되기도 전에 TV 앞에서 대기하다 엄마한테 혼났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이후 나는 홍시도 못 먹는 초등학생 주제에 <로망스>의 “나는 선생이고 너는 학생이야”와 <대장금>의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이 온데” 같은 대사를 따라 하고 다녔다. 모두가 <야인시대>의 김두한을 동경할 때 시라소니 같은 고독한 조연에 마음을 쏟고 <다모>, <천국의 계단>, <파리의 연인>, <미안하다 사랑한다>, <쾌걸춘향>, <내 이름은 김삼순>, <마이걸>, <조강지처 클럽> 등을 통해 저마다 다른 어른들의 사랑을 배웠다. 돌이켜 보면 10대를 온통 드라마에 바쳤는데, 지금까지 내용이 기억에 남는 작품은 대게 주인공이 독특한 이력을 가졌거나 특이한 결함이 있는 설정일 때였다. 그러니까 나는 캐릭터 애착형 시청자였다. 매주 본방사수를 했던 2002년 방영작 <별을 쏘다>의 주인공 성태(조인성)는 난독증이 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주변에 한글을 모르는 친구가 없었으므로 이 시대에도 글을 읽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한 번,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동경의 대상인 연예인을 한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고등학생이 되던 해엔 주인공의 직업이나 상황, 극의 배경이 내가 알던 세계를 넘어선 <쩐의 전쟁>, <커피프린스 1호점>, <뉴하트>를 만나 사채업자와 동성애, 의사의 삶을 들여다봤다. 졸업반이 돼서는 <그들이 사는 세상>을 보며 드라마 작가를 꿈꾸고 대학을 지망하기에 이른다.


  잠시 일본 드라마에 빠지기도 했다. <고쿠센>으로 시작해 각종 학원물을 섭렵한 뒤에는 한 배우의 드라마를 쭉 파보기도 하고, 일부 장르물에 발을 들였다. 시대극이나 로맨스 위주였던 한국 드라마와 달리 당시 일본 드라마는 독특한 직업군이나 현 시대상을 반영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고 주위에도 일드 정복에 나선 친구가 많았다. 직업적 고증이 잘 된 작품을 만날 때면 드라마를 볼 때마다 매번 새 직업을 가진 기분이었다. 나는 김나박이의 노래 도입부만 들어도 뮤직 비디오 주인공의 사연이 생각나 눈물을 글썽이는 파워 F형 인간이었으니까. 영어 공부를 핑계로 잠시 미국과 영국의 드라마도 넘봤지만 깊게 빠지기엔 의외의 복병이 있었다. 바로 자막. 나는 만화책 한 권도 길게는 한 시간이나 읽는 탓에 친구들과 함께 만화책을 돌려 볼 때면 늘 꼴찌를 면하지 못했다. (영어 공부를 한다고 했지만 늘) 자막을 보며 숨을 헐떡였다. 귀와 눈이 지쳐 포기하는 작품이 하나 둘 늘어갔다. 숨 가쁘게 왜 해외 드라마는 시즌도 <막돼먹은 영애씨>급만 있는지!



  다시 K-드라마로 회귀하게 만든 건 케이블 채널 덕이 크다. 그중 <로맨스가 필요해>, <나인:아홉 번의 시간 여행>으로 시작해 현실 고증의 끝을 보여줬던 <응답하라 시리즈>와 누구나 한 번쯤 품게 되는 동료애로 웃고 울린 <미생>, 먹방과 스릴러 사이를 오간 독특한 콘셉트의 <식샤를 합시다>로 이어진 tvN 드라마의 성장세가 컸다. 그즈음 나는 갑자기 누가 죽거나 뜬금없이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고 갑분 로맨스로 이어지는 지상파 드라마에 지쳐 있던 찰나였다. 그게 해외 드라마로 눈을 돌리게 한 계기가 되기도 했고. tvN의 <로맨스가 필요해>를 쓴 정현정 작가가 지상파 드라마를 한다고 해 역으로 <연애의 발견>을 볼 정도였으니, 그즈음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의 주객은 이미 전도되고 있지 않나 싶다.


  tvN을 비롯한 케이블 채널의 드라마는 다시 나를 TV 앞으로 데려다 놓더니 드라마 속 새로운 세상은 끝 간 데 없다 속삭였다. 나는 <시그널>과 함께 1989년 살인사건을 목격하고 해결했으며 <도깨비>를 통해 뿔이 달리지 않은 기럭지 좋은 도깨비와 다크서클 하나 없는 화사한 저승사자를 만났다.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와 함께 성공한 커리어 우먼의 우정을 동경했고 <비밀의 숲>, <슬기로운 깜빵생활>, <슬기로운 의사생활>, <군검사 도베르만>, <빈센조>, <악마판사>, <검사내전> 등을 보며 법조계와 의료계를 자유로이 오갔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를 통해 글이 써지지 않을 때면 청소를 하는 나 같은 인간이 세상에 또 있구나 위안했으며 <보이스 시리즈>로 미스터리 범죄 스릴러의 매운맛에 본격 입문해 <나쁜 녀석들>, <터널>, <구해줘>, <살인자의 쇼핑목록>, <작은 아씨들>처럼 쫄깃한 추리극과 스릴러를 즐기며 성악설을 믿기 시작했다. <아는 와이프>의 서우진(한지민)과 <하이바이, 마마!>의 차유리(김태희)를 오가며 남편과 아이가 있는 여자의 삶을 상상해 보다가 아이를 갖고 나서는 <산후조리원>의 딱풀이 엄마 오현진(엄지원)을 보며 워킹맘으로서의 미래를 가늠해보기도 했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카지노>


  물론 2010년대 후반부터 방영한 케이블 채널 드라마는 TV나 데스크톱 앞이 아닌 출퇴근길에, 혹은 혼자 보내는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섭렵했다. 마침내 스마트 TV, 데스크톱,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플랫폼을 넘나 들며 VOD를 서비스하는 OTT(Over The Top) 시대가 도래했고 내 드라마 인생도 변곡점을 맞은 것이다. 드라마를 보기 위해 시간 맞춰 TV 앞에 앉거나 데스크톱을 켜는 대신 OTT 서비스를 활용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로 드라마의 세계를 더 넓게 파고들었다. 방송 심의가 없는 OTT의 오리지널 콘텐츠는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킹덤>이나 <마이네임>, <모범가족>, <수리남>부터 시작해 오컬트 향을 풍기는 최신작 <선산>까지. 이전에는 굳이 찾아보지 않던 장르를 두루 섭렵했는가 하면 <인간수업>, <오징어 게임>, <지옥>, <더글로리>, <마스크걸> 등을 보면서는 극한의 상황에서 대립하는 인간의 심리를 보는 재미를 알게 됐다. 특정 직업의 일부분을 깊게 디깅한 결과물과도 같은 <D.P.>, <무브 투 헤븐>, <소년심판>,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도 빼놓을 수 없지만 <카지노>처럼 아예 차무식이라는 인물을 중점으로 극을 써낸 설정법은 캐릭터 애착형 시청자의 혼을 쏙 빼놓았다.


  한편 드라마를 시청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따랐다. 가장 큰 변화는 어릴 적 적막한 집을 참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TV를 틀었던 엄마처럼 드라마를 켜둔 채 다른 할 일을 하기 시작한 데 있었다. 집안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때때로 무언가를 기록하거나 일기를 쓰는 등 멀티 플레이를 할 때도 드라마를 라디오처럼 켜 둔다. 드라마는 호흡이 길기 때문에 이야기와 잠시 멀어졌다가 돌아와도 물고기가 다시 물살을 타듯 다시 흐름을 붙잡는 일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OTT 서비스는 지나간 시간을 거슬러 몇 번이고 돌려보는 일이 가능하지 않던가. 덕분에 흘려보내듯 본 드라마가 있는가 하면 때때로 대사를 외울 정도로 같은 작품을 여러 번 정주행 하기도 했다.



  분량의 한계상 언급하지 못한 드라마까지 합하면 내 삶은 온통 K-드라마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작 서른 몇 해를 사는 동안 K-드라마 덕분에 여러 직업과 다양한 성격의 인간을 탐닉했다. 어떤 주인공에게는 과몰입해 현실로 빠져나오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아직도 종종 그의 이야기 언저리에 머무를 때도 있다. 사람들은 보통 이를 인생작이라고 부르던데, 나는 인생 캐릭터라 말한다. 내가 사랑한 건 결국 드라마 속 인간이었으니까. OTT 서비스의 특혜로 몇 번이고 정주행 한 2016년작 <디어 마이 프렌즈>의 츤데레 딸 박완(고현정)과 2018년작 <나의 아저씨>의 삼 형제와 후계동 사람들, 2019년작 <눈이 부시게>에서 시간을 잃어버린 김혜자(김혜자, 한지민), 2023년작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환자에게 온 마음을 다하는 간호사 정다은(박보영)까지. 나는 드라마 속 캐릭터를 열렬히 쫓고 동경하고 사랑했다.


  드라마는 유한한 인간을 위해 인간을 쓴다. 드라마를 보는 우리는 나와 어딘가 닮은 주인공의 면모를 보고 공감하는가 하면, 그보다 더 많은 경우의 수로 나라면 전혀 가지 않았을 길을 간 주인공을 응원하며 대리만족 한다. 그 숱한 이야기 안에서 울고 웃으며 나는 때때로 유한을 초월하는 존재가 되어 보기도 했다. <눈이 부시게>와 함께 나의 젊음을 잃고 광광 울어봤으며, <나의 아저씨>를 보며 중년이 된 형제의 마음을 부지런히 기웃거렸다. <디어 마이 프렌즈>를 보면서는 급기야 40대에 부모를 바라보는 딸의 마음과 노년의 우정을 상상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의 삶의 어떤 단면에라도 닿길 바라면서. 드라마를 쓰고 보고 기억하는 데는 인간애가 없이는 불가능한 게 아닌가 싶다. 누군가의 삶을 공들여 들여다 보고 누군가의 선택이 만든 이야기를 펼쳐 나가기 위해 작가들이 괜히 몇 달, 몇 년이고 주인공의 삶으로 살아보는 게 아니고, 애청자가 괜히 몇 번이고 그 이야기를 정주행하는 게 아니듯.


나는 오늘도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라마 속 캐릭터의 삶을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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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에디터와 번역가, 남에게 취향을 팔기보단 매번 본인이 사기만 하는 전직 마케터가 풀어내는 디깅의, 디깅에 의한, 디깅을 위한 에세이. 디깅을 처음 시작하는 분, 다수가 인정하는 프로 덕질러, 이 장르 저 장르 최애는 없고 차애만 가득한 우리 옆집 사는 분까지 두루두루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에세이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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