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단상
다시 괜찮을줄 알았다.
사십 넘어 훅 다가온 중년에 대한 어색함도, 몸이 먼저 반응했던 갱년기도, 거의 달마다 되풀이되는 생활고에도
'그래, 이쯤 겪었으면 당황하지 않을 때도 됐잖아? 적어도 당장 굶어죽진 않는단 건 알았으니까.'
그.럼.에.도.
내가 아닌, 다른 이에 의해 벌어진 예기치 못했던 일들과 그것이 나에게 끼칠 영향에 대해선 그냥 무방비 상태가 되어버렸다. 지난 몇달간 매장과 집을 오가며 엄마로서, 가게 주인으로서만 살던 건조했던 일상은 사실 '평화'란 또 다른 이름이었다. 남편이 일을 정리하고 다시 집으로 오고 내 일상의 고요는 또 다시 무너졌다. 마음의 평정심을 잡기가 이리도 힘든건 역시 '그'란 존재 때문이었을까?
그가 일으킨 작은 풍랑들은 금새 커다란 파도가 되어 내 일상을 덮치고 있다. 떨어져 있던 지난 8개월의 시간동안 가끔 느꼈을 외로움과 허전함에 '인생 별거냐, 남는건 배우자밖에 없다는데. 남은 인생은 알콩달콩까진 아니더라도 그만 복닥거리고 잘 지내봐야지.' 했던 다짐들은 다시금 '사람이 변하냐? 인간 고쳐쓰는 거 아니라더니 그 버릇 어디간다고 또다시 기대한 내가 어리석었던 거지'란 자조가 되어 한숨이 나온다.
사고뭉치가 다시 내 일상에 들어왔고 이제 호르몬 때문에라도 제어할수 없는 분노와 실망감에 아침까지 분이 풀리지 않아 호흡마저 힘들었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매일 오가는 애월 해안도로를 달렸지만 그 멋진 해안가 풍경도 오늘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일상처럼 달리던 해안가 산책로도 그대로 지나치고 매장도 지나쳐 그냥 무작정 차를 몰았다. 곽지를 지나 귀덕, 협재까지 바다를 끼고 달리다 금능해변에서 멈췄다.
물이 빠지기 시작하는 금능은 흐린 날씨에도 참으로 아름다웠다. 부는 바람에 모자도 벗어던지고 협재로 난 좁은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파도가 치는 바다 너머로 비양도가 가까이 보였다. 까만 바위들 사이로 누군가 쌓다 만 돌탑들이 바람에 무너져 있었다. 염원을 담아 돌을 쌓는 행위에 실소를 흘리며 지나쳐갔을 평소와는 달리 무너진 돌틈 사이 만만해 보이는 돌을 집어 조심스레 올려보았다. 어느덧 돌을 쌓는다는 행위안엔 이 복잡한 번뇌를 떨치고 내 인생에도 고요함을 찾게 해달라는 간절한 염원이 담겼다.
비양도를 향한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갑자기 두 뺨 위로 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랬다. 어느새 난 소리없이 울고 있었다. 뺨위로 흐르는 눈물을 주먹으로 닦으며 그제야 '흑'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다행히 비수기를 맞은 제주바다엔 나 외에 아무도 없었다. 그 흐린 하늘아래 치는 파도 앞에서 오십이 된 아줌마는 바람을 맞으며 소리없이 울었다.
고작 며칠전까지 '호모데우스'의 늪에 빠져 한낱 미물인 인간의 유한한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겠노라, 크게 기대하지도 그러하기에 크게 실망하지도 않을 것이라 자신했건만, 고작 이깟 일에 사춘기 소녀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냥 그랬다. 사춘기땐 차라리 뭘 몰랐으니 막연한 방황이었다지만, 중년의 방황은 이미 몇차례 겪었던 일들과 알던 사람 사이 되풀이되는 감정들이기에 그 두려움이 더 큰 것일 게다. 알기에 또 하라면 못할 것 같은 마음, 알기에 이젠 그만 놓아버리고 싶다는 마음, 알기에 기대하는 것 따윈 어리석은 일임을 알면서도 기대없는 삶이 얼마나 건조한 사막인지를 알기에 남은 인생을 그렇게 살자니 또 마음 한구석이 쓰려오는 거다.
바다가 해답을 주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사춘기 소녀처럼 바다 앞에서 훌쩍이고 나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차를 돌려 매장으로 출근하는 길, 다시 나의 소중한 일상을 시작하기로 했다. 지금 내게 필요한건 일탈이 아닌 일상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