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랑_1
그녀는 급하게 싼 짐들을 대문 앞에 쌓아놓은 채 한강으로 난 2층 창문을 노려봤다. 석양빛을 받아 창문은 빠알갛게 물들어가기 시작했고 부드러운 봄 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있었다. 여러 가구가 함께 사는 흑석동 꼭대기 타운하우스의 경비실에선 경비아저씨가 그녀의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부서져라 창문을 바라보던 그녀는 골목을 올라오는 콜택시에 짐들을 구겨넣고 쓰러지듯 뒷자리에 앉았다.
"안양으로 가 주세요."
택시가 골목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성당이 지나가고 중앙대학교가 지나가고 좁은 재래시장 입구가 지나갔다. 딸아이와 자주 갔던 설렁탕집이 시야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택시는 좁은 골목길을 벗어나 올림픽대로를 올라탔고 라디오에서는 '리차드 스톨츠만'의 '필라델피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석양으로 물들어가는 오렌지빛 저녁하늘에 클라리넷의 맑은 소리가 복잡했던 그녀의 마음을 위로하는 듯했다.
"오늘 회사에서 손님이 올 거야. 사장님 여동생분인데 3층 방 보고 여기서 잠깐 있을거 같애. 당신은 너무 신경쓸 거 없고 그런가보다 해."
큰아주버님 집에서 쫓기듯 나와 이곳 흑석동으로 이사한지 한달쯤 되었을 때였다. 분가하라는 큰형님 뜻을 거역할 수 없어 급하게 집을 알아봤지만 무일푼이었던 그들에게 오라고 하는 곳은 없었다. IMF를 지나고 벤처붐이 일기 시작하면서 뒤늦게 막차를 탄 그녀의 남편은 IT기업에 이어 게임회사에 이사로 들어갔지만 투자건이 예정대로 이뤄지지 않아 또 다른 회사를 전전하는 처지였다. 확실한 아이템과 기술을 가진 몇몇의 기업들 외에는 그럴듯한 아이템만 걸고 투자자를 모집하여 상장해보려는 묻지마 투자가 횡행하던 때였다.
첫 직장이었던 건실한 중소기업은 지방발령이 나면서 그렇지 않아도 경직된 조직문화에 힘들어했던 남편에게 퇴사의 구실을 만들어주었고 이후로 기획자란 이름하에 남편은 돈이 될 만한 아이템이면 이곳저곳을 가리지 않았다. 너무 일찍 '작전의 세계'를 알아버린 남편의 정법이 아닌 편법의 수는 그리 쉽게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결국 된다는 회사의 주식을 사기 위해 갖고 있던 작은 아파트까지 처분한 채 남편과 그녀, 그들의 딸아이는 광장동 24평 큰아주버님의 집, 방 한칸에 살며 '한탕'을 노리고 있었다. 그마저도 작전주는 휴지조각이 되었고 예기치 않던 사건까지 벌어지면서 결국은 쫓겨나듯 분가를 통보받게 된 것이다.
당시 그녀의 남편이 다니던 회사는 소위 말하는 작전주와 더불어 경매도 겸하고 있었다. 회사의 사장은 낙찰받은 몇개의 물건 중 그들에게 선택하여 집이 팔릴때까지 살라고 했다. 그리하여 그녀의 회사업무가 끝나고 남편이 그녀를 데려간 곳은 흑석동 꼭대기에 있는 커다란 타운하우스였다.
대문을 지나 경비실을 지나고 잔디밭을 가로질러 모여있는 몇채의 집들 중 왼쪽 끝에 위치한 집에 들어섰다. 대리석으로 되어있는 1층에는 거실과 주방이, 계단을 올라간 2층에는 욕실과 내실, 응접실이 구분되어 있는 커다란 안방과 이어진 두개의 방, 그리고 3층에는 일하는 사람이나 손님을 위한 듯한 방과 온실로 개조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옥상이 있었다. 함께 사는 옆집 사람들은 연예인 아니면 정재계, 법조계에 있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사람들이었다.
그녀가 원한 것은 작은 집이었다. 남편과 아이, 그녀가 함께 지낼수 있는 방과 거실, 욕실이 있는 집이면 그녀는 만족했다. 그들이 가진 돈으로는 어렵겠지만 이왕이면 지하보다는 햇볕이 잘 드는 창을 가진 집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어쩌다 가세가 기울어 그 집이 경매로 나왔는지는 알수 없었으나 그 집은 그녀에겐 너무 크고 부담스러웠으며 음습한 기운이 기분 나쁘게 느껴졌다. 경매로 나오기 전 주인은 급하게 쫓겨나갔는지 구석구석 고가의 그릇들이며 그림들까지 두고 갔다. 반들반들한 나무계단을 올라가는 길은 계단 위 매달린 오래된 샹들리에와 더불어 공포영화에 나오는 고저택을 떠올리게 하였고, 전 주인이 취미로 그린듯한 그림들은 어두운 색감의 추상화로 그로테스크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남편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그 집으로 이사를 들였다. 그들의 살림살이로는 그 넓은 저택의 삼분의 일도 채우지를 못해 휑한 대리석 바닥에 접이식 나무상을 펴고 앉아 저녁을 먹던 첫날, 그녀는 그럼에도 희망을 가져보려 노력했다. 그렇게 원했던 딸아이 방을 만들어주고 그럼에도 남는 방들은 남편의 서재, 자주 오실 친정과 시댁식구들을 위한 손님방, 그래도 남는 방들은 무엇에 써야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고민하지 마. 어차피 회사꺼라 집이 먼 직원들 방으로 두 개는 쓰기로 했거든."
"그래? 안타깝지만 어쩔수 없지. 그래도 안방만 해도 20평 아파트 한채 크기니 우리는 거기서 지내면 되지. 아이도 아직 어려서 함께 재워야 하니까."
애써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했지만 다음날부터 그녀는 혼돈에 빠졌다.
이층의 방 하나는 집이 먼 회사의 젊은 직원들이 잠자는 방으로 쓰기 위해 몇몇이 짐을 풀었고, 또 하나의 방에는 회사 전무의 장모라는 사람이 갈 곳이 없다며 와서 짐을 풀었다. 일층에 한개 있는 주방은 오가는 사람들로 그릇이며 반찬, 수저까지 임자없는 물건이 되었고 반찬은 냉장고에 채워넣기가 무섭게 사라졌다.
더 이상 집은 집이 아니었다. 퇴근길, 어린이집에 맡긴 딸아이를 데리고 골목을 올라올때 그녀는 멀리서 보이는 집의 불빛이 비치면 딸아이의 손을 잡고 집주변을 몇번이나 서성이며 맴돌았다. 발걸음이 선뜻 떨어지질 않았다. 하루의 스트레스와 피곤을 접고 가족과 함께 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그곳은 쉴 수 있는 내 집이라 부르기엔 제약이 너무 컸다. 오늘은 또 어떤 낯선 이들이 와서 집을 차지하고 있을지 그녀는 떼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향했다.
두달쯤 되었을 무렵 그 여자, J가 왔다. 남편이 다니던 회사 사장의 여동생, 남편보다 네 살 많았던 그녀는 이혼을 하고 있을 곳이 없어 당분간 그 집에서 지낼거라 했다. 3층 옥상방이 비어 있었다.
그녀는 J가 오던 날을 기억한다. 많지는 않았지만 이것저것 살림살이며 짐들이 연달아 들어왔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들고 나는 탓에 그녀는 이제 누가 오든 흥미도 관심도 없었다. 좋다 싫다 말할 수도, 집주인으로서 반겨줄 위치도 되지 못했기에 정신나간 여자처럼 그렇게 들어오는 짐들만 무심한 얼굴로 쳐다봤다. 그녀보다 연장자였지만 그녀는 그 전에 지내다 간 나이어린 여대생이 사장의 내연녀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는 심한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임자없는 집에 사는 죄, 그 댓가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무심해지는 길밖에는 없었다. 초면에 인사를 청하는 J를 그녀는 심드렁하게 바라봤고 이후로도 주방에서 마주칠라치면 그녀가 먼저 이층으로 올라가버렸다. 그때 그녀는 이미 충분히 지쳐있어 그 누구와도 말을 섞고 싶지도,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도 않은 상태였다. 이런 상황을 만든 남편에 대한 실망감은 커져있었고 그와 연관된 그 누구도 반갑지 않았다.
그럼에도 J는 사장의 여동생답게 집안 사람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냈다. 이층방에 살고 있는 전무 장모라는 이와는 공중목욕탕도 함께 다녔으며 그녀의 딸아이와도 곧잘 놀아주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 혼자 아웃사이더를 자처하고 있었다. 그녀는 점점 더 집에 오는 길이 지옥을 향하는 것처럼 힘들어졌으며 쉬는 주말이면 친구들을 만나거나 딸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향했다. 그녀가 고립될수록 그녀를 제외한 그녀의 남편과 딸아이는 J와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는 듯 보였다. 그녀가 나갔다 들어오면 화목한 웃음소리가 집밖까지 울리다가도 그녀의 출연과 함께 모두 입을 다물고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이미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어떤 대화도 서로에게 상처만 될 뿐이라며 오래전부터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었다.
여자의 직감일까? 그녀는 J가 처음 그 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묘한 느낌을 받았다. 왠지 남편이 그녀를 좋아할것 같다는 느낌. 당시에는 둘 다 업무적 관계 외에는 아니었음에도 그렇게 느꼈었다. 그런 생각에도 그녀는 그저 무덤덤했다. 함께 살고 있다 뿐이지 그녀의 남편과는 이미 부부라 할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직감대로 그 일은 그 밤에 일어났다.
이른 저녁을 먹고 그녀는 딸아이와 함께 일찍 잠에 들었다. 그녀의 남편은 그즈음 회사의 급한 일을 해결해야 한다며 늘상 회사사람들과 J와 함께 회의를 했다. 퇴근도 늦어졌으며 외박하는 날도 많아 새벽에 잠이 깬 그녀가 일층으로 내려가 보면 언제 들어왔는지 거실에 웅크리고 잠들어 있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사장이 안 좋은 일로 경찰조사를 받게 되었다며 대책회의랍시고 3층 J의 방에 모여 담배를 피워대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날도 한밤중 잠이 깨어 들어오지 않는 남편을 확인한 그녀는 불도 켜지 않은 이층방에서 정원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있었다. 그때 대문에 걸린 가로등 불빛 사이로 남녀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여자는 취한 듯 남자의 등에 업혀 있었고 나머지 한 남자가 옆에서 부축하며 집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업힌 여자가 J이며 옆에서 부축하는 남자가 그녀의 남편임을 그녀는 알아보았다. 창가 앞 목련은 달빛을 받아 더욱 처연한데 걸어오는 남녀의 모습은 한심하기만 했다. 현관문을 여는 소리, 이층을 오르는 발자국 소리,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소리가 뚜렷이 들리는데 이후로 아무 소리가 없었다. 분명 그녀의 남편이라면 옷을 갈아입기 위해서라도 그녀가 있는 안방으로 들어와야 했다. 어둠 속에서 그녀는 그녀답지 않다 여기면서도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이층 거실을 내다봤다. 어둠속에 건너편 방 불빛이 보였다. 잠시 후 J가 화장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고 뒤따라 그녀의 남편이 따라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그녀의 눈을 의심했다. 설마 하는 마음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럼에도 기다렸다. 그녀의 남편은 J의 안위를 확인하고 곧 나올 것이라고. 그럼에도 굳게 닫혀진 욕실 문은 열릴 기미가 없었다. 그녀는 고양이 발걸음을 한 채 욕실 앞으로 다가갔다. 차마 문을 열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욕실문을 노려본 채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몇 분이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 욕실문이 열리고 J가 먼저 나왔다. 웃고 있던 J의 얼굴이 그녀를 본 순간 얼어붙었다. 정지자세로 두 여자는 서 있었고 시간은 그들을 사이에 두고 그대로 멈춰섰다.
반쯤 정신이 나간 여자는 그녀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사람이 아닌 짐승의 소리처럼 그르렁거리며 울려나왔다.
"왜 둘이 함께 거길 들어가 있어요?"
뒤이어 욕실 문을 열고 나온 그녀의 남편 또한 그녀를 본 순간 얼음처럼 얼어붙었다. 그녀의 질문에 그 누구도 자신있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기다렸지만 자제심을 지키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녀 자신이 얼마나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인가를. 웃음 짓던 그들의 얼굴을 얼마나 굳게 만들었는가를 .
그녀는 폭발했다. 남아있는 이성의 힘을 발로 차듯 발악을 했다. 혹시 그 언젠가 남편의 외도를 마주하게 되더라도 그녀만큼은 지성인답게 쿨하게 미련없이 행동하겠다던 그녀의 다짐 따위는 이미 잊어버렸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드라마에서 흔하게 봤던 막장이 어울렸다. 물건을 집어던지고 말리는 남편에게 욕을 하고 장롱문을 열어 가방을 꺼내고 잡히는 대로 옷을 집어넣는 행동이 더 어울렸다.
남편은 잠에서 깨어 우는 딸아이를 데리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J는 짐가방을 싸는 그녀를 말리며 오해라고 마럤다. 그녀는 누구의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그녀를 잡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남편이 아닌 J라는 사실에 더 화가 났고 비참했다. 그동안 그녀가 인내하고 살았던 시간들, 어쨌거나 서로 사랑이란 걸 해서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고 한 가정을 지키려 애썼던 그 모든 시간과 노력들이 무참히 짓밟히는 기분이었다. 더이상은 참지 않겠다, 이젠 정말 끝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짐가방 하나 들고 현관을 지나 대문을 박차고 나왔다. 봄 밤의 싸늘한 공기에도 울분이 삭혀지질 않아 몸이 더웠다. 자가용 외에는 차라고는 지나지도 않는 흑석동 꼭대기 골목을 짐가방을 끌고 터덜터덜 걸어내려왔다. 기가 막히고 억울하고 분함이 가시질 않아 눈물만 났다. 번화가로 내려와 택시를 잡아탔다.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벽 두시에 전화를 걸어 울먹이는 막내딸에게 그녀의 엄마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도착한 집 앞에서 택시비 삼만원을 든 채 막내딸을 기다리고 계셨다.
"언젠가는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처음부터 내가 그놈은 아니라고 했잖니? 나쁜 놈. 다 잊어. 잊고 자."
다독이며 침대에 뉘어주고 엄마가 나간 후에도 그녀는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바탕 꿈처럼 방금 전까지 흑석동에 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처음으로 물건을 집어던지고 한밤 중에 가방하나 달랑 든 채 이곳으로 온 사람이 자신이 맞는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딸아이는 어디로 간 건지, 그녀 자신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녀가 무얼 그리 잘못하고 살았는지 그녀는 알 수 없어 눈물을 흘렸다. 괴로움과 절망감으로 몸을 새우처럼 웅크리고 옆으로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고만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 그 자세 그대로 다시 엄마의 자궁 속으로 들어가 세상에 나오고 싶지 않았다.
아침 먼 동이 터올 때 그녀는 결심했다. 이제는 헤어지자고. 이렇게는 더이상 살 수가 없다고. 그동안도 충분히 몸과 마음이 외롭고 힘들었다고. 회사가 끝나는대로 그녀는 흑석동 집으로 가 아무도 마주치지 않은채 그녀의 짐들을 챙겨 오리라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