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lly Kenye Kwon Apr 14. 2021

제로 웨이스트의 실천들

애쓰는 특별한 노력이 아닌 일상으로 삽입하는 과정

한 주를 마감하는 일요일 저녁. 집 근처 편의점 앞 가로수 주변에 쓰레기 더미가 쌓이기 시작한다. 빌라에 사는 나는 편의점 앞 가로수 아래가 쓰레기 지정 구역이다. 화, 목, 일요일에 쓰레기를 버리는 날인데 보통 일요일 저녁에는 특히 더 많은 쓰레기가 나온다. 백수인 나도 의례 한주의 묵은 때를 털어내듯 일요일 저녁에 쓰레기를 버린다. 하지만 그때마다 마주하는 가로수의 모습에 깨끗해진 집안과 반대로 마음은 찝찝해진다. 숨을 쉬어야 할 흙더미는 쓰레기로 뒤덮여 있다. 한 주에 세번, 가로수는 그렇게 인간의 배설물에 자신의 숨구멍을 가로막힌다.  

  밀라논나 할머니가 광고하는 샴푸바를 사는 데에는 6개월이 걸렸다. 환경적으로 무해하고 영양이 풍부하다는 성분에 끌렸지만 더 눈길을 끈 것은 사용을 다 하고도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광고에서도 그 부분을 강조하고 있었다. 제로 웨이스트에 친숙하지 않았던 나는 비누 형태가 그런 환경적 영향을 주는지 몰랐다. 사실 '비누 형태', 'Bar 형태'라는 말 자체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그저 '비누 형태'는 '비누'가 전부였다.

 여하튼 Bar라는 형태가 손을 씻는 용도 말고도 샴푸나 주방 세제 같은 여러 형태로도 만들어질 수 있고 무엇보다 사용한 뒤 플라스틱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그럼에도 구매를 하는 데 6개월이나 걸린 건 욕실환경과 오랜 내 샤워 습관 때문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샤워를 하는 편이다. 물 절약을 위해 샤워시간을 줄이자는 캠페인도 있지만 샤워를 해야 피로가 풀리고, 몸에하는 유일한 사치가 대중목욕탕의 세신 서비스를 받는 것인 나에게 샤워시간은 줄일 수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나의 아담한 욕실은 15~20분의 샤워를 마치면 거의 습식 사우나처럼 습기로 가득 찼곤 했다. 하지만 광고 속 밀라논나 할머니의 욕실을 달랐다. 광고 속 욕실은 호텔 파우더룸처럼 넒고 건조했다. 그곳 세면대에서 그녀는 짧은 커트머리를 물에 적셔 비누칠을 하며 머리를 감았다. 몇 번의 가벼운 헹굼으로 마무리 된 그녀의 머리감기 과정은 양치질만큼이나 산뜻했고 그 과정에서 샴푸바는 최소한의 수분만 흡수했다. 


'나같이 오래 샤워하는 사람이 사용해도 괜찮을까?'


  천연 성분이라 제형도 꽤 무를 것 같았다. 실제 후기에도 생각보다 쉽게 닳는다는 내용이 있었다. 가격도 비싼 편인데 욕실 습기로 물러져 빨리 닳아버리면 너무 아까울 거 같았다. 살까 말까 갈등 어린 마음이 반복되자 관심은 비아냥으로 넘어갔다.


'사실 저렇게 머리 감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저렇게 넓고 건조한 욕실을 유지하는 것도 호사다, 호사!'

 

 그렇게 구매하지 않기로 마음을 정리했는데 사용 후에도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광고 속 마지막 메시지가 뇌리에 남았다. 간헐적이라 해도 플라스틱 빈 통은 주기적으로 나왔다. 그나마 생수 병은 정수기를 설치한 덕분에 없앴지만 단 쓴 세제, 화장품 통은 간헐적이라도 나오게 된다. 하지만 비누는 달랐다. 껍데기가 없고 본체를 녹여 사용하는 이 제형은 다 사용해도 쓰레기가 나오지 않았다. 제형 자체가 친환경인 것이다. 조금 더 감상적으로 가서 삶의 소명을 다하고 연기처럼 사라지는 자연 소멸의 정점으로까지 보였다. 마침 일요일 저녁마다 마주치는 쓰레기에 갖힌 가로수도 떠올랐다. 밀라논나 할머니 광고를 몇 번 클릭했더니 인스타를 열 때마다 온갖 비누 제형의 세제용품 광고가 올라왔다. 샴푸바는 이미 대중적이어서 브랜드가 셀 수도 없었고 물 튀김이 엄청날 주방에서도 바 형태의 세제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 환경 운동하는 셈 치고 한번 구매해보자'

  

 결국 샴푸바와 컨디셔닝 바 세트를 구매했다. 거치용 수세미도 주었는데 꽤 단단해서 지지감이 있었다. 제형은 무른 편이었지만 금세 말라서 빨리 닳지는 않았다. 신경을 써서 보관해서인지 사용기간이 한달이라는데 나는 두달 가까이 사용했다. 거의 다 사용해 가느다랗게 작아진 비누조각은 새 비누에 붙여 사용했다. 그리고 내 욕실에서는 어떤 쓰레기도 나오지 않았다. 

 

 '껍데기가 남지 않는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알차게 내용물만 사용한 것 같아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확실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샤워과정이 조금 더 불편해졌다. 보통 샤워기 옆에 바디용품이 놓여져 있는데 샴푸와 컨디셔닝 바는 물기를 피해 세면대 앞 선만에 두어야 했다. 그러다보니 샤워를 할 때마다 선반에서 비누를 가져와야 했고 머리를 감으면서도 물이 튀튀기지 않게 멀찍이 두어야 했다. 하지만 이 거추장스러운 변화를 감내한 것은 제품 자체에 대한 만족 때문이었다. 천연성분이라더니 머리결이 점점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눈에 보이는 혜택(benefit)을 맛보고 나니 불편한 변화도 익숙해지게 되는 것이다. 

환경 운동을 말할 때 우리는 작지만 일상에서 지속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장바구니를 들고, 일회용컵 사용을 줄이는 것 같이 일상 습관의 변화로 빈도를 늘이는 것이 환경 운동의 핵심일 것이다. 하지만 습관은 감각적, 인지적 자아가 가장 완벽하고 효율적 판단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라이프 시스템이다. 그 습관을 고치는 것은 쉽지 않다. 샴푸바를 환경적 이유로 구매했지만 머리감을 때마다 세면대에서 가져오는 수고로운 습관을 들인 건 머릿결이 좋아지는 보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환경적 실천이 오래가지 못하는 건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내 경우 텀블러는 정말 어려운 문제이다. 매일 들고다니기에 너무 무겁고, 깊은 안쪽까지 씻는 과정이 여간 귀찮지 않다. 한두 번 큰 마음먹고 가져가지만 이런 불편함 무뎌지지 않았고 더구나 뜨거운 커피를 마실 때의 종이컵은 크게 반환경적일 것 같지도 않았다. 환경적 죄책감보다 불편함이 더 컸기에 결국 나는 텀블러 사용을 멈췄다. 대신 아이스 음료에도 빨대를 쓰지 않고 매장 안에서는 다회용 컵을 사용하는 정도로 내 안에서 합의를 봤다. 물론 이 합의를 봤다지만 플라스틱 사용에 대한 죄책감은 계속 들 것이다. 아마 플라스틱으로 인한 위기를 더 알게 되면 텀블러 무게따위는 쉽게 감수할 지도 모른다. 그래서 환경운동은 정보가 필요하다. 당장 나의 일상의 편리를 바꾸고 감내할 만큼 환경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이다. 

재활용 분리수거를 도와주는 한 포털 서비스가 있다. 분리 수고(blisgo.com). 평소 나는 플라스틱, 종이 정도만 분리해도 충분할 줄 알았다. 하지만 플라스틱을 감싼 비닐을 떼어내야 한다는 것, 종이에 붙은 테이프를 분리해야 한다는 것, 혹은 보냉백은 재활용이 되지 않는다는 것 등을 몰랐다. 분리 수고에서 검색하다보면 플라스틱, 종이만 구분해서 버린 건 분리수거 축에도 끼지 못한다는 걸, 그리고 생각보다 재활용이 안되는 게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알면 알 수록 내 습관과 충돌할 꺼리가 늘어난다. 처음에는 무시하겠지만 결국 내 안에서 어느 쪽으로든 합의를 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조금씩은 친환경적으로 가게 될 것이다. 모른 채 눈감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쓰레기가 생기는 게 싫어서 배민 앱을 깔지 않고 오아시스 구매도 월 2회로 줄였지만, 여전히 밖에서는 배달 오토바이가 쉴새 없이 다닌다. 남들과 비교하면 힘들 과정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 삶의 욕구와의 갈등이다. 분리수고를 통해 알게 된 이후 난 보냉백을 더 이상 받지 않는다. 조금 녹는 불편함 그리고 빨리 걷는 수고로움을 택했다. 앞으로 이런 결정이 내 안에서 조금 더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환경적으로 더 많이 알아야 할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2020년 bucket list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