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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앓느니 쓰지 May 18. 2019

우리나라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가 뭔거 같아요?

No.26 <당선 합격 계급>_장강명

그냥 나의 뇌피셜일지 모르겠지만 한국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어냐고 묻는다면 왠지 가장 많은 사람들이 '공정성'이라고 답할 것 같다. 스카이 캐슬이 2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우리 사회 교육 시스템의 가장 큰 피해자는 학생'이라는 메시지를 던질 때도 관련기사의 베스트 댓글은 "그러니까 수시 OUT 정시 100%가 답"이었다.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 '수시'라는 믿지 못할 깜깜이 전형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장 큰 지지를 얻은 것이다. 도저히 믿지 못할 것들 투성이의 나라. 대학교를 갈 때도, 취업을 할 때도 심지어 결혼을 할 때도 상대방을 쉽게 믿으면 흑우가 된다.


개인적으로 스카이 캐슬 최고의 명장면


지나친 공정성의 강조도 좋지만 그것이 자칫 창조성의 결여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 이 책의 작가 장강명의 문제의식이다. 합격률 2%가 안 되는 9급 공무원 시험에 수십만 명의 젊은이들이 몰리는 현상을 보며 장강명은 '불합격하는 98%의 젊은이들이 다른 창조적인 일에 몰두할 가능성은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공무원에 불나방같이 뛰어들 때 미국의 젊은이들은 또라이 같은 발상을 실생활에 적용해 보고 실패해 보고 보완점을 터득해 가며 창조적인 헛발질을 한다. 그들이 그러는 동안 우리는 수시 정시 논쟁, 사시 로스쿨 논쟁, 문학계 등단 논쟁을 하고 있다. 마치 조선시대 예송논쟁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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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장강명은 공정성 추구 자체를 비난하지 않는다. 문학계의 공모전 시스템과 대기업 공채 시스템의 취약성을 들여다보는 이 르포의 결론도 두 체제의 파괴가 아닌 여러 가능성 공존이었다. 장강명의 주장은 기존의 공채 시스템의 장점(공정함)을 유지하면서도 상시채용의 또 다른 가능성을 넓혀가야 한다는 주장에 가깝다. 그는 어떤 분야든 '그 타이틀을 차지하는 것(작가의 등단이나 대기업 입사 같은)'을 하나의 성(城)에 비유하는데 '공채를 없애고 상시채용만 실시합시다'라는 주장은 '성의 동쪽 문은 닫고 서쪽 문만 개방합시다'라는 주장과 같다고 비유한다. 장강명의 솔루션은 오히려 '성의 동쪽 서쪽 문뿐만 아니라 남쪽 북쪽 문도 만들어서 열어둡시다. 아니 이왕이면 성벽을 낮게 만들어서 창조적으로 담을 타고 넘어 들어오는 사람들도 환영합시다. 물론 들어오기도 쉽고 나가기도 쉽다면 베스트고'




내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이 성에서 다른 성으로 이동한 케이스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한 업계에서 4년을 일했고 1년(세계일주)의 재충전을 가진 뒤 완전히 다른 업계로 전직을 했다. 전직의 대가는 참혹했다. 계산해보니 30% 정도의 연봉이 날아갔고 새로운 업에 적응하기 위한 시간과 노력도 필요했으니... 그럼에도 나는 새로운 분야로 전환된 것이 굉장히 운 좋은 케이스라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에서 34살 남자에게 새로운 업의 문을 열어주는 케이스는 흔하지 않은 일이니까. 내가 그러한 희귀 케이스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첫째로 내 새로운 회사가 내 '일반적이지 않은 이력'을 높게 평가해 줬다는 것, 두 번째는 나 스스로 '나는 전직이기 때문에 조건을 까다롭게 내세우지 말자'라고 스스로 다짐한 점인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 같은 케이스가 흔해지는 사회를 생각해봤다. 34살에도 44살에도 54살에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게 그리 허무맹랑하지 않은 그런 사회. 핵심은 성의 높이가 낮아져 지금보다 훨씬 많은 가능성들이 성을 오가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 유토피아적인 발상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그럼 나는 한번 더 또 다른 분야에 도전할 수 있을까?' 물으니 또 망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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