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근진한 세상을 살아가는 묘책
"올라프처럼 살아야겠다"
겨울왕국 2를 보고 상영관을 나서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사만다를 부르며 쇳소리 나도록 웃어제끼던 올라프는 내게 명장면 오브 명장면이다.
뒤뚱뒤뚱 걸으면서 예기치 못한 순간에 똘끼 충만한 웃음을 터뜨리는 올라프는 정말이지 참신한 캐릭터다. 말이라는 것이 '속으로 생각할 틈' 없이 줄줄줄 새어 나온다. 매사 쓸데없는 말을 떠드는 것 같으면서도 "물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며 실로 대단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마법의 숲에 들어가 모두의 긴장감이 고조되던 때, 소위 '엄근진'한 상황에서조차 눈알을 굴리며 입가를 씰룩거리는 그 모습을 보며 뭐랄까 모든 것을 초탈한 듯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올라프는 언제나 긍정적이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세상의 모든 것을 아끼고 사랑한다. 전작과 속편을 통틀어 올라프는 처음으로 "화가 날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작별인사도 없이 이별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저렇게 나사 하나쯤 빠진 듯 사는 것이 이 엄근진한 세상을 기꺼이 행복하게 받아들이는 하나의 해답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달까. 그동안 너무 힘주고 살아만 왔던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올라프처럼 힘 빼고 웃음을 잃지 않으며, 다만 사랑과 용기는 충만하게,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참으로 좋겠다. 극장을 나오며 나는 함께 영화를 본 남편과 여동생에게 '올라프처럼 살자'며 내내 중얼거렸다.
요즘 올리버 색스(Oliver Sacks)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고 있다. 올리버 색스는 신경과 전문의로 활동하며 여러 환자들의 사연을 책으로 펴냈다. 내용 중에는 수줍음 많던 88세의 할머니가 어느 날부터 활력이 솟구치고 무작정 행복함을 느끼며 말괄량이처럼 성격이 180도 바뀌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처음에는 그저 감격스러웠지만 1년 넘게 이런 상태가 계속되자 무언가 잘못됐다는 예감에 할머니는 병원을 찾았다. 알고 보니 할머니는 '신경매독'에 걸렸고, 스피로헤타 균이 대뇌겉질을 자극한 탓에 이처럼 평소와 다른 증상(?)을 겪었던 것임을 알게 된다. 할머니는 이 병을 '큐피드병'이라고 불렀다. 원인을 찾아냈으니 치료에 나서야 하는데, 할머니는 말한다. "이 병을 치료하고 싶은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요. 이런 활력 있는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아요"
신경매독에 걸린 또 다른 환자에게서는 상상력 과잉 상태가 나타났다. 올리버 색스가 '네모 안에 동그라미, 그 안에 X자가 쳐진' 단순한 도형을 똑같이 그려보라고 했을 때, 그 환자는 단숨에 뚜껑이 달린 상자라며 입체도형을 그려내고는 그 속에 과일을 그려 넣으려고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왔을 때 똑같은 그림을 주문하자, 그때는 바로 도형의 형태를 비틀어 가오리연을 그리더니 긴 줄을 이어 끝에 사내아이를 그려 넣었다. 그러나 세 번째 진료에서 진정제를 투여받은 그는 올리버 색스가 그린 도형을 똑같이 따라 그렸다. 좀 더 쪼그라들고 아주 왜소한 형태로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파킨슨병이나 투렛 증후군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서도 똑같이 나타난다고 한다. 올리버 색스는 이렇게 말했다.
"중독이나 병에 의해 해방과 각성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정신과 상상력은 무뎌진 상태로 잠들어 있다는 사실, 그 얼마나 역설적이고 잔인하며 아이러니한 일인가!"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병리 상태가 곧 행복한 상태인 사람들이다. 정상 상태가 오히려 병리 상태일지도 모르는 딜레마. 책에서는 이 기묘함을 "깨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몽롱하게 취해 있는 상태 속에 진실이 존재하는 세계"라고 표현한다. 물론 나는 파킨슨병 환자처럼 L-도파와 같은 약물을 투여받을 리 없으니 두 상태의 간극을 체험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더욱,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 상태가 과연 정상 상태인가에 대해 의문을 던져보게 된다. 어쩌면 많은 진실들은 무의식에 존재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병리적 각성에 의한 '무작정 행복'과 '상상력 과잉'을 직접 느낄 수 없다면 나사 빠진 올라프라도 되어야 하지 않겠느냔 말이다.
어렸을 때 돈키호테를 좋아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던 듯 싶다. 세상 사람들이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했지만 누구보다 순정적인 사랑과 진실한 꿈을 꿨을 그의 삶을 동경했다. 사는 대로 생각지 않고 생각한 대로 산 대표적인 인물임에 마땅하다. 그렇게 자신만의 세상을 창조해 자유롭게 살던 돈키호테는 제정신을 되찾고는 죽었다. 돈키호테를 번역한 고려대 안영옥 교수는 이 대목에 각주를 달고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돈키호테가 미쳐서 살다가 제정신을 찾고 죽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대목은 우리에게 심오한 삶의 교훈을 준다. 이성의 논리 속에서 이해관계를 따지며 사는 것이 옳은 삶인지, 아니면 진정 우리가 꿈꾸는 것을, 그것이 불가능한 꿈이라 할지라도 실현시키고자 하는 것이 옳은 삶인지를 말이다.”
오랜만에 다시 꺼내 본 돈키호테의 묘비명을 소환하며 마무리해본다.
돈키호테보다는 화사하고, 병리적 각성 상태보다는 건강한 '올라프'처럼 살기를 열망하며.
그 용기가 하늘을 찌른 강인한 이달고 이곳에 잠드노라. 죽음이 죽음으로도 그의 목숨을 이기지 못했음을 깨닫노라. 그는 온 세상을 하찮게 여겼으니, 세상은 그가 무서워 떨었노라. 그런 시절 그의 운명은 그가 미쳐 살다가 정신 들어 죽었음을 보증 하노라. - 돈키호테 묘비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