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후룩쥔장 May 08. 2023

대박은 일어났으나

제주에서 자영업하기_'발효의 시간' #3

사장이란 이름이 부끄러웠다_ '발효의 시간'2에 이어진 이야기입니다.

https://brunch.co.kr/@soccumi/208




오픈 후 4개월여가 지났습니다.

11월부터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하고 혹독한 겨울을 보내며 일매출 20만원을 넘지 못하는 참담한 결산표를 들고 참 생각이 많았습니다. 지난 10여년의 직장생활을 뒤돌아보며 힘들었던 그때의 기억들도 한낱 엄살에 지나지 않았음을, 때 되면 따박따박 월급이 나오는 직장은 그야말로 꿀이었음을 절감했습니다. 회사생활의 비전을 주지 못한다며 원망했던 나의 지난 사장들에게 다시 만나게 된다면 꼭 밥이라도 사 주고 싶었습니다. 사장이 되어 보니 월급날이 어찌나 빨리 오는지, 시간만 때우는 것 같은 직원에게 회사의 적자와는 상관없이 약속한 급여를 줘야한다는 사실 앞에서 현재가 초라한 사장은 지난 과거의 저의 사장들에게 속죄하는 심정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사장님, 그때 참 힘드셨죠? 철 없는 직원은 불평만 했더랬습니다. 사장님의 마음 헤아리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적자의 성적표를 몇달 동안 받아들고 결국 초보 사장은 결단은 내렸습니다.

초기 멤버로 있던 알바생을 내보냈고 점심이든 저녁이든 꿋꿋하게 사장 혼자 서빙과 주방, 청소, 계산 모든 것을 담당하는 일인 시스템으로 전향했습니다. 더불어 아직 어린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엄마사장으로서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를 받고 간식과 저녁을 먹이며 노심초사 언니나 아빠가 와서 데려가기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외로운 나와의 싸움. 그 치열한 싸움 속에서 참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익숙치 않은 주방에서 초보 주방장이 할수 있는 실수는 다해가며 늘 두 손은 칼에 베인 상처와 튀김기에 데인 흉터, 물기가 가시지 않아 부르트고 갈라져 아팠습니다. 잠을 잘때도 끙끙댔으며 양팔 근육은 몸 쓰는 일을 해보지 않았기에 늘 저리고 아팠습니다.


그럼에도 매출은 오르지 않고 자신있던 요리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어지면서 자존감도 떨어지고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여러번 무엇보다 주방 한켠에 방치된 아이가 불쌍해 아이를 붙잡고 울다 문열고 들어오는 손님을 보며 급하게 눈물을 훔쳤습니다. 부르튼 손으로 흘러내린 눈물을 닦으니 눈에 상처가 나 그 서러움에 또 울었습니다. 아직 어린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퇴근하던 직장생활 땐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얘를 이리 울리나?' 싶더니 적어도 내 아이는 돌보며 할수 있겠다 싶었던 자영업이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습니다. 집안 꼴은 엉망이고 아이도 불쌍하고 몸도 힘드니 남편과는 늘 소리높인 전쟁이었습니다.



메뉴에 대한 고민도 참 많았습니다.

정해진 메뉴와 매뉴얼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해보면서도 끊임없이 드는 의심.

'이게 맞긴 맞는 건가?'

손님 없는 한가한 오후, 통창 가득 들어오는 봄 햇살을 받으며 저 멀리 한라산의 만년설을 감상하면서도

'아. 이건 정말 아니지 않나? 식사 시간이 지났는데도 사람이 이렇게 안 온다는 건 이건 정말 문제있는 건데. 잘되는 식당을 봐. 한가지 메뉴만으로도 승부를 보고 줄서서 먹는데, 지금 내 가게 메뉴는 왜 이렇게 많은지. 이게 원인이 아닐까?'

그럼에도 초보 사장에게 결단은 쉽지 않았습니다. 메뉴를 바꾼다는 건 식자재뿐 아니라 필요한 집기와 그릇까지 달라져야 하는 복잡한 문제였기 때문이었죠.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니 그래도 마음이 조금은 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조금씩 단골이라 할수 있는 분들도 생기기 시작했고 초기 손님은 대부분 기억을 하는 편이어서 반갑게 맞아 드리고 이것저것 챙겨드릴 수도 있었습니다. 많지는 않았지만 드믄드믄 예약손님도 생겼습니다.

어느 따뜻했던 봄날 아침, 초보 주방장을 당황하게 했던 그날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날은 조금씩 바빠진 홀을 혼자 감당할 수 없어 점심시간만 서빙을 맡아줄 새로운 식구를 맞이한 첫날이었습니다. 항상 그렇듯 혼자서 하는 주방일이 바빠 첫 출근한 H에게 따로 작업내용을 알려줄 틈도 없이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거기 찾아가려고 하는데 위치가 정확히 어디죠?"

"오늘 점심 예약 할수 있나요?"

"여기 어디인데 차를 가져가면 주차가 가능한가요?"


오늘따라 전화가 많다 싶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최근 들어 늘기 시작하는 손님이려니 했죠.

점심시간이 되기전 오픈시간인 11시부터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한테이블, 두 테이블, 주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주부 손님들이었는데 삼삼오오 짝을 지어 왔습니다.

첫 출근인 H에게 홀 일을 맡기고 분주히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오자 손님은 계속 들어왔고 그때까지 그런 일이 없던 저로서는 부족한 식기를 급한 대로 설겆이를 해가며 파스타를 말아가며, 돈까스를 튀겨가며 정말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정도로 바쁘게 일해야 했습니다.


늦은 손님까지 겨우 맞추고 난 시간이 3시.

온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고 진이 다 빠졌습닌다. 이미 토핑 냉장고에는 다 쓴 재료로 텅 빈 용기만 있었고 재워놓은 돈까스도, 삶아놓은 파스타면도, 밥도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첫 출근이었던 H와 함께 점심을 먹는데 힘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눈썰미가 좋고 손이 빨랐던 H가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정신이 없는 가운데 제주도에서 알고 지내는 동생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언니, 오늘 바빴지?"

"어. 어떻게 알았어? 나 오늘 너무 힘들었어. "

"아이구. 언니야. 어제 내가 제주맘에서 언니네 가게 누가 올린 글 봤었는데 맛집 코너에 사진이랑 후기를 자세히 올렸더라구. 댓글 엄청 많이 달리길래 아침에 언니한테 말해준단 걸 깜빡 잊고 이제서야 전화한거야. 그 글보고 아무래도 엄마들 많이 갈거 같아서 재료 많이 준비하라고 할려 했는데.."

아. 그랬었구나...

엄마들의 힘! 그 전날 학교 엄마들과 모임이 있다며 예약했던 손님 중의 한 분이었습니다. 맛있었다며 친절한 글과 사진, 나름 미각의 소유자로 그간 다녀본 식당의 여러 개의 후기로 까페에서는 신뢰도가 있는 맘인 듯 했습니다. 그 후기에는 근래 보기 드물게 수많은 댓글이 순식간에 달렸고 걔중에는 지난 3~4개월동안 우리 가게에서 식사했던 손님들의 경험들도 여럿 있어 좋은 댓글에 반응이 더 좋았던가 보았습니다.

그렇게 그날의 사건은 일어났고 그제서야 저는 이유를 알수 있었죠. 그 전까지 하루 매출 20을 못 넘어본 가게의 그날 점심매출만 30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전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현상이 일시적일 수도 있고, 지속적일 수도 있겠지만 그 둘다 정상은 아닌것만 같았습니다.

매출이 오르는 것은 좋았지만 이렇게까지 몸이 힘들줄은 몰랐는데 앞으로 이 현상이 지속된다면 매일매일 이렇게 죽을만큼 힘들다면 너무 끔찍하게 느껴졌습니다. 하루정도는 집안 대소사처럼 할수 있겠지만 이걸 매일 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늪에 빠지는 것만 같았고 목이 죄어왔습니다.

몰려드는 손님을 보며 드는 공포심. 내 가게를 찾는 손님이 반가운 것이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이 될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갑자기 극도의 히스테릭 상태가 되더군요. 깨끗이 씻어 말려놓은 그릇을 정리하는데 다 던져 부셔버리고만 싶어졌습니다. 형용할수 없는 눈물이 주책맞게 흘러 멈추질 않고 이곳을, 이 제주도를 벗어나 버리고만 싶었습니다. 이대로 일만 하다 늙어 죽을 제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아 여기서 멈추고만 싶었습니다.

깨질듯 거칠게 내려놓는 그릇 소리에 놀라 남편이 주방에 들어와 물었지만 전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데 너무 화가 나고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한 주범이 저 인간이다 싶어 원망의 말만 쏟아냈습니다. 뜬금없는 저의 반응에 남편도 화를 냈고 점점 더 극단으로 차올라 둘다 이 가게를 닫아버리자고까지 얘기가 나왔습니다. 남편은 화가 나서 그랬겠지만 저는 기회는 이때라는 듯 가게를 나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집에 와버렸습니다.


말할 수 없이 참담한데 해결은 해야겠고 에라 모르겠다 그동안 돌봐주지 못했던 작은 아이를 데리고 창넓은 까페에 앉아 커피 마시며 여유를 부렸습니다. 창 너머로 하교하는 중학생이었던 큰아이가 보이길래 까페에 앉혀놓고 꼬시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지금 너무 울적한데 너 학원가지 말고 우리 바다보러 가자. "

"뭐야? 땡땡이 쳤어? 나 학원가야 하는데?"

"넌 지금 엄마가 이렇게 우울하다는데 학원이 중요하냐? 우리 바다본지 오래됐잖아. 밤바다 가서 바다도 보고, 너 좋아하는 빨간집 떡볶이도 먹고 어때?"

결국 제 꾐에 빠진 큰 아이와 작은 아이를 데리고 동쪽바다로 달렸습니다. 상쾌한 밤 바다에 우울한 기분도 날아가더군요. 큰 아이가 좋아하는 빨간집의 매운 떡볶이도 먹고 부른 배를 안고 바닷가 산책도 했습니다.

"너 서울가고 싶다 했지? 엄마 이 가게 팔아버릴까봐. 이 가게 팔리면 우리 그 돈 갖고 서울가자."

시작한지 겨우 4개월된 가게는 그날 벌써 미래를 예측하고 있었던 건지 모르겠습니다.



도망가버린 가게 사장이자 주방장 없는 가게에 망연자실 앉아있던 남편은 결국, 그날 저녁 통유리창 블라인드를 모두 끝까지 내리고 메모를 현관에 붙여놓은 채 어두운 가게 안에서 상념에 잠겼다 합니다.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금일 저녁 영업은 쉽니다'..


어린 둘째를 가게앞에 앉혀두고 혼자 일하던 어느 봄



To be continued...









매거진의 이전글 사장이란 이름이 부끄러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