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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앓느니 쓰지 Nov 11. 2018

EP14. 아르헨티나, 우리는 사랑 아니면 소고기겠지

둘 중에 하나만 골라. 소고기 or 소고기.

아르헨티나 소고기 정말 맛있는데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네


구글의 기술력이 대기권을 뚫고 명왕성에 닿은들, 검색해서 찾아낸 음식 이미지의 맛을 체험할 수 있는 시대가 올까. 구글에서 인간의 획기적인 생명연장을 연구하는회사 Calico에 조 단위가 넘도록 투자하고 있다는데 그 돈으로 사진의 맛을 그대로 구현하는 기술이나 개발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다 '어? 구글 놈들은 왠지 그딴 기술들도 이미 개발중일꺼 같은데?' 하고 잠깐 소오름...돋든지 말든지 아르헨티나 소고기는 미쳤다. 이건 정말 먹어본 사람만이 아는 맛이기에 대체 글 따위는 뭐하러 쓰나 싶다가도 혹시나 남미여 계획하면서 아르헨티나 소고기를 쏘옥 빼고 가실 불쌍한 이들이 있을까봐 굳이 브런치에다 쓴다. 남미여행 가기 전에 이 글을 꼭 보셔야 할텐데... 남미여행가서 우유니, 마추픽추 이런거보다 소고기를 하루 다섯 번 먹어야 한다구요. 제가 진심 안타까워서 그래요. 면세점을 지나치더라도, 여권을 잃어버리더라도 소고기.


글을 쓰면서도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내가 지금 저걸 못 먹는데..._루꼴라 치즈 샐러드 포함 13500원


선홍빛 속살이 섹시하게 드러난 스테이크 한 점을 소스 없이 입에 넣는다. 메시 킬패스 넣듯 혀로 오른쪽 어금니 앞에 찔러준다. 아직 씹기도 전인데 이 때 이미 '이건 세상 텐션이 아니구나, 별처럼 수많은 소고기 그 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고 그댈 알아가고' 하는 순간 어금니에 안착한 소고기를 잔인하게 씹어버린다. 한 번, 두 번, 세 번 딱 씹으면 '아 아르헨티나 여행은 그냥 이 식당에서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글거리지만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미각과 후각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을 닫아버린다. 하마터면 귀도 막을 뻔했는데, 부에노스 아이레스 식당에서 눈을 감고 야릇한 표정으로 이상한 신음소리내며 입을 오물조물거리는 동양인 남자를 상상해 보라. 글을 쓰면서도 이거 되게 변태스럽네 라고 생각하다가도 내가 표현하는 감정이 하나도 과잉되지 않았음을 느낄 때 약간 소름 돋았다. 글로 당신께 최대한 공감시켜 드리고 싶은데 방법이 없네. 아 구글 놈들 뭐하냐.


아르헨티나는 메시보다 아사도

아르헨티나 스테이크가 깔끔하게 잘생긴 송중기 같은 맛이라면 아르헨티나 전통 바베큐 아사도는 더티섹시의 맛이다.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의 류승룡 같은 맛. 그 영화를 봤다면 류승룡이 임수정 앞에서 두툼한 손으로 소 젖짜는 시퀀스를 잊지 못할 것이다. 아사도의 맛은 그렇게 야릇하다. 뭔가 본능에 충실하게 만드는 맛. 5시간 동안 충실하게 입혀진 숯불의 향과 육질이 이 요리의 핵심이다. 아사도는 '겉바속촉'보다는 '겉바속야'에 가깝다. 겉은 바삭바삭한데 속은 야들야들하다. 그 야들야들함이 다른 소고기들보다 한 걸음 더 진보한 맛임을 확신하게 한다. 야들야들이라는 의태어가 주는 그 깐족깐족거림 안에 부족함 없는 풍미. 속살을 생각하면 되게 간질간질 귀여운데 겉은 또 5시간이나 을 견뎌 겁나 남자남자하다. 채식주의자도 눈물로 회개하게 만드는 맛? 아 더 신박한 표현 없나. 헤이 구글 아사도에 맞는 신박한 표현 찾아줘.


그 밖에도 아르헨티나 소고기 투어는 단 한번도 실망시키는 법이 없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갔던 한인교회에서 "차린게 별로 없어서 미안하네요..." 하며 밥, 김치, 국 이렇게만 주셨는데 국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는 순간 나는 은혜받았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이 국만 있으면 될 것 같았던 소고기 무우국의 은혜. 그냥 소고기 무우국이 아니라 '아르헨티나 소고기 무우국'. 소고기, 무, 국물의 구성비율이 4:1:5의 황금비율 소고기무우국. 트립어드바이저 부에노스 아이레스 다이닝에 그 한인교회를 넣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파타고니아의 장엄한 산들을 등산하고 내려오면 호스텔 식당 여기저기 진동하는 스테이크 굽는 냄새는 또 어떻고. 한번은 엘찰텐에서 소고기 부위의 스페인어 명칭을 잘 몰라서 어리버리 하다가 아무거나 집어서 숙소에서 구웠는데 이게 또 미친 맛인거라. 뭔가 익숙하면서도 묘한 맛이 나서 이름을 검색해보니 홍두깨살이었다. 주로 장조림에 쓰이는 부위. 한국에서는 구이용 소고기로 등심, 안심, 부채살, 업진살 등을 먹는데 홍두깨 스테이크라니. 그런데 이게 또 맛이....아....


글을 쓸수록 피곤해진다. 그 날의 맛이 떠오른다. 죽기 전에 아르헨티나를 딱 한번만 더 갈 수 있다면...내 유산 다 아내한테 남길텐데...아쉬운 마음에 사진이나 한 장 더.


우리는 사랑 아니면 소고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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