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고양이의 세상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물자체

by 이준형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전혀 모른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이 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제목의 이 소설은 일본의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가 38살에 쓴 데뷔작으로, 문예지인 <두견새>에 그 첫 화가 실렸다. 당초 1회만 싣기로 한 이 작품은 독자들의 큰 인기를 얻게 되며 이후 총 11회에 걸쳐 연재되게 된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고양이의 시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소설이다. 주인공인 고양이는 스스로를 ‘나’라고 부를 뿐 이름도 없고,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모르는 고양이이다. 하지만 사람 못지 않은 사고와 판단력을 가진 채로 살아가는 영특한 존재로,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을 관찰하며 삶을 살아간다.


이야기의 시작은 어느 날 이 고양이가 배가 고파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진노 구샤미(珍野 苦沙弥) 선생의 집으로 들어가게 된 뒤부터다. 영특함을 가진 고양이가 인간 주변에서 살아가며 그들을 관찰한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우습게도 고양이의 시각에서 본 ‘인간’들은 하나 같이 어딘가 부족한 존재로 보일 뿐이다. 집 주인인 구샤미 선생은 매일 학자로서 책을 읽는 척 하지만 책상에 앉아 쿨쿨 잠만 잘 뿐이고, 그 본성이 어리숙한 탓에 친구인 메이테이(迷亭)에게 놀림을 받기 일쑤다. 그렇다고 메이테이라는 인물이 훌륭한 사람인 것도 결코 아니다. 미학자를 자처하는 인물이지만 대부분의 이야기가 허풍 아니면 엉터리일 뿐이며, 그 이름조차도 만취를 뜻하는 메이테이(酩酊)와 같은 음을 사용하고 있다. 또 다른 등장인물인 미즈시마 간게쓰(水島 寒月) 역시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구샤미 선생의 옛 제자이자 이학자로 <목매닮의 역학>이라는 괴상한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또한 가네다 도미코라는 여성과 결혼하겠다며 애를 쓰더니 갑자기 고향으로 내려가서는 다른 여성과 결혼을 하고 돌아오는 등 좀체 알 수 없는 행동을 이어간다.


도대체 그는 왜 이런 소설을 썼을까?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이 전부라고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나 혹은 우리 ‘인간’의 생각에 불과할 뿐이다. 어쩌면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혹은 완전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철학의 오랜 담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서양의 고대 철학자 플라톤은 불완전한 우리의 현실세계를 벗어난 완전한 곳인 ‘이데아’의 세계를 상정했으며, 근대 철학자 칸트는 우리가 물자체, 즉 세계 자체를 알 수 없다고 선언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굳이 이런 철학적 담론을 꺼내지 않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가령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속 개미들이 이 세상을 바라본다면 어떨까? 아마 그들이 바라보는 인간은 마치 걸리버 여행기 속 거인들처럼 거대해 보일 것이며, 걸음걸이 하나하나가 위협으로 느껴질 것이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주인공인 고양이의 시각 역시 마찬가지. 우리가 평소 우스갯소리로 주인이라 말하는 고양이 역시 실제로는 우리를 무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저들은 대체 왜 일정한 시간에 급히 뛰쳐나가선 밤마다 지친 모습으로 돌아오는지 모르겠다’며 딱하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마지막은 고양이가 인간들이 왜 술을 마시는지 궁금증을 풀기 위해 맥주를 잔뜩 마시고는 물항아리에 빠져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인간이 우습게만 느껴졌던 고양이 역시 제 꾀에 빠져 생을 마감한 것. 이 결말을 생각하면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존재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분명 내가 인식하지 못한 위험과 어려움을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계기가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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