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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앓느니 쓰지 Oct 11. 2019

'자본이 이긴다'라는 당연하면서도 무서운 말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아메리칸 팩토리>

- 이 글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아메리칸 팩토리>의 시리즈 중 1편만 보고 작성된 리뷰입니다 -


이 다큐멘터리는 ‘미국에 공장을 지은 중국 기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헷갈리지 않길 바랍니다. ‘미국’에 공장을 지은 ‘중국 기업’입니다. 왠지 역전된 듯한 자본과 노동. 개가 사람을 물면 기사가 안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기사가 된다는 언론계의 오래된 농담도 생각나네요. 저는 이 설정이 이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재밌는 요소라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2010년부터 미국의 몇몇 지역에서 중국계 기업의 공장이 들어서고 있었다고 하는군요. 어쩌면 선입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세계 경제의 패권을 다투는 두 나라에 대한 이미지를 한 나라는 ‘자본’, 한 나라는 ‘노동력’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으셨나요?

흥미롭지요?

영화는 2008년 겨울 오하이오 주의 한 공장 앞에 선 목사님의 기도로 시작됩니다. 추운 날씨 속에 기도를 이어가시는 목사님은 비록 이 마을의 GM 공장은 이제 문을 닫지만 신께서 마을 주민들을 돌보아 달라고,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죠. 신께서 기도를 들어주셨을까? 이 데이턴이라는 마을에 공장이 다시 열리기 시작합니다. 중국계 유리 제조업체 FUYAO의 공장이 들어옵니다.


미국과 중국 노동자들의 아슬아슬한 공조. 중국 노동자들은 미국 노동자들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덩치가 커서 공장 안에 길을 넓혀야 해 작업 공간이 그만큼 줄어듭니다. 손은 너무 크고 두꺼워서 세밀한 작업에 미숙하죠. ‘인간 자원’으로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인들 입장에서는 미국인들은 너무 굼뜹니다. 2교대와 한 달에 1~2일만 쉬어서라도 고향에 있는 가족을 부양하는 중국이니까요.

아 둔한 미국놈들...

반면 미국의 노동자들은 중국의 노동 방식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농담 한 마디 건넬 수 없는 엄숙한 분위기, 너무나 많은 시간 일하고 작업장의 안전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 그들의 문화에 당황합니다. 중국의 자본과 미국의 노동의 긴장. 영화 내내 등장하는 FUYAO의 중국인 회장이 이 갈등을 단적으로 보여주죠. ‘일도 제대로 못 하고 불만만 많은 미국 녀석들’이라고 쓰여 있는 얼굴로 오하이오 공장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닙니다. 처음에는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보이지만 자본과 노동은 계속 부딪힙니다. 미국과 중국의 물리적인 거리만큼 두 나라의 노동 문화는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하나의 격언이 떠오릅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말. FUYAO는 미국에 공장을 세웠으니 미국의 법과 문화를 따라야 하는 걸까요? 현실은 오히려 반대입니다. 비록 미국에 세워진 공장이지만 그 땅을 지배하는 것은 국가가 아닌 ‘중국의 자본’이었죠. 새삼스럽긴 하지만 자본이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 겁니다. 회사 내에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세력들을 향해 FUYAO의 회장은 “노동조합을 만들면 우리는 당장 공장 문을 닫겠다”라고 협박합니다. 한 번에 2박스씩 옮기는 중국 노동자들의 작업을 보며 “나는 절대로 한 번에 2박스씩은 못 옮긴다”라고 버티던 몇몇 미국 노동자들은 결국 해고를 당하거나 제 발로 공장을 나가게 되죠. 노동조합을 조직하려는 미국 노동자들은 사측에서 수십억을 주고 고용한 ‘미국 노조 해산 전문 기업’에 의해 무너집니다. 결국 자본이 이긴다. 자본 앞에 국가는 무의미합니다. 차라리 격언을 바꾸는 게 나아 보이네요, ‘자본주의 사회에 가면 자본의 법을 따라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 가면 자본의 법을 따라야 한다

인간 자원을 중심으로 그렇게 경쟁국에 폭격을 가하는 중국 자본의 위엄. 과연 얼마나 더 큰 힘을 발휘할까요? 영화의 후반부에는 이 또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임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스포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자본이라는 거대 권력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또 다른 빌런을 예고한달까요? 아까 말했던 격언을 빌려 비유하자면 ‘로마(자본주의)에 가면 로마법(자본주의의 법)을 따라야 하는데 이제 세계의 패권이 오스만 제국으로 넘어간 꼴’이 돼 버렸습니다.


‘자본주의 시대에 자본이 최고야’라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 그러나 당연한 말들이 현실에서 그대로 적용됨을 목격할 때 우린 공포감을 느낍니다. 미국은 강하나 미국인은 약하고, 사회주의 체제에 자본주의를 가장 효율적으로 융합한 중국은 생각보다 강합니다(이 영화 한정해서 보면요). 뜬금없긴 하지만 요즘 가장 뜨거운 이슈인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 과연 누가 이길까요? 답은 나와있죠. 자본이 이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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