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를 꿈꾸는 당신과 나누고픈 이야기
그런 때가 있었다.
남편의 사업을 따라 자의반 타의반 가족과 함께했던 2년간의 제주살이를 끝내고 다시 육지로 돌아갔다 재입도하기 전.
필리핀에서 쫄딱 말아먹고 두달만에 돌아와 돌아갈 집도 일할 곳도 없이 모든 것이 막연했던 그때, 남편과 나는 제주를 꿈꿨다. 이전에 살았던 제주는 '자연은 아름답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았다'란 문장으로 각인되었지만 그 섬을 떠나 이곳저곳을 떠돌며 어느새 우리 마음속엔 '마음의 고향'처럼 그렇게 문득문득 '그리운 섬'이 되었다.
추진했던 사업이 애초부터 사기에 기반했음을 모두 깨달았던 어느날, 불타는 필리핀의 저녁 노을을 등지고 한바탕 눈물을 쏟고난 후 남편에게 말했다.
"한국으로 돌아가자. 제주에서 다시 살고 싶어."
우리는 당장 노트북을 켜고 한국의 구직 사이트에 접속했다. 마침 제주에서 펜션을 관리하며 지낼 매니저를 구한다는 공고가 보였다. 부부도 가능하며 함께 지낼 수 있는 숙소까지 제공한다는 내용에 남편과 나는 주저없이 우리를 소개할 이력서를 정성스레 작성하여 메일로 보냈다. 이력서에는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아온 중년의 지난 사회초년기는 과감히 생략한 채 자영업을 시작한 순간부터 제주와 서울, 필리핀까지 오게 된 여정과 다시 돌아가야 하는 이유, 그리고 그곳이 제주여야 하는 절박함과 간절함을 담았다. 메일을 보낸지 하루가 되지 않아 펜션주인에게서 답신이 왔다. 귀국일정을 알려주면 제주에서 인터뷰 날짜를 잡아보겠다는 거였다. 우리는 답신을 반복해서 읽고 관련된 펜션의 홈페이지를 들여다보며 어느새 제주의 파아란 바닷가옆 펜션 잔디마당에서 풀을 뽑고 있는 우리를 그렸다.
5톤 화물트럭을 꽉 채우고도 모자랐던 출국시 이삿짐 대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의 짐은 참으로 소박하다 못해 초라했다. 두개의 이민가방에 나눠든 짐을 들고 한겨울 강추위 속에 한국으로 입국한 2월의 어느날, 우리는 돌아온 다음날 다시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새벽에 리무진 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하여 제주행 아침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시간 만에 도착한 제주공항에는 고맙게도 우리를 펜션까지 데려다줄 지인이 마중나와 있었다.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전에 몰라보게 상한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는 지인의 눈빛이 안스러움으로 흐려졌다. 우리를 싣고 서귀포로 향하는 자동차의 창밖으로 눈부시게 파란 제주의 하늘과 바다가 이어졌다. 수없이 그렸던 그 모습 그대로 더없이 평화롭고 더없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 아름다운 곳을 그전에 살땐 미처 몰랐구나 싶었다. 이제 당장 아이와 함께 이곳에서 계속 살거라 생각하니 기대감과 안도감으로 마음이 부풀었다.
우리를 기다린 펜션 주인은 메일과 전화상으로 나눴던 이미지완 약간의 괴리가 있었다. 아마도 절박한 상황에서 심적으로 의지하고 싶었던 남편과 나의 허상도 한몫 했을 것이다. 어쨌든 펜션주인은 사업가 입장에서 우리가 도움이 될수 있는지를 봤고 우리는 아이와 함께 지낼 숙소와 일자리가 가능한지를 타진했다. 결과적으론 우리의 협상은 실패했다. 우리는 주인이 기대하는 역량에 미치지 못했고, 우리에겐 그곳의 근무조건이 맞지 않았다. 한시간 가량의 대화 속에서 서로는 결과를 감지해 냈고 그 자리에서 바로 통보는 이루어졌으며 남편과 나는 여전히 파란 제주의 바다를 배경으로 다시 공항이 있는 제주시로 향해야 했다.
참담했다. 이젠 가진 것도 없으니 더이상 잃을 것도 없어 어디에 살든 가볍고, 경제적으로 절박하니 그 어떤 일도 할수 있으리라 기대했건만 그것마저 나의 착각이며 오만이었다. 많은 걸 바라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이젠 어디로 가야할지 그저 막막하고 서글펐다. 그날따라 제주는 2월답지 않게 맑고 청명하고 따뜻했다. 우리를 펜션까지 안내했던 지인은 어깨가 한없이 쳐진 우리에게 가짓수 많은 반찬이 나오는 갈치조림을 사주었고 용기를 가지라며 등을 두드려준 후 돌아갔다.
제주에 살때 한동네에서 친하게 지냈던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복잡했던 제주시를 벗어나 이제는 서귀포에 살고있는 그녀의 집은 조용하고 오래된 중산간 동네에 자리하고 있었다. 작은 토지를 매입하여 지은 작은 집은 그녀의 세 식구가 살기에 더없이 예뻐 보였다. 그녀가 내준 차를 마시는 내내 창밖에서 지저귀는 새 소리와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오후 3시를 향해가는 한낮의 해가 거실 깊숙히 들어와 있었다. 필리핀에서 입국하여 24시간도 되지 않아 제주에 왔고 그렇게 제주의 반바퀴를 돌았다. 지난 긴 여행의 피로와 함께 아침부터 서둘렀던 노곤함이 몰려왔다. 나른함을 이기지못하고 집주인의 권유가 끝나자마자 남편은 거실 소파에서 나는 그녀가 내준 안방 침대에서 곤한 낮잠에 빠졌다.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시간을 알리는 그녀의 낮은 소리에 눈을 떴다. 잠시 멍한 상태로 여기가 어딘지 되뇌었다. 아직 소파에 잠들어 있는 남편의 야윈 얼굴을 보며 눈앞에 닦친 현실을 깨달았다. 이곳은 우리가 원했던 제주였고, 그러나 제주는 아직 우리를 원하지 않고 있다는 자각도.
남편을 깨우고 정류장까지 바래다준 동생과 작별인사를 나눴다. 멀어지는 그녀의 차를 보는데 부러움이 왈칵 밀려들었다.
'너는 이곳에 살고 있구나. 너희 세 식구 지낼 따뜻한 집도 있고, 너희를 받아주는 안정된 일자리도 있는 이곳에 사는구나. 너희는 제주에 사는구나. '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살며 결혼 후 이런저런 어려움 속에서도 가정을 지키고 육지에서 이주하여 제주에서 꿋꿋하게 살고 있는 그녀가 그렇게 부러웠던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세월이 한참 흘러 제주에서 가장 친한 벗이 된 그녀는 어느 여름밤 술자리에서 추억삼아 말한 내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 내가 그렇게 부러웠어? 누군가에게 내가 부러움의 대상이 될수 있다니 기분 좋은걸? 하긴 그때 언니랑 형부 너무 힘들어 보이긴 했어. "
그렇게 원했던 제주에서 지금은 내가 살고 있다. 그것도 재입도 어느새 5년을 넘기고 있다.
그런데 살아보니 불만이 많아진다. 다시 도민이 되어 일상을 살아가려니 내 맘같지 않은 네 맘도 실망스럽고, 애꿎은 자연훼손의 누구를 위한 돈낭비인지 모를 행정처리에도 분노가 일고, 원주민의 텃세 아닌 텃세에도 힘이 부친다.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제주살이에서 이젠 아름다움보단 탐욕의 민낯이, 로망에 가려진 호구의 그림자가, 나만 살자는 안하무인의 이기주의가 아른거린다.
어디든 사는 건 다 마찬가지겠지만 그럼에도 제주라는 특성상, '제주살이'라는 낭만의 가면에 누군가는 또 다시 몸과 마음을 다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 앞으로 조금씩 그간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너무 독하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