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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델리 Dec 12. 2020

벽을 부수는 일

코로나가 왜 이러나 싶은 12월의 어느 날


다음 달이면 퇴사한 지 꼭 일 년이 된다. 시간이 빨라도 너무 빠르다. 코로나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서 인가. 벌써 연말이라니! 벌써 퇴사한 지 일 년이 다되어 가다니!! 일 년 동안 내가 뭘 했지!!! 이룬 것도 없고, 한 것도 없고, 그렇다고 잘 쉰 것 같지도 않다.


몇 년 전부터 가까운 친구 Y는 말했다. “그렇게 불행하면 그만둬. 그만두고 나랑 좀 놀자.” 회사에서 힘들다고 얘기할 때마다 그렇게 말했다. 몇 년을. 나중에는 조금 짜증이 날 정도였다. 그냥 아무 대책 없이 그만 두면 어쩌란 말이야. 나오더라도 뭘 할지는 정해놓고 나와야지. 나이가 한 두 살도 아니고. 이제 나는 뭐든 닥치면 할 수 있는 청춘이 아니다. 마음은 젊을지 몰라도, 사회에서는 나를 더 이상 청년 취업의 구제대상으로도 보지 않는다.


그렇게 ‘대책’을 찾는 사이 퇴사라는 벽은 조금씩 두꺼워졌다. 어릴 때는 이 회사를 그만두고 저 회사로 들어가는 게 허들을 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면(물론 내 유연성과 체력으로는 허들을 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긴 하다), 서른을 훌쩍 넘겨 마주한 퇴사의 벽은 과장을 조금 보태면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장벽과도 같은 것이 되었다. 게다가 이 벽을 부수고 나가면 뭐가 있을지 전혀 알 수도 없었다.


나는 어떤 벽이든 부수는 것에 깊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벽을 부수는 행위 그 자체의 어려움과 벽을 부수면 나올 것에 대한 두려움을 모두 포함하며, 나는 누구나 그렇게 부수기 두려운 어떤 벽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벽에 붙은 이름만 다를 뿐.


그런 무시무시한 벽을 부숴야만 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친구 Y는 부숴야 할 벽이라는 생각이 들면 일단 손에 잡히는 대로 들고 벽을 부순다. 도구가 없다면 맨손으로라도 부순다. 부수고 나서 맞닥뜨릴 것에 대해서는 뭐가 나오는지 보고 유연하게 대처하기로 한다. 자신에게는 그 벽을 충분히 무너뜨릴 힘과 그 이후에 일을 받아들일 충분한 유연함이 있다고 스스로 굳게 믿고 있다. 즉, 자신이 이걸 해낼 수 있다고 믿는 자기 효능감이 충만한 상태다.


동거인 M은 일단 부숴야 할 벽의 각을 면밀히 잰다. 재질은 뭔지, 높이는 얼마고 두께는 얼마 정도 돼 보이는지, 대략 이걸 부수면 뭐가 나올지 예측해 본다. 알아본 대로 벽을 부수기에 알맞은(적어도 알맞다고 생각하는) 도구를 준비하고, 부수면 나올 것에 대비해서 스스로를 정비한다. Y와 마찬가지로 자기 효능감이 충분한 상태며 지금까지도 그랬듯 앞으로도 자신은 잘 해낼 거라고 믿고 있다.


그럼 나는 어떻냐면, 나는 벽을 부수는 데 이름이 난 뭐든 다 준비한다. 최대한. 작게는 망치에서부터 폭약, 가능하다면 투석기까지 끌고 온다. 벽을 부수고 나올 것에도 대비해서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해 시나리오를 짠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만들어낸 수많은 시나리오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를 펼쳐본다. 그래도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면 준비가 완료된다. 그런데 그 모든 준비는 벽에 대한 내 두려움의 크기와 비례하기 때문에, 그 모든 걸 준비하는 동안 내 두려움을 먹고 벽이 조금씩 자란다. 준비를 열심히 하다가 어느 순간 벽을 돌아보면 벽은 전보다 더 크고 공고해져 있다. 그럼 커진 벽에 맞는 준비를 또 추가하고, 벽은 조금 더 커지고......(얘기가 어디로 가는지 아시겠죠?) 결론적으로 준비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문제는 어떤 벽은 손으로만 살짝 쳐도 푸스스 무너져 버리는 흙벽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벽이란 부수고 나가는 게 중요하지 가루가 될 때까지 ‘완벽하게’ 부수는 게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이제 어떤 벽이든 나오면 패닉 상태가 되어 온갖 것들을 다 들고 나오는 일에 지쳤다. 누구도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종용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그 고난을 기꺼이 행하고 있다. 나는 벽의 각을 재는 눈을 잃어버렸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유연성도 상실했다.


그런 내가 퇴사를 했다. 선택적 백수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껏 버티고 있다. 퇴사라는 거대한 벽을 부수고 나왔는데 놀랍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벽 너머에는 분명 엄청난 고난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괜찮다. 물론 오늘까지 흘러간 모든 날들이 순탄하지 않았고, 아직도 순탄하지는 않다. 계획은 틀어지고 원하던 것은 하나도 하지 못하고 이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날들이 이어진다. 늦은 밤에 잠이 안 올 때면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은 두려움이 기어 나와 무거운 솜이불처럼 나를 내리누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상상했던 것만큼 나쁘지는 않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나는 지금껏 살면서 수많은 벽을 부숴왔고, 앞으로도 계속 크고 작은 얇고 두꺼운 다양한 질감의 벽을 부수고 나아갈 것이다. 벽 앞에서 스스로 만든 끔찍한 상상에 갇혀 더는 못하겠다고 통곡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으려면, 그런 믿음과 감각을 익히는 게 중요하다. 벽을 부수는 거 별거 아니구나. 부수고 나서 오는 것도 별 거 없구나. 세상이 끝나는 일이 아니구나.


퇴사, 해보니까 별거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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